제3부 1장 1958년 모스크바
‘그래, 소피아. 소피아 선생이었어.’
벌컥! 강의실 문이 열렸다. 선희는 현실로 돌아왔다. 유리 미하일로비치 바즈데예프 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여느 소련 사람들과 달리 바즈데예프 교수는 잘 웃었다. 어떤 학생들은 바즈데예프가 웃는 모습을 보며 부르주아의 잔재라며 손가락질했다. ‘출신성분’이 좋아서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일 거라고 수군대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예상과는 달리 선배들이나 다른 교수들한테서 들려오는 바즈데예프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바즈데예프는 두 살 때 부모를 잃었다. 친척들 집을 전전하던 바즈데예프는 10살쯤 중국 접경지역 비로비잔까지 가게 된다.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샤프카 장사를 하던 바즈데예프는 1941 년 ‘2차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최전방으로 달려가 자원입대한다. 바즈데예프가 전쟁 중에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모스크바로 온 바즈데예프는 늦은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환한 웃음에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입담까지 더해져 바즈데예프의 수업은 항상 학생들로 가득 찼다.
처음으로 개설된 중국 문화 수업이었다. 선희는 조금이라도 조선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수강신청을 했다. 바즈데예프는 수업 중간중간에 중국말을 했다. 전형적인 슬라브계인 바즈데예프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국어에 학생들은 웃었지만 선희는 숨이 막혔다. 마스터의 또렷한 조선어가 생각났다.
하지만 야유와 조롱이 섞인 마스터의 조선어와는 달리 바즈데예프의 중국어는 따뜻했다. 차츰 선희도 바즈데예프의 중국말을 들으며 다른 학생들처럼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루쉰이었다. 검은 콧수염에 짙은 눈썹, 교재 속 루쉰의 흑백사진을 보자 선희는 알마티의 한 아저씨가 생각났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마티는 이제 선희에게 너무 먼 곳이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바즈데예프가 학생들에게 작문 과제를 내주면서 말했다.
“중국의 한 선생이 고향에 대한 작문을 해오라고 했는데 한 학생이 루쉰의 소설, ‘고향’을 베껴 왔더랍니다. 선생이 학생을 나무라자 학생 왈, ‘제 고향이 루쉰하고 같거든요’라고 했다는데.”
바즈데예프의 말에 학생들이 키득거렸다.
“혹시 루쉰과 고향이 같은 사람? 아니면 나라가 같은 사람?”
바즈데예프가 검은 테 안경을 고쳐 쓰며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선희와 눈이 마주쳤다. 바즈데예프의 시선을 따라온 학생들이 웃음을 멈추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도돌이표처럼 돌던 단어가 어느새 빠취리자, 마스터라는 단어로 바뀌어 학생들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자, 그럼.”
바즈데예프가 학생들 주위를 모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학생들 중에서는 루쉰과 고향이 같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여러분만의 고향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바즈데예프가 평소의 모습 그대로 환하게 웃으며, 하지만 오늘은 선희를 보며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