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명곡이든 듣고 또 들으면, 특히나 그것이 일상 속에서 반복되면, 그것은 의미가 제거된 리듬으로 존재된다. 처음의 그 강렬하게 나를 잡아 걸었던 의미는 남지 않는다. 노래만이 아니다. 어떤 특별한 것도 금세 일상에 녹아들어 우리는 또 다른 일상을 살아낸다.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길을 찾을 때도 위치를 일일이 확인하며 먹이 찾는 참새처럼 두리번거리며 서성였다. 지금도 안 그러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교정을 걸을 때마다 건물이 거기에 있음을 따분해한다.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다. 물론 나의 처지에 기여한 각종의 요인에 대하여 분노를 하는 동시에 정물에도 분노한다. 그래서 건물들을 폭파시키는 상상을 한다. 건물의 기둥이 몇 개가 있으니 그 기둥마다 폭탄을 설치하면 무너져 내릴까? 아니면 탱크를 끌고 들어갈까? 저 벽은 탱크와 겨루어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면 공중에서의 공격이 더 효과적일까? 그러나 이내 그와 같은 상상은 막을 내린다. 관객도 없을뿐더러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시 일상이 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나는 핸드폰에 적어 놓은 할 일을 본다. 덤으로 시간과 배경화면으로 해놓은 강의시간표를 본다. 가끔은 시간을 보지 않고 살고 싶다. 인간은 흐르는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잘랐다. 우리는 시간의 경계를 느끼도록 강요받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학문을 하는 놈들은 다 뒈져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르주아 티를 내는 강사가 있다. 지가 서울대 대학원에 있고, 지 지도교수랑 금감원장인가 하는 거시기랑 밥 먹었는지에 대한 얘기도 한다. 존나 매우 싫다. 강사는 내게 경제 수식을 가르치며 말한다. 어떠한 것은 상수로 취급하라. 그때 떠오른 글귀를 경제 노트에다 적었다. “인간은 수많은 변수를 상수로 생각하기로 하여 가지고 있는 지적 능력 안에서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에 면죄부를 주는 경제가 특히 그런 경향이 심하긴 하지만 이내 나는 모든 학문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수는 결국 의도된 익숙함이다. 나는 익숙함이 싫다. 나는 가능한 모든 것을 변수로 받아들이고 싶다. 변수라는 표현도 싫다. 수식을 위해 구하는 값이 아닌 그것 스스로를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그러나 나 또한 한정된 지적 능력으로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상수를 만들었다. 그중에는 상수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가끔은 스스로도 상수로, 통제 가능한 것으로 두려고 애를 썼다. 몹쓸 짓이다. 상수로 만드는 작업은 폭력적이다. 애초에 인간의 인식 자체가 폭력적이다. 인간은 가능한 모든 것을 구분 지으려 한다. 그 경계에 위치한 것들은 잘려 나간다. 나는 그 잘려 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야릇한 감정을 가진다. 나는 익숙해지는 것이 싫었다.
익숙함에 대한 예술가들의 자위적 정의가 있다. 정확히는 익숙함과 꽤나 떨어진 순수에 대한 것이다. “순수란 일종의 질병이다. 그 병을 잘 이겨내면 생활인이 되는 것이고, 이기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며, 만성이 되어버리면 예술가가 된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까닭은 많은 것이 있지만 대게가 그렇듯, 쾌활하지 못하고, 남들이 말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지 않고, 어딘가 모자라고, 외로운 사람이 선택하는 도피처 같은 것이다. 예술가들은 어느 정도 찌질하다. 어쩌면 일반인들보다도 더 찌질할 것이다. 만일 내가 유목민으로 태어났으면,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시간과 운과 자연이 허락하는 내에서 목초지를 찾아다녔다면, 구태여 어색한 글을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모든 글은 유언이라고 한다. 유목민은 유언을 남기지 않았겠지. 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실들의 교차점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목을 하지 않는 이유는 풀들이 사라져서도 한몫을 한다. 이미 나는 너무나 많이 익숙해졌다. 목초지를 찾아 나서기에는 주인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졌다. 한 동안 글을 놓았다. 바빴다는 핑계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손이 굳었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