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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Aug 04. 2020

선생님, 여자끼리 결혼하면 애는 어떻게 낳아요!

다양성 조기교육

요새는 어린이들 방학이고 코로나도 장기적으로 넘어가니 다시 영어나 미술과외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어머니들께 자주 받았다. 그 둘을 합쳐서 영어 + 미술 과외를 하면 돈을 따블로 받을 명목이 확실해진다. 백수로운 나의 일상에 한줄기 빛과 같은 과외문의.


애들 가르치는 일에는 매번 너무 큰 책임감을 느낀다. 만약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 누군가가 미래에 매일 죽고 싶은 생각을 하며 괴로워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지금 내가 심어줄 어떤 습관 또는 칭찬 또는 무언가가 이 아이를 구원해줄 수 있지 않을까 라거나 혹은 내가 책을 읽으라고 했다고 책을 너무 많이 읽어버리거나 내가 미대를 나온걸 동경하게 되서 미대를 갔다가 그 아이가 영원히 고통 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까봐 말이다.


그치만 아이들은 정말이지 항상 너무 사랑스럽다. 결국 너무 보고싶던 아이들이 있어서 한 팀 수업을 받아주었다. 항상 씩씩하고 틀린 영어로 온몸을 다 바쳐 나와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줄리아. 줄리아는 과외를 쉬는 동안 새 동네로 이사를 갔고 거기서 사귄 새 친구와 둘이 수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방학때만이니까 어려울 것도 없지, 간만에 아이들 수업을 준비하니 나까지 신났다. 솔직히 그 아이들이나 나나 정신연령은 비슷하거나 내가 조금 더 낮다. 그치만 내가 더 어려운 단어나 그럴듯한 문장을 많이 알기 때문에 걔네 말을 다 이겨먹을 수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와- 하는 식이다. 예를들어 선생님 여자는 치마를 입고 남자는 바지를 입는게 맞아요! 성별은 태어날 때 정해져요! 그러면 나는 아냐, 그건 수행되는 거야. 주디스 버틀러가 그랬어. 이러면 애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대화가 끝난다.


예전부터 느끼던거지만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여자애들은 죽어도 공주랑 핑크를 좋아한다. 집에서 그런걸 안 사줘도 유치원에 가고 유투브를 보면서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동화책도 죄다 공주가 나오고 왕자랑 결혼하는 내용이 여전히 압도적이라 깜짝 깜짝 놀란다. 나는 조금씩 그런 편견을 깨주려고 은근한 노력을 해보지만 아이들은 수행성 같은 단어는 금방 잊고 무참히 아녜요! 여자라 운동을 못해요! 아녜요 여자라 분홍색 옷을 입었어요! 라고 한다. 어제 오늘은 애들이 좋아할만한 유니콘 책을 읽고 다같이 자신만의 유니콘 도감 만들기를 했다. 아이들은 꼭 자신이 그린 유니콘의 성별을 나누고 엄마 유니콘은 집안일 하고 아빠 유니콘은 돈 벌러 간다고 한다. 나도 옆에서 유니콘을 같이 그려서 러브 유니콘이라고 했다. 남자냐 여자냐 묻길래 여자라 했다. 그럼 틀림없이 남자 유니콘과 사랑에 빠져서 러브 유니콘이죠?! 그러길래 아니라고 토끼랑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래서 애를 낳으면 뿔달린 토끼가 나올거라고 했다. 나의 종을 차월하는 사랑 이론에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면 그 토끼는 아주 잘생긴 남자인가봐요! 그러길래 거따대고 아니야 그 토끼는 사실 여자야라고 했다. 여자랑 여자랑 어떻게 애를 낳아요!! 그러길래 애는 입양하면돼 임신하면 개고생이야 라고 대답했다. 오늘도 역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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