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봄, 늦은 위로의 허망함 앞에서
그대 나의 작은 심장에 귀 기울일 때에
입을 꼭 맞추어 내 숨을 가져가도 돼요
저무는 아침에 속삭이는 숨
영롱한 달빛에 괴롭히는 꿈
네 눈을 닮은 사랑 그 안에 지는 계절
파도보다 더 거칠게 내리치는
오 그대여 부서지지 마
바람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 마
이리 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내가 너의 작은 심장에 귀 기울일 때에
입을 꼭 맞추어 어제에 도착했습니다
오 그대여 부서지지 마
바람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 마
이리 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그대여 부서지지 마
바람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 마
이리 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그대 나의 작은 심장에 귀 기울일 때에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 J. B. Lotz, 사랑의 세 단계,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Die Stufen der Liebe, Eros Philia Agape), Frakfurt, 1971 에서의 분류.
[3] 한편 로츠의 필리아에 대한 견해와는 별개로, 특정 성애나 이상 성애의 기호를 표현할 때 쓰는 것은 eros 가 아니라 philia - pedophila, necrophilia 등 - 인데, 나는 그 차이가 상호 교감 여부 또는 상대방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지에서 온다고 본다. 그러니까 중심이 나의 욕망(관계성과 그에서 비롯된 욕망의 상호교류)에 있는지 나의 기호(자기중심성과 그에서 비롯된 '나의 선택'에 대한 절대화)에 있는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유사한 맥락에서, 로츠의 필리아에 대한 해석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가 존재한다. "필리아도 에로스와 마찬가지로 위험과 한계를 지닌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교묘한 양식의 자기 추구’이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에 비해서 사랑받는 상대방이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될 수 있는 위험을 일컫는다. (중략) 이러한 경향은 최종적으로는 자기우상화에로 귀착된다. 또 하나의 위험은 사랑받는 상대방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지나치게 우월적인 위치를 점하는 경우에서 나타난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는 바로 ‘그릇된 자기 양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양도한다. 급기야는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화 혹은 신격화하게 된다." (에로스-필리아-아가페 - 로츠(J.B.Lotz)의 사랑의 세 단계, 권기철(수원가톨릭대학교), 가톨릭철학 제4권, p.176.) 이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입을 꼭 맞추어 어제에 도착했습니다
[4] 5월. 스프링 피크(Spring Peak)에 대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