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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꾼 Sep 24. 2023

정착과 유랑 사이, 우리가 삶의 터전을 구축하는 방식2

<미나리>와 <노매드랜드>를 중심으로 

다름을 대하는 비정형성     


  <노매드랜드>와 <미나리>, 두 영화가 초기 서부 개척극의 서사를 일부 차용하고 있다는 건 이미 감독의 입을 통해서 밝혀진 바 있다.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은 아카데미 인터뷰를 통해 각자 자신의 영화가 서부극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했고, <노매드랜드>에서는 인물의 대사를 빌어 ‘노마드들의 행태가 초기 서부 개척민과 비슷하다’고 언급하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아무 것도 없는 미지의 땅에서의 새로운 출발. ‘삶의 터전’에 대한 서사를 이와 같은 장르로 풀이한 행간을 읽어내는 데에는 어쩐지 연출자들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중국 국적이지만 14살 때부터 서구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 영미권 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은 모두 이주민이다. 사실 이주민의 입장에서 ‘이주’란 이미 지어진 국가에 들어서는 일이나 다름없다. 개척할 기회가 마땅치 않은 땅. 따라서 역설적으로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각자 이주민으로서의 한계에 부딪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매드랜드>와 <미나리>에는 새로운 곳으로 터를 옮긴 인물이 부딪힐 법한 사회적 차별이나 벽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그간 대다수의 서구 영화에서 다뤄졌던 전형적인 이주민 서사와 다소 상반된 행보를 걷는다. 

  <미나리>에서 데이빗의 가족은 교회 사교 모임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왜 네 얼굴은 그렇게 평평해?’ 라고 묻는 백인 존의 질문에 동양인인 데이빗은 ‘그렇지 않아’라고 퉁명스레 대꾸한다. 다음 순간, 인종차별이라는 위기로 넘어갈 수도 있는 전형적인 내러티브 앞에서 시점은 동양인 할머니 순자로 넘어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순자는 백인 남성을 보면서 ‘매우 뚱뚱한 사람이 또 나타났다’고 이야기하고, 옆에 있던 모니카는 그런 순자에게 주의를 준다. 뜻밖의 전복은 데이빗과 존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조금 전까지 이목구비의 밋밋함을 짚어내며 아슬아슬했던 대화를 나누던 데이빗은 어느새 친해진 존을 데리고 와서 엄마 모니카에게 ‘오늘 밤 친구와 같이 자도 되냐’고 묻는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는 대다수의 기득권층이 소수에게 돌을 던지는 과정을 극복해내야만 하는 전형적인 이민자들의 정착기 서사에서 다소 벗어나있다. 겪어본 사람만이 사소한 차이를 찾을 수 있다고 했던가. 정이삭 감독은 다름에 대한 수군거림이 비단 한쪽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것에 대해 대놓고 강조하거나 혹은 이야기하는 걸 터부시하는 방편이 오히려 정형적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복은 <노매드랜드>에서도 나타난다. 펀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언니를 찾아갔을 때, 언니의 주변인들은 펀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건 펀 역시 마찬가지다. 펀은 빚까지 내면서 경제적 수익을 위해 부동산 투자를 하는 언니의 지인들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집을 생존 터전이 아닌 자산 또는 재테크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이견을 표한다. 그러자 그들 또한 펀의 노마드 생활이 시대의 흐름에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며 거부감을 나타낸다. 유랑과 정착 사이,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언니는 동생의 노마드 생활양식을 두고 새로운 것을 개척해나가려는 미국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면서 방으로 돌아와 펀이 어릴 적부터 유별난 편이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여기서의 유별남이 결코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니는 펀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주변인들과 다르지만 결코 틀리진 않다는 걸 깊이 있게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펀의 남다름이 실은 동생이 용감하고 정직하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동생이 어릴 때부터 남들의 개성을 잘 파악하는 재주를 지녔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다름을 대하는 영화의 전반적인 자세다. 갈등은 늘 삶에 존재했고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하는 것. 두 영화 모두 극적인 위기를 위한 불필요한 대립각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체화한 이주민의 삶을 배치함으로써 비정형적인 내러티브를 선보인다.

  

영화 <미나리> 속 가족 사진의 모습

            

시대 없는 자화상 


  흥미로운 요소는 또 있다. <노매드랜드>와 <미나리>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과거 어느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왜일까. 현대사회에서 이미 아메리칸드림의 해체를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에? 혹은 시대가 이미 여러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나라를 이루고 있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으므로? 다양성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매번 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왔다고는 하지만 <노매드랜드>와 <미나리>가 특정 시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반추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렇게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에서 시대는 그저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에는 완벽한 시대상이 없다. <노매드랜드>는 영화의 오프닝과 함께 엠파이어의 우편번호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짤막한 내레이션을 담은 뒤, 바로 ‘펀’이라는 개인의 여정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엠파이어에 머물렀던 다른 동료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노마드가 되어 유목을 하게 된 자들의 전후사정은 일상 속 라디오처럼 대화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펀이 어떻게 노마드의 생활에 정착해나가는지에 가깝다. 캠핑카의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여분의 타이어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차를 페인트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캠핑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와 같은 식의 대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사회적 전말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현대인의 생존일지다. 이는 <미나리> 역시 비슷하다. 영화의 시대상은 제이콥과 모니카가 듣는 뉴스나 라디오 또는 약혼식 사진에 박힌 1972년이라는 날짜에서 나타난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 실제로 심장병을 앓고 있는 한인 아동에게 의료지원을 해줬다는 것과 당시 지방 소도시의 농업과 축산업이 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이 그들이 미국으로 오게 된 배경을 짐작할 근거로 작용할 뿐, 영화에서 데이빗 가족이 겪은 이주민으로서의 사회적 고충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가족은 ‘생존’이라는 공통적인 목적을 위해 합심하여 행동한다. 결과론적으로 아칸소에서의 농작물 수확의 실패 역시 가족 내부의 이슈에서 기인하며 이야기는 감독의 의도대로 자전적인 성장사로서의 덕을 거머쥔다. 

  대신 시대상이 옅어진 이야기에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녹아든다. 펀은 관찰자가 되어 친구들의 말을 듣는다. 친환경주택, 자급자족이 되는 주택을 만들어 몇 세대에 걸쳐 물려주겠다고 말하는 린다 메이의 이야기 앞에서, 펀은 화자가 아닌 청자로서 존재한다. 아니, 사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대할 때의 펀은 대부분 청자의 위치에 서있다. 펀은 사람들이 노마드를 택하게 된 이유를 듣고 공감하면서 자신의 생활양식을 정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금융위기라는 배경은 수많은 떠남 중에서 하나의 떠남에 대한 근거로 자리 잡는다. 영화는 개인의 주도성과 자율성에 기반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흘러가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나리>의 데이빗 가족은 어떠한가. 애초에 이민자로서 외부세계와 단절할 마음을 먹은 마냥 고립된 아칸소의 작은 벌판으로 이주해 온 이들의 주변에는 폴과 소수의 교인들뿐이다. 다소 광신도적인 성향을 지닌 폴은 백인이지만 늘 옷차림이 깔끔하지 못하며 동네 사람들로부터 놀림 받는 처지다. 그는 제이콥에게 경운기를 이송해주며 먼저 일거리를 부탁한다. 이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방인에게조차 일거리를 부탁해야 하는 현실, 영화는 이미 아메리칸드림이 붕괴된 모습을 이미 암묵적으로 전제하면서 시작한다. 만약 영화가 1980년의 현실을 더 부각하고 싶었다면 이야기는 제이콥과 모니카가 아칸소로 떠나오기 전 캘리포니아 공장에 더 주목해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아웃사이더들의 삶에 대한 서사로 이어지면서 개인의 노력에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는 소작농들의 성과를 다룬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전개가 민족과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현대사회 저소득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추하게 된 셈이다. 


*이 시리즈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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