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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Jun 08. 2018

그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거꾸로 가는 남자>와 '탈코르셋' 운동

지난주였다. 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강남 페이스북 사옥 앞에서 웃통을 벗었다. 상의 탈의한 남성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 가슴 노출 사진만 음란물로 분류하여 제재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언론에서 해당 시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네티즌들의 설왕설래가 시작됐다.


"시선 강간이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젠 왜 못 벗게 하냐고?"

"등 살 접힌 거 봐라"

"예쁜 애들은 저런 거 안 한다"


'가슴 해방 운동'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968년 9월, 미국 뉴저지주 아틀랜틱 시티에서 열린 미스코리아 대회장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브래지어 태우기' 운동을 감행했다. 2009년 우크라이나에서 결성된 국제 여성인권단체 'FEMEN'은 가슴을 노출하고 꽃 왕관을 쓴 채 여성인권을 외쳤다. 2015년 미국에서는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운동이 일어나 가슴 노출을 단속하는 공권력에 맞서기도 했다. 2000년대 한국 페미니스트들 역시 브래지어가 여성의 자유로운 몸을 억압해온다며 '노브라 선언'을 했고, 2014년 홍대 거리에서는 '이것도 시위'라는 브래지어 자르기 퍼포먼스도 벌였다.

 

'탈코르셋' 운동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SNS를 중심으로 뜻을 함께하는 여성들은 긴 머리를 자르고 브래지어를 벗었다. 더 이상 립스틱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 돈으로 책 보고 맛있는 거 사 먹는다. 그리고 '이제야 사람답게 산다'라고 외친다.


인스타그램 속 #탈코르셋 게시물, 수천개의 사진이 검색된다




<거꾸로 가는 남자>(원제: '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 나는 쉬운, 헤픈 남자가 아니다)의 주인공 다미앵은 처음 만난 여자에게 성적인 농담을 서슴지 않고, 회사에 있는 여직원들은 커피를 맛있게 탈 수 있다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하는 남자이다. 그러던 그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힌 후, '거꾸로'(한글 제목을 지은 사람의 의도를 빌린다면)된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한글 제목은 누가 지었을까. 무엇이 '거꾸로'고 무엇이 '똑바로'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곳에선 "나도 남편가 아들 넷이 있어요, 전 개도 수컷만 키워요, 여러분을 존중합니다"라고 외치는 여성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여자들은 상의를 입지 않은 채 조깅하고, 남자들은 가슴 모형을 달고 남성해방운동을 펼친다.

자신의 프로젝트가 채택되지 않음에 항의하는 다미앵에게 상사는 휴가 쓰고 바람이나 쐬고 오라고 한다. 상사의 책상엔 탐폰이 가득 놓여있다. 이를 쳐다보는 다미앵에게 상사는 "아 요새 생리양이 좀 많아서"라며 웃어 보인다. 한 여성은 성관계 중 다미앵의 가슴털을 보고 기겁하며, 다미앵은 자신이 사정하기도 전에 이미 절정에 달해 만족을 느끼는 여자를 보고 허탈해한다. 이 사회의 '암묵적인 룰'을 깨달은 다미앵은 가슴과 겨드랑이, 다리를 제모하고, 남성해방운동에 참여한다.


웃기다는 사실이 웃픈 영화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철저한 학습의 결과임을 우회하지 않고 드러냈다.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

"이제 더 이상 살 빼지 않겠다", "이제 더 이상 화장하지 않겠다", "이제 더 이상 머리 기르지 않겠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지 않겠다는 기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우려되는 건 이 또한 하나의 '코르셋'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남녀평등의 최종 목적지는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존중받는 것이다. 모두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으며, 브라를 벗고 바지를 입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냥 모두가 '남성형 코르셋'을 입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다미앵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힌 후 살게 된 사회에서 '알렉상드라'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의 결말에서, 그녀와 함께 원래 살던 사회로 돌아오게 된다. 알렉상드라의 마지막 표정이 단연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자 압권이자 모든 것, 주제 자체이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알렉상드라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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