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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r 07. 2024

문을 닫아야 한다

십 년을 이어온 카페 문을 닫으려 한다

문을 닫아야 한다. 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열고 닫던 문을 이제 완전히 닫아야 한다. 마음이 뜬 게 언제부터였을까. 세 번이나 수리를 받은 제빙기가 결국 수명을 다한 날이었을까. 남자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단지 문고리가 아닌 문틀 자체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된 날이었을까. 10년 전 중고로 구입했던 로스터기가 곧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싹트면서부터였을까. 어쩌면 점심때마다 숨어서 먹는 도둑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건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다. 내 삶의 중심이 카페에서 글로 옮겨간 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일 테니. 살고 싶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결국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내 생계를 걸고 새로운 길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쓰려는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다던 마음을 현실로 옮겨 보려 한다. 카페 자리에 글방을 내려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어딘지 알면서도 몸은 굼뜨기만 했다. 손님이 많으면 문을 닫은 뒤 허탕 칠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고, 손님이 없으면 없는 틈에 지금처럼 글을 쓰면 되지 싶은 마음에 결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카페는 손님이 있든 없든 문이라도 열어두면 한 달에 다만 얼마라도 벌 수 있는데, 글로 먹고사는 건 내가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아무 수익도 없을 터였다. 생계에 대한 불안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일 년 가까운 날들이 흘러갔다.     


제빙기가 자꾸 고장 나다 결국 못 쓰게 되고, 남자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고, 로스터기의 수명이 다한 듯한 느낌이 들수록 솔직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나의 이유가 아닌 상황의 힘으로 걸어가는 게 더 가볍게 느껴진 것.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비겁한 마음은 나를 자꾸 파고들었다. 문제 뒤로 숨은 나는 빠져나갈 구멍만 손가락으로 후비고 있었고.


그러다 과감하게 이제는 정말 그만두겠다 결정을 내린 건, 내 안에 힘이 다시 차올랐기 때문이다. 온갖 의무들에 치여 허덕이던 날들에서 벗어나니 진짜 내 문제가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겠지. 카페와 글을 병행하는 지금보다는 한결 몸이 여유로워지겠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하나 해가다 보면 적은 수입이라도 생기겠지. 부정에서 긍정으로 넘어가는 건, 결국 생각의 힘이 아니라 내 컨디션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참 무모한 사람이구나.’ 종일 뒤척였던 날, 잠자리에 누워 그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원래 타고나길 좀 무모한 사람. 남들 다 취업 준비할 때 아르바이트해서 유럽여행을 가고, 남들 다 경력을 쌓고 결혼을 고려할 때 다 내려놓고 긴 여행을 떠났으니. 남들 다 아파트를 장만하고 식구를 늘려갈 때 도시가 싫다며 섬 시골마을로 자진해 들어왔고. 특별한 관광지도 없는 마을에 떡하니 카페를 낸 것도 무모하긴 마찬가지였다. 크게 성공한 적도 없지만 크게 망하지도 않았으니, 이만하면 무모하게 살아온 것치고 나쁘지 않은 셈이다.     


돌이켜 보면 길을 잃은 적이 많다. 지금은 그 모든 길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받아들이지만, 갈림길에 서 있을 때만 해도 이게 길이 될 수는 있는지 의심스러워한 게 사실이다. 막다른 길이면 어쩌지, 길이 끊겨 있으면 어쩌지, 그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불안 속에서도 끝내 새로운 길을 찾아간 건, 당시 내가 서 있던 길에 남아 있는 게 오히려 더 지옥이었기 때문이었다. 절실함은 원동력이 되어 나를 이끌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갈림길에 서 있던 나는 이제 방향을 잡고 걸어가려 한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가장 큰 고민은 생계였다. 맞벌이를 꼭 해야만 하는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니, 나는 혈혈단신이 아니니, 남편과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내가 만일 혼자 몸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를 떠올려 보았다. 어떤 게 정말 나를 위한 나다운 길일까.     


글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그저 나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글을 쓸 때만큼은 그저 나로 존재하면 되니까. 나만 들여다보면 되니까. 글을 벗어난 다른 시공간에서 나는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고 딸이 되고 며느리가 된다. 그런 수많은 역할도 중요하지만, 나는 나인 시간이 너무나 간절하고 소중했다. 더 오래 나이고 싶었다. 함께인 동시에 따로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은 더 나로 사는 길이다. 하나를 쥐기 위해선 하나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구나.     


다음 주까지만 영업한다는 글을 올리고 나니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와 응원의 목소리가 혼재돼 있다. 나는 누군가에겐 질투의 대상이고, 누군가에겐 대책 없는 사람이며, 누군가에겐 멋진 사람이다. 모든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그저 나이기로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나다운 선택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지지만, 나는 가벼워지기로 했으니 아이처럼 살기로 했으니, 더 나답게 살아가리라. 그 길이 시류에 맞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이더라도.     


쓰나미처럼 선택해야 할 것들이 밀려온다. 큰 선택이 끝난 뒤 밀려오는 작은 선택들. 시간을 재빨리 앞으로 감아 한 달 뒤로 건너가고만 싶다. 그때쯤이면 봄꽃들이 피어나고, 상황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될텐데. 요행을 바라지만 꿈일 뿐이라는 걸 안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 가는 것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글 하나를 쓰는 일처럼, 내 삶도 한순간 한순간을 살아가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삶에 지름길은 없으니까.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글 한 편을 쓰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야지.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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