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터뷰를 준비하며
제주 10년 차 이주민 인터뷰를 슬슬 다시 시작하려 한다. 책 원고 마감으로 에너지를 분산할 수 없어 잠시 멈춘다는 게 어느덧 4개월이나 흘러버렸다. 11월은 원고 마감이라 옴짝달싹 할 수 없었고, 12월은 원고 마감 후유증을 앓아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1, 2월은 아이들 방학으로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조차 버거웠고. 2월 말이 되니 이제는 정말 인터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침 기다리던 인터뷰이가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 일을 저질러야 굼뜬 몸이 움직일 것 같아 대뜸 만날 약속부터 잡았다. 제주에서 만나본 사람들 중에 가장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어 보여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 늘 궁금했던 분이다.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분쟁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시선을 던질 수 있는 분인 것 같아 인터뷰를 꼭 해보고 싶었다. 막상 인터뷰를 하려니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없었다. 실명도 모르고 정확한 나이도 알지 못한다. 이전에 무슨 일을 했고 어디에 살았는지도 모른다.
제주에 살고부터는 웬만하면 누군가의 이름이나 나이, 과거를 대놓고 묻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화하며 알게 되지 않는 이상 캐묻지 않았던 것. 새롭게 살아보겠다며 선택해 온 땅이었기에, 선입견 안에 사람을 가두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타인의 선입견 안에 갇힌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이따금 너무 궁금해 먼저 물은 적이 있긴 하지만, 대개는 그랬다.
사전 인터뷰를 하면 혹시 본 인터뷰에 힘이 빠질까 싶어, 만만한 sns를 뒤졌다. 기록하듯 sns를 하는 분이었는데, 그동안 쌓인 기록이 만만치 않았다. 일부만 볼까 하다 수 시간을 할애해 전부를 읽어버렸다. 실명을 알게 됐고 대략 나이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중요한 사건의 정확한 시점도 알 수 있었고. 그동안 적으신 글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겉으로 보기에 단단하기만 했던 이 분의 삶 역시 만만치 않은 굴곡과 흔들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짐작하던 건 얼마나 파편이었는지.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면 또 얼마나 깊은 이야기들이 길어 올려질까.
인터뷰는 소위 덕질과 같다. 입덕을 하면 우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는데, 인터뷰가 딱 그렇다. 덕질은 보통 유명인이나 유명인이 되려는 이를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내가 하는 인터뷰의 대상자들은 유명인이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은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마음만 먹으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게 너무나 소름 끼치지만, 내가 인터뷰를 앞두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그 세상을 뒤지는 것뿐이라 어쩔 수 없이 활용한다. 인터뷰이에 대한 모든 건 아니겠지만, 일부분이라도 알아야 농축된 질문을 뽑아내고 좀 더 깊숙이 인터뷰이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질문을 뽑고 인터뷰를 하고 글로 정리하기까지 일련의 과정 역시 덕질과 흡사하다. 한 사람에게 꽂혀 덕질을 시작하면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간들을 켜켜이 알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데, 인터뷰 역시 그렇다. 이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지금의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내 안에서 진심으로 궁금증이 생겨야 인터뷰를 진행할 마음도 싹튼다. 그래야 사전준비 과정도 신이 나고, 인터뷰도 기대된다. 나중에 글로 정리하면서도 동력을 이어갈 수 있고.
그러니 인터뷰이를 선택하는 부분부터 무척 고심한다. 어떤 사람이어야 내가 더 적극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아야 그 다음 인터뷰 기획도 가능해지기에, 어떻게 하면 내 안의 불씨를 계속 살려둘까 하는 고민 역시 많이 하게 된다. 타인을 순전히 궁금해 하는 마음, 타인을 가슴으로 이해하려는 진심. 결국 인터뷰는 나의 그릇에 대한 문제와 맞닿는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다양한 인간을, 내 안에 품을 수 있는가.
누군가 내게 '자신의 에세이 열 편 쓰기'와 '타인의 인터뷰 한 편 쓰기'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망설이지 않고 전자의 손을 들 것이다. 인터뷰는 그만큼 힘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인터뷰가 이토록 에너지 소모가 큰 작업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나는 과연 선뜻 시작할 수 있었을까. 겁 없이 뛰어들고 부딪히고 끙끙 댄 뒤에야 뒤늦게 인터뷰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걸, 한 사람의 인생에 내 몸을 담갔다 빼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터뷰 글 하나를 쓰고 나면, 마치 감동적인 장편소설을 한 편 읽어낸 것처럼 내 안에 긴 여운이 남는다.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길고 긴 여운이. 그 시점이 되면 나는 처음 인터뷰를 시작하며 내 안에 깊이 각인한 한 문장을 되새긴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 성장하는 인터뷰다."
이번 인터뷰는 나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았을까. 우리는 인터뷰를 하기 전보다 한 뼘이라도 더 자랐을까.
타인의 삶을 관통한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을 어루만진다. 나의 그릇을 쓰다듬는다. 내가 안정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인터뷰도 잘 진행되지 않기에. 다음 인터뷰를 해나갈 힘도 생기지 않기에. 인터뷰는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의 결정체와 같다. 섬세하게 말을 고르며 대화를 이끌고 온 마음으로 집중해 경청해야 한다. 오해 없이 왜곡 없이 전달하기 위해 파편의 말들을 맥락화 해야 하는데, 이 역시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결국 나의 몸과 마음이 우선 건강해야 한다. 꼬임 없는 순수한 관심과 이해로만 가득 차야 하는 것.
오랜만에 인터뷰 약속을 잡으며 나는 나를 돌본다. 다시 타인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다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무리 돌이켜봐도 내가 인터뷰에 뛰어든 건 천둥벌거숭이 같은 결정이었다. 인터뷰의 인 자도 모르는 나였는데…. 그게 무엇이든 진심을 다하면 결국 가장 많은 걸 얻어가는 건 나 자신이다. 그 진리를 기억하며 슬슬 시동을 걸어봐야겠다. 한 사람의 인생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두렵지만 매력적인 일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