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새벽녘부터 추적추적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리더니, 날이 밝자 굵은 빗방울이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한 해 중 해가 가장 긴 하지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된다. 빗줄기가 굵어진 시점이 하필 아침이라 남편도 아이들의 표정도 어둡기만 하다. 남편은 빵이나 요거트 따위를 입에 넣으며 한숨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아 출근하기 싫다.”
남편은 최근 며칠 연속 외근을 하고 있다. 현장에 나가면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종일 서 있거나 쪼그려 앉아서 일을 한다. 부쩍 얼굴이 피곤하고 야위어 보인다. 발바닥에 붙이면 피로감이 덜하다는 시트를 붙이라며 건네고, 몸에 좋다는 진액도 마시라고 권한다. 투덜대면서도 못 이기는 척 시트를 붙이고 진액을 마시는 남편을 보면서, 저 사람도 체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빗줄기를 뚫고 남편이 먼저 집을 나서고, 이어 장화를 신은 아이들이 쪼르르 학교로 향한다. 집에 홀로 남은 나.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싶지만, 불편한 마음에 몸을 돌린다. 아침을 먹고 나온 설거지를 하고, 거실 바닥에 늘어놓은 책을 정리한 뒤 청소기를 돌린다. 이부자리를 매만진 뒤 부쩍 곰팡이가 자주 스는 욕실 이곳저곳을 닦는다.
집안일을 어느 정도 해치우고는 다이어리를 연다. 써야 할 글이 두 개 있고,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당장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마감이 코앞인 사람처럼 동동거리며 다급하게 노트북을 켠다. 원두를 곱게 갈아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는다. 카페를 그만 두니 당장 나가는 원두 값이 만만찮게 느껴진다. 생두를 받아 직접 로스팅해 마시던 것과 비교하니, 값도 비싸지만 양도 금방 바닥을 보이는 것만 같다.
커피를 마시려는데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에 남편 얼굴이 서린다. 요즘 들어 부쩍 남편 생각이 자주 난다. 남편 눈치를 본다고 해야 할까. 커피를 마실 때 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도, 자꾸 남편 얼굴이 떠오른다. 과소비를 하진 않지만, 먹고 살자니 꼭 필요한 것들이 자꾸 생긴다.
내 물욕이 발산되는 곳은 주로 책이다. 끊이지 않게 무언가를 계속 읽다 보니 관심 가는 책이 많은 편이다. 인근 책방이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책이면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 두고, 결제를 할까 말까 고민한다.
돈에 민감해진 건 카페를 그만 두고나서부터다. 돈이 많다고 으스대거나, 돈이 없다고 쪼잔하게 구는 걸 싫어하는 나는 돈에 민감한 편이 아니다. 돈은 소중하고 아껴야 하지만, 너무 얽매이면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되도록 돈의 많고 적음에 초월하려고 순간순간 노력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카페를 그만 두고 나니 절로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카페만으로 먹고 살던 시절을 지나 2년 전 남편이 취업을 하면서 살림살이는 조금 나아졌다. 카페 벌이는 경기에 따라 요동을 치지만, 다만 얼마라도 수익이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었다. 남편 월급에 내가 카페 일을 해서 버는 수익을 합치면, 카페만 할 때처럼 비수기를 거치며 적어도 계좌에 구멍이 나는 일은 없었다.
소비에서도 조금 숨통이 트였다. 큰 소비를 하지는 않지만 먹고 싶은 걸 사 먹고,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을 사 입히고, 글을 쓰며 필요한 책을 조금씩 구입했다. 카페만으로 먹고 살 때는 책을 거의 사지 않고 빌려 읽었으니 나름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런데 카페를 그만 두고 나니 돈을 쓰기가 겁이 난다.
내가 일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집안일과 아이들을 챙기는 일, 학교에서 하고 있는 봉사활동만으로도 내 일상은 제법 촘촘하게 돌아간다. 돈이 되는 일도 있다. 글방을 오픈했고, 작은 수업 세 개를 꾸려가고 있다. 이따금 글을 송고하는 매체에서도 작게나마 원고료를 받는다. 이래저래 일을 하지만 내가 버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돈이 되는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사실 돈을 보고 시작한 일이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좋게 말해 프리랜서지, 거의 백수이기도 하다. 주부라는 역할을 제외한 내 삶이 그렇다. 살림에 취미가 없는 나는 최소한의 살림을 한다. 꼭 해야 할 것만, 하지 않으면 삶이 유지되지 않는 정도의 노동만 주부로서 행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다가 글을 썼다가, 어떤 주제에 대해 한참 사유하기도 한다. 수업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수업을 할 때 도움되는 책을 들춰보며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일을 하지 않는 건 아닌데, 돈을 많이 벌지 않으니 꼭 일을 하지 않는 것만 같다. 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일과 공부와 놀이의 경계가 흐릿하다. 내게 일은 공부이고, 공부는 놀이이며, 놀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하는 공부가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르며,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언제 내 벌이가 될지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다. 내가 선택한 삶이자 내가 찾은 삶이기도 하다.
여전히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든다. 벌이 때문이다. 카페를 그만 두고 내 벌이가 확 줄면서 거의 외벌이가 되다 보니 남편 어깨가 유난히 더 무거워 보인다. 십수 년을 함께 살았지만 남편은 내게 돈과 관련해 눈치를 주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나도 돈을 쓰면서 남편 눈치를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카페를 그만 두고부터 자꾸 눈치를 본다. 재테크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하지도 않던 주식을 힐끔거린다.
가부장제의 잔재라는 걸 안다. 직업으로서의 주부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벌이는 작지만 나는 충분히 나의 할 일을 하고 있다. 최소한의 노동이지만 살림을 하며, 아직 어려 귀가 시간이 이르고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오후를 챙기는 것도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글방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나만의 글쓰기와 함께 하는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죄책감을 느끼며 나도 몰래 뼛속 깊이 스며든 타성을 확인한다.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돈을 잘 버는 일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돈과 관련이 없어도, 많은 돈을 벌지 못해도 충분히 귀한 일은 많고 많다.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것도 사실 이런 점 때문이다. 돈으로 모든 가치를 매기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있는 일은 너무도 많다.’
외벌이처럼 살고 있으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조급해 하지는 않으려 한다. 조급하다 해서 이제야 간신히 찾은 내 삶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돈이 되지 않아도 어떻게든 글을 쓰고 글 속에서 길을 찾으려 하는 시간들이 무의미한 건 아니니.
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둘 수 있도록 열심히 글을 쓰고 돈을 버는 아내이고 싶다. 글을 써서 과연 그런 미래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쌓아가는 내 삶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매일 차곡차곡 쓰다 보니 조금씩 길이 열린 것처럼, 이렇게 하루하루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또다른 길이 열릴 것이라고, 그게 돈만을 좇는 삶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나는 나를 설득한다. 그렇게 오늘도 글 하나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