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제주 마을에 집을 지은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소금기 가득한 공기가 수시로 날아오는 곳에서는 지은 지 10년만 넘어도 옛날집이라고 부른다. 전 재산을 투자해 지은 집을 두고 옛날집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며 남몰래 마음이 쓰렸다. ‘아니 왜 벌써 옛날집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여기서 더 살 건데!’
그도 그럴 것이 철제로 된 부분은 녹이 슬어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고, 태풍에 살짝 피해를 입었을 때 두 번쯤 고친 지붕은 아예 새로 하는 게 나은 상태가 되었다. 옥상 방수도 다시 해야 하고 벽도 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계획한 공사가 늘어날 때마다 마음이 쓰렸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받을 스트레스와 공사비 마련이 걱정이었다.
10이라는 숫자를 맞닥뜨리고는 얼마가 들든 이제 정말 집을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목돈을 모아둔 통장을 헐고, 때마침 시세 좋은 금도 팔아 치우고, 최근에 탄 적금도 모아서 공사비를 간신히 마련했다. 목표는 봄 안에 공사를 끝내는 것.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는 어떻게든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해가 바뀌고부터 마음이 분주해졌다.
제주에 온 지 어느덧 11년차다. 10년이면 강산만 변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기후가 변한다. 제주 역시 10년 동안 큰 변화를 겪었다. 특히 꽃 피는 시기가 한 달 가량 앞당겨졌다. 4월에 피던 벚꽃은 3월에 피고, 5월에 피던 귤꽃은 이제 4월이면 향기가 진동한다. 6월의 상징과 같던 수국은 요즘 5월 말이면 피어난다. 한여름 담벼락을 주홍빛으로 수놓던 능소화는 7월의 상징이었는데, 올해는 수국과 같이 피어났다.
이주 초기에는 여름철 마른 장마를 지낼 때가 많았다. 비가 오더라도 사나흘은 또 해가 났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50일 가까이 비가 온 적도 있다. 주택에 살며 햇볕에 빨래 말리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너무 긴 기간 비가 오는 날씨를 몇 번 경험하고는 건조기를 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섬에서는 제습기만 필수품인 줄 알았는데 건조기도 필수품이 되어 가는 분위기다.
태풍의 세력도 심상치 않다. 태풍이 발생하는 빈도도 잦아졌지만, 세기도 점차 강해지는 추세다. 제주는 태풍이 지나는 길목이라 중국이나 일본으로 꺾이더라도 영향권에 들 때가 많다. 이주하고부터 태풍이 먼 해상에서 발생할 때마다 예의주시하다 보니 태풍 박사가 다 되었다. 한국 기상청 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의 예보도 비교하며 태풍을 지켜본다.
그때마다 체감하는 건 중심기압은 슈퍼 태풍급으로 점점 낮아지고, 태풍의 크기는 한반도를 뒤덮을 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경로도 이상하다. 북반구 태풍은 당연히 북쪽으로만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종종 방향을 틀어 역주행하기도 한다. 그런 경로를 보인 태풍은 뜨거운 바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세력이 더욱 커진다. 불안감도 덩달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태풍이 아니라도 이따금 예측할 수 없는 비바람을 맞닥뜨릴 때가 많다. 계절이 바뀔 때면 원래 바람이 많이 부는데, 그 세기가 점차 세지는 느낌이다. 어떨 때는 태풍에 맞먹는 바람이 불기도 한다. 그런 바람을 타고 비까지 내리면 어떤 구멍으로 비가 들어오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 날씨를 지난 몇 해 동안 연거푸 경험하다 보니 더는 공사를 미룰 수 없었다.
적당히 고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대대적으로 공사를 진행한 건 기후위기 때문이었다.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어떤 지역은 폭우가 심해지고, 어떤 지역은 가뭄이 극심해진다는데 한반도는 전자라고 한다. 더 강력하고 더 잦은 폭우와 폭염이 올 것이 뻔한데, 대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지구에 살면서, 이에 대비해 집을 고치거나 이사를 하는 건 더 이상 특정한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사막 도시인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나 UAE의 두바이에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나고, 유럽과 북아프리카는 극심한 가뭄으로 제한급수를 시행하기도 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폭염이 기승을 부려 5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고온을 기록하고 있다.
용어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는 경각심을 갖기 위해 기후위기(climate crisis)로 호칭이 바뀐 지 오래고,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순한 표현 대신 요즘은 지구 가열화(global heating)라는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추세다. 지구가 펄펄 끓고 있으니 언어에도 변화가 따르는 게 마땅해 보인다.
지난 몇 달간 큰 공사를 치렀다. 소금기에도 녹이 슬지 않는 알루미늄 징크로 지붕 전체를 덮었다. 외벽도 크랙과 작은 구멍들을 메꾸고 여러 차례 페인트를 덧칠했다. 옥상 방수는 반영구적이라 불리는 제품을 사용했다. 계획한 공사를 모두 마치고 나니 집을 한 채 새로 지은 것만 같다. 돈은 돈대로 나가고, 이래저래 신경을 썼더니 혼이 쏙 빠진 기분이다.
공사가 끝나고도 종종 집을 꼼꼼히 살핀다. 폭우나 태풍을 상상하며, 이 집이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본다. 자연스레 시선은 하늘로 향한다. 제주에 와서야 오뉴월의 노을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홍빛으로 활활 불타던 하늘은 해가 서쪽으로 기움에 따라 분홍빛으로 바뀌었다가 보랏빛으로 변해간다. 찰나의 시간 동안 하늘이 펼치는 마법의 공연이다.
이렇게 찬란하다가도, 하늘은 언제 또 사납게 얼굴을 바꿀지 모른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습한 공기가 코를 찌르겠지. 뜨거운 태평양의 열기를 품은 성난 태풍은 또 찾아와 길고 긴 밤을 안겨주겠지. 살을 파고들 듯 내리쬐는 한여름의 태양볕은 또 얼마나 뜨거울까.
돼지고기를 볶으려다 대신 두부를 들기름에 구워 식탁에 올린다. 쇠고기는 밥상에 오르지 않은 지 아주 오래 되었다. 멀리 시내에 있는 대형마트에서는 이제 거의 장을 보지 않는다. 가까이에 있는 상점들을 이용한다. ‘이런다고 나아질까’ 싶다가도 ‘이거라도 해야지’ 싶다. 어느덧 장마가 코앞이다. 이번 여름은 또 어떤 날들이 될까.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