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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Jul 11. 2022

관내 유두종 오른쪽이요 오른쪽

"출발할게요. 복도에서 잠깐 대기해주세요."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에 복도로 나갔습니다. 바늘을 발등에 꽂은 탓에 휠체어를 타고요.

몇 병실 앞에 환자들이 한 두명씩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시간대에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었고, 이송팀 직원을 따라 다 함께 수술실로 향했습니다.

"보호자 분들은 여기에서 기다려주세요."

나는 엄마와 인사를 하고 휠체어에서 내려 수술방 대기실로 들어갔습니다. 모두 푸른 두건과 푸른 마스크, 흰색 크록스를 신은 이들이 분주하게 오갔습니다.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는데 다들 춥지도 않은지 반팔에도 아무렇지 않아보였습니다. 나는 앙증맞은 스머프 모자를 받아 쓰고 함께 이동한 아저씨와 할머니 사이에 앉았습니다.

"이름, 생년월일 말씀해주세요." "무슨 수술 받으시는거에요?" "어느쪽 수술하시는지 손들어주세요."

그들은 이름과 생년월일, 무슨 수술을 받는지, 어느쪽을 수술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몇 번이고 다시 물었습니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이 대답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가도 엉뚱하게 간암 환자의 췌장을 떼어 냈다거나, 오른쪽 다리를 수술해야 했는데 왼쪽 다리를 수술했다거나 하는, 정말 이런 게 일어날까 싶은 사건을 뉴스에서 꽤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성심껏 대답했습니다.

"관내 유두종 부분절제로 오른쪽 가슴 수술합니다."

오른쪽 쇄골 밑에 파란 펜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멍든 데 없어요? 흔들리는 치아 없나요?"하며 내 이를 일일이 건드려 확인했습니다.


사람마다 긴장이 되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 혹은 해야만 긴장이 풀리는 루틴이 있습니다. 다리를 떨거나, 입술을 깨물거나, 손을 만지작 거리거나, 코를 비비거나 하는 것들 말입니다. 나는 긴장 상태에 이르면 먼저 제자리에서 통통 뛰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으로 얼굴 전체를 펼쳤다가 구겼다가 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내 눈꼬리는 상당히 쳐진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장을 하면 이마부터 눈썹, 눈꼬리, 귀, 입꼬리, 턱까지. 얼굴 전체가 아래로 더 축 처졌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는 턱을 들어 목을 한 바퀴 돌리고 눈썹을 크게 으쓱하고, 눈을 부릅 치켜뜨고, 눈꼬리를 최대한 올리고, 옅은 보조개가 선명해질 만큼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이때 약간의 내면 연기를 하는데 '어쩌라고' 식의,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을 연기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나는 이 루틴을 마치고 조금 개운한 마음으로 오른편의 할머니를 곁눈질했습니다. 할머니는 너무나도 왜소하고 하얀 머리칼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딱 봐도 할머니 시구나 하는 그런 할머니셨는데 다리 떠는 것도 없고 손을 비비는 것도 없고 가만히 지나가는 푸른 사람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왼편의 기골이 장대한 아저씨는 다리를 떨고 주먹 쥔 손으로 무릎을 계속 톡톡 쳤습니다.


수술복 입은 이들이 수술실 문을 왔다 갔다 하는 덕에 밖의 대기실에 앉아 있는 엄마를 보게 됐습니다. 문은 단 몇 초동안 열리고 닫혔는데, 엄마도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손을 흔들더니, 다음 문이 열렸을 때는 양손을 흔들었고, 그다음 문이 열렸을 때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엄마는 내가 긴장을 한 것 같다거나 본인이 긴장을 한 것 같으면 보란 듯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양 눈을 가운데로 모은다든지 콧구멍을 크게 넓히고 코를 찡그린다든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나도 그만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죠.


내 차례가 됐습니다. 나는 오른쪽 쇄골에 그린 동그라미가 잘 있는지 혹 나 모르는 사이 왼쪽 쇄골에도 그려진 것이 아닌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수술실은 대기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훨씬 사람이 많았고 추웠습니다. "이름 생년월일 환자 번호요. 동그라미 그린 거 확인할게요."

"이쪽 누우세요."

나는 수술실 가운데에 누웠습니다. 병실에서부터 뒤집어 입고 온 옷이 앞으로 벗겨지고 따뜻한 타올이 상체를 감쌌습니다. 나빼고 모두 정신없이 분주했습니다. 분주한 틈에서 담당 교수님을 찾으려 했는데 마스크를 하고 있어 다 똑같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손발이 침대에 고정됐습니다. 이마에는 까끌한 무언가가 꾹 눌려 붙었습니다. 어느새 내 옆에 온 교수님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푹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거에요." 나는 불쌍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입에 산소호흡기가 씌워지고 차가운 느낌이 발목을 타고 쑤욱 들어왔습니다.

"어우 키가 크네. 키가 몇이에요?"


마취를 시작 할 때 시작한다고 말을 해주는 걸까 아니면 그냥 하는 걸까, 마취제는 호흡기로 들어오는 걸까 주사로 들어오는 걸까, 영화에서처럼 마취 중에 깨어났는데도 다들 깬 줄 모른다거나 하는 상황이 내게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여러 생각을 하다가, 정신이 뭉게뭉게 어지러워 눈을 떠졌습니다. 눈을 감은 기억이 없는데 눈을 떴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고 내 가슴은 바위에 깔린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끝난건가 했다가, 좀 전과는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는 걸 보니 끝났구나 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뼛속까지 밀려드는 추위에 오들거리다가 점점 온몸이 떨리게 됐습니다. 마침내는 침대까지 흔들렸습니다. 간호사는 이불을 들추더니 발 밑으로 따뜻한 바람 통을 넣어줬습니다.


바로 옆 침대의 아저씨는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배가 아파서 죽겠다고요. 간호사는 배 수술을 했으니 아플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아저씨는 흐느적거리는 소리로 계속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하다가 다시 잠에 빠졌는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내가 잠에 빠진 걸 수도 있겠습니다 (나중에 엄마는 이 아저씨가 엄마 옆에서 함께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의 남편이었고 위암 수술을 잡아 놓고도 술을 마셨다고 한탄했단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조금 덜컹거렸던 것과 바퀴 굴러가는 소리,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 익숙한 두께와 주름을 가진 손이 이마와 뺨에 닿았던 것.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내가 최후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엄마가 내 목과 얼굴의 찐득하게 굳은 빨간 약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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