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내 시계를 열 번 넘게 확인한 것 같습니다.
코드블루로 마음이 숭덩거리고 있을 때, 간호사가 면도기를 들고 왔습니다. “제모하러 왔어요.”아침에 최후의 샤워를 하면서 겨드랑이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왔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끔한 겨드랑이를 들어 올려 보였습니다. 간호사는 엄지를 들어 올렸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간호사가 병실을 떠나며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바늘 꽂으러 올게요.”
중3 봄 혹은 여름인가하는 춥지 않은 계절, 학교에 처음으로 헌혈 차량이 왔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헌혈하는 날이 되면 운동장에 헌혈차 여러 대를 세워놓고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나와 헌혈을 했습니다. 헌혈을 하면 영화표와 초코파이, 요구르트를 줬습니다. 당일 조퇴도 할 수 있었는데 난 영화표와 초코파이, 요구르트보다도 조퇴가 하고 싶어 친구들과 줄을 섰습니다. 팔뚝까지 옷을 걷어올리고 헌혈차에 탔는데 결론적으로 친구들은 모두 조퇴를 했고 나는 남아 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뒤로도 영화표를 얻기 위해 몇 번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고2,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을 때는 간호사 서너 명이 돌아가며 시도하다가 겨우 피를, 눈물방울 받듯 받아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응급실에 가면 남들 다 맞는 곳에 수액을 맞지 못하고 발목, 쇄골 이런 이상한 곳에, 심지어는 사타구니처럼 남사스러운 곳에 맞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계속 맞닥뜨리게 되면 응급실에 가는 것도, 피검사를 하는 것도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날이 밝으면 온다던 간호사가 몇 시에 올지 몰라 밤새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 하실 테지만 이것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일종의 자기 방어이자 생존 본능이었다고 변론하고 싶네요. 새벽이 슬슬 걷힐 4시 반 정도부터는 잠에서 완전히 깨버려서 간호사 발걸음 소리, 카트 끄는 소리가 들릴까 싶어 복도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드르륵 카트 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왔습니다. 밤새 걱정한 보람대로 간호사는 세 번을 시도했지만 세 번 모두 실패했습니다. “십오 분 뒤에 다시 올게요.”간호사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정맥 주사를 실패하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정맥 주사는 꽂는 사람이나 꽂히는 사람이나 두려워야 하는 건가요.
"수술 들어가기 전에 종양 위치 잡는 시술 하나 해야 하는데, 이따가 이송팀이 오면 안내에 따라 다녀오세요."
아직 바늘 꽂기를 성공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때까지도 바늘 생각 뿐이었습니다. 삼십분 쯤 지나자 어르신 한 분이 병실 앞에서 빼꼼이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르신은 이송팀의 직원으로, 나를 시술실까지 안내해주기 위해 오셨는데, 웬일인지 침대를 끌고 오셨습니다. 사람을 잘못 찾아오셨나, 착오가 있었나 싶어 인사를 하고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이름이 맞아서 자, 가시죠 하고 복도를 나가려는데 어르신은 침대 담요를 걷고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여기 타셔요."
나는 여전히 나일론 환자의 행세를 하고 있었고, 또 멀쩡해보이는 젊은 놈이 어르신 미는 침대에 누워가는 것이 민망하기도 해서 한차례 거절을 했습니다.
“걸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다리도 멀쩡하고요."
어르신은 웃으며 다시 한 번 말했습니다. "그래도 타고 가야해요."
의아함을 안고 엉거주춤 침대 위에 올라 눕자 어르신은 담요를 목까지 꼭 덮어주셨습니다. 도대체 뭐길래 침대를 타고 가야 하는 걸까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종양 위치를 잡는 시술이라면 뭐 엑스레이를 찍는 정도 아니겠어요?. 일단 걱정은 차치하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 때부터 나의 민망함은 최고조에 다달았습니다. 침대가 엘리베이터의 대부분을 차지해 사람들이 하나둘 중앙에 나를 두고 빙 둘러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 탓에 중간 층에서 내리려면 입구와 가까운 사람들이 소시지처럼 줄줄이 내리고 안쪽의 사람들이 내려야 하는, 침대 하나 때문에 내렸다가 탔다가, 민폐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나는 덮고 있던 담요를 슬금슬금 이마까지 올렸습니다. 그렇게 민망한 인파를 뚫고 마침내 1층 시술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탈출하다시피 뛰어내렸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르신이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잘하고 오세요."
어르신의 그 응원, 그 미소는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어르신을 따라 같이 아자! 손짓을 하고 쭈뼛쭈뼛 시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잠시만요. 선생님 오실거에요."
한참을 온통 흰 벽의 시술실에 혼자 멀뚱히 앉아 있다가 나의 종양을 표시할 만한 기구를 파악하기 위해 시술실 안을 둘러봤습니다. 저건가, 아니 저건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것들 틈 사이로 낯익은 기계가 보였습니다. 밝은 곳에서 본 적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엑스레이실에서 봤던 기계 같았습니다.
괜히 긴장했네, 하면서 속으로 큰 소리를 치고 있은지 5분쯤 지났을까, 의사 세 명이 트레이를 끌며 들어왔습니다. 한 명이 시술실 끝의 독립된 투명 부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째서 세명이나 필요한 건지, 의사 여럿을 보자 다리가 달달 떨렸습니다.
부스 안으로 들어갔던 의사는 다시 부스 밖으로 나와 내 앞에 앉았습니다. "유방 눌러 찍는 엑스레이 알죠? 그걸로 위치 확인을 먼저 할 거에요. 그 다음에 부분 마취하고 이걸 그 위치에 박을 거에요."
의사 손에는 휘청이는 쇠줄이 들려 있었습니다. 길이가 꽤 길어 거진 삼십 센티는 되어 보였습니다(두려움에 실제보다 더 길게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 그걸 어떻게 하신다고요?"
"여기에다가 박을 거에요."
"그거를 여기에 박는다고요?"
"네(싱긋)"
"아...아프겠죠?"
"마취할 때요 아니면 박을 때요?"
"둘다요."
"마취할 때 아프고, 박을 때도 아프고요. 다들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준비됐어요?"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계속 안 될 것 같네요."
"네 아마 그럴거에요. 그냥 빨리 해치워버립시다."
그래도 나름 경험자라고 유방촬영술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뿐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는데, 의사는 부스 안으로 들어가 철심 박을 위치를 확인하고 부스 밖으로 나와, 다시 내 앞에 앉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취 주사를 놓을 거예요. 2방. 조금 아파요. 심호흡하시고." 나머지 두 의사 중 한 명이 내 뒤에 서더니 내 양쪽 어깨를 잡았습니다.
아, 아프긴 했으나 참을 만은 했습니다.
의사는 5분 정도 기다리자면서 투명 부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머지 의사들과 모니터를 보며 뭘 막 상의하더니 아직 5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부스에서 나와 아까 그 쇠줄을 꺼내 들며 말했습니다.
"해볼까요. 근데 이건 진짜 아파요. 어쩔 수가 없어요. 정말 죄송해요."
"아......그 긴 게 다 들어가나요?”
“그건 아니고 적당히 넣을거에요. 근데 두 개 박을건데?"
"아..."
"숨 최대한 크게 들이마시고, 그대로 숨 참으세요. 진짜 아파요."
좀 전의 그 대형으로 의사 한 명은 다시 내 양쪽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명은 다시 내 손과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힘껏.
나는 숨을 아주 아주 크게 들이마셨습니다.
원래 마취 주사라는 것이 큰 아픔을 위해 잠깐의 아픔(마취주사)을 선택하는 것 아니었나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마취가 완전히 되기를 기다렸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런 식이라면 마취 주사가 마취 주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실패한 마취가 아닐까요. 나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싶은 어리둥절의 상태에서 손도 발도 묶인 채 철사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건달 6은 그날 아마도 이런 고통 속에 있었을 겁니다.
모두 잠든 밤, 건축 공사가 한창인, 아직 덜 지어진 건물 안. 두 집단이 만났습니다. 이곳이 누구의 구역 인가 하는 패싸움을 시작한 건달들 중 건달 6은 가슴에 철근이 박혔습니다. 하나, 둘. 두 개의 철근이 박혔지만 첫 패싸움이었던 건달 6은 이 상황이 도저히 현실 같지 않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내 눈앞에 철근이 보이지만, 그래서 뽑고 싶지만 어찌할 줄 모른채 바라만 보고 있었겠지요. 뽑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겁니다. 제발 어떻게 좀 해보라고 소리치지만 소리가 나오질 않았겠지요. 눈물은 그냥 뚝뚝 떨어지고 나는 어쩌다가 이곳에, 이런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는가 하는 회한이 밀려왔을 겁니다.
나는 건달 6이었습니다.
박는 사람, 박히는 사람, 붙잡는 사람 모두의 진이 쏙 빠진 쇠줄 박기가 끝이 나고, 박고 남은 부분을 돌돌 말아 가슴에 고정시키며 의사가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아팠죠? 나도 하기 싫은데 어떡해요 해야 되는데. 좀 더 있다가 가도 돼요. 천천히"
나는 흘린줄도 몰랐던 눈물을 닦으면서 아주 잠깐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들숨 날숨에 들썩이는 흉곽을 따라 쇠줄이 욱씬거렸습니다.
시술실을 나가자 어르신이 서 계셨습니다. 그 사이에 정이 들었나 어찌나 반갑던지요. 어르신은 시술실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계신 것처럼 미소을 지으며 침대에 와 누우라 손짓 하셨습니다. 내가 침대에 올라타 눕자 담요를 눈 밑까지 올려 덮어주셨습니다.
병실 앞에는 엄마가 나와있었습니다.
"수술 잘하고 와요." "네, 감사합니다."
난 어르신께 꾸벅 인사를 하고 어기적거리며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와 보니까 니가 없는거야, 그래서 물어 봤더니 좀 전에 뭐하러 내려갔다고..."
엄마는 시술실로 떠나고 얼마 안 있다가 도착한 모양이었습니다. 고자질을 쏟아내는 초등학생처럼 서럽게 좀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으... 아팠겠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물었습니다.
"근데 바늘은 아직 안 꽂았네?"
"하아,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