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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Jul 13. 2022

유방 상피내암이 뭔데요

이틀 뒤 퇴원을 했고 병원에 다시 오기까지의 2주를 꽤 잘 지냈습니다. 씩씩하게 걷는 정도는 되지 못했지만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한 불쾌한 덩어리를 내 몸에서 떼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후련했습니다. 10cm 정도의 흉터가 남았고 종양이 있던 자리의 가슴이 살짝 파이기는 했지만 그건 차차 적응해 나갈 예정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입을 호두 주름 잡히도록 힘주어 다물고 있었습니다. 진료실 안의 모두가 교수님의 말 한마디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가타부타 말없이 한참을 모니터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고요한지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와 시계 똑딱거리는 소리가 숨소리보다도 크게 들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던 엑스레이 화면을 내가 보이는 좀 더 커다란 스크린에 띠우며 말했습니다.

"지난번 수술에서 떼어낸 종양은 6cm 정도고요. 수술 후에 떼어낸 걸 다시 검사해보니까... 악성..으로 나왔어요. 흠... 암이라는 뜻이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속으로는 '아, 그렇구나. 암이구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잠깐 나를 봤다가 이어 말했습니다. "여기 엑스레이 보시면 하얀색으로 모래알처럼 뿌려진 거 보이시죠. 이것도 악성인데....전 절제해야 할 것 같아요." 해야 할 말을 전한 의사는 마우스에서 손을 내리고 나를 가만히 쳐다봤습니다. 그 뒤의 간호사 두 명도, 내 옆에 앉아 있던 엄마도 나를 쳐다봤습니다. 내가 어떤 반응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요.


'음 그렇구나.'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건지 전혀 없었던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옆의 엄마에게 분위기를 환기 시킬 때 하는 어깨 으쓱을 한번 하고 다시 교수님을 봤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엉켜버린 털실을 풀다 실패한 사람처럼 명치가 답답하게 느껴지더니 훅하고, 그러니까 그쯤에 떠 있던 공기주머니의 바람이 한순간 푸슉하고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급격하게 체력을 소모한 것처럼 살짝 허기가 느껴지기까지 한 해괴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라 모두의 얼굴이 물에 잠겼습니다.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왜 그럴 때 있잖아요. 어머 뭐야 이거 눈물이야? 나 우는 거야? 하는 그런 때 말입니다. 난 생전 처음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습니다. 엉엉 소리를 쏟아내면서요. 모두 울어내고 머쓱한 기분이 들 때쯤 생각이라는 것이 돌아왔습니다. 근데 유방상피내암이 뭔데,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나는 다행이면서도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전이가 이루어지지 않아 항암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고 안타까운 것은 오른쪽 가슴을 모두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예전 자신이 맡았던 환자 중에 가장 어렸던 환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15살에 진단받은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요. 나는 한 차례 모두 쏟아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울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꾸할 말이 떠오르니 않아 정말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덩치가 건강의 척도였던 유년기 시절, 나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아이였습니다. 유치원 졸업사진은 조금 과장해서 초등학교 졸업사진이래도 수긍할 만한 정도였고 전교생 아침 조회시간이면 항상 맨 뒷 줄에 서있었습니다. 자리도 항상 에어컨 앞자리 혹은 뒷문 앞. 건강하기도 건강해서 인형놀이보다 축구와 농구가 더 재미있던 아이였습니다. 소위 말해 잔병치레 한번 한 적 없는, 건강 걱정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튼튼이였다는 말입니다.


옛말에 <어렸을 때 잔병치레가 많았던 애들이 나중에 커서 병에 안 걸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생은 어릴 때 여기저기 잔병치레를 했기 때문에 어른들은 동생을 보고 그런 말을 했었죠.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반대로 <어렸을 때 잔병치레가 없었던 애들은 나중에 커서 병에 걸린다> 는 말이 되는 걸까요. 질병 역시 질량 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부분일까요.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말이 참 야속합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진료실을 나와 팅팅 부은 눈을 수습하러 화장실로 갔습니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세수를 하는데 다 쏟아내 바닥난 줄로만 알았던 눈물이 다시 났습니다. 에라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타협 일기

07.04 이력서 쓰기를 잠시 멈추기로 했습니다.

기분은 나빴어도 이 정도면 승부가 난 거나 마찬가집니다. 나는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기대를 품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실망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07.16 밤새 유방 전절제에 관해 검색했습니다. 요즘 매일 밤 이런 식입니다. 자려해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07.19 여전히 오른쪽 가슴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조금 서글픕니다. 책을 읽는데도 계속 같은 줄만 읽고 있습니다.


07.23 최대한 방구석에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그래서 집 앞 놀이터에 갔습니다. 수술 부위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 작은 걸음으로 가 구석 벤치에 앉았습니다.아이들이 재미없는 시소를 꺄르륵 거리며 탑니다. 시소는 엉덩 방아를 찧어야 제 맛인데, 요즘 시소는 스프링이 달려 무슨 재미인지 모르겠습니다.큰 걸음이 가능해지면 그네나 타 봐야 겠습니다.


07.24 창고에서 우연히 형광 분홍 낚시 의자를 발견했습니다. 베란다 볕 가장 잘 드는 곳에 꺼내놓고 앉아 뜨거운 홍차 한 잔을 쥐고 창 밖의 사람들을 내다 봤습니다. 친구와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하교하는 초등학생 둘, 짧은 다리로 내달리는 꼬마, 한쪽 어깨에 유치원 가방을 대신 맨 엄마가 그 뒤를 따라갑니다. 경비아저씨가 나무 밑에서 빗자루질을 합니다. 대파가 삐죽 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아줌마와 인사를 합니다. 아파트 노인정에서는 호쾌한 강사의 손뼉 박자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봉고 문이 드르륵 열리고 닫힙니다. ”태.권. 잘 다녀왔습니다. 사범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고 나가면, 어느샌가 흰 네모선과 그 안에 주차된 차들만 남습니다. 주차칸의 흰색 선을 따라 단지 내를 한 바퀴 쭉 따라갑니다. 홍차 찌꺼기가 컵 바닥에 물들 즘, 면접 전전날에 물에 꽂아뒀던 아보카도 씨앗을 봅니다. 반 갈라진 씨앗이 위로는 줄기를 아래로는 뿌리를 뻗었습니다. 볕이 우리집을 떠나 완전히 옆 동으로 옮겨가면 나도 형광 분홍 낚시 의자를 접습니다.07.26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주방 창으로 바람이 붑니다. 이 바람은 주방과 연결된 뒷산 너머에서 옵니다. 십 대의 어느 날들에도 불었던 이 바람은 더 이상 산을 힘겹게 넘지도, 널은 간격으로 세워진 차량 통제용 드럼통을 지나지도, 공터를 훑지도 않습니다. 결 따라 부서지는 허연 돌들도 없습니다. 사방치기하는 소리도, 저녁 때마다 불렸던 이름들도 없습니다. 아, 바람 하나에도 서글퍼라.


07.27 내일부터는 완벽해져야 합니다. 깨끗하게 결과를 인정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어떤 미련도 없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두 가지를 다짐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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