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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Apr 18. 2022

유난이 필요하면 유난을 떨어야지

이주 뒤에 의사를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는 일주일이면 나오기 때문에 전화로 먼저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환자의 전전긍긍을 예상한 병원의 작은 배려였겠지요. 병원에는 내 번호 대신 엄마 번호를 남겼습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습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합격자 명단 화면 앞에서 옆 사람에게 대신 확인해달라 말할 때의 심정이었달까요.


난 병원의 예상처럼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긴 했습니다. '유방 어쩌고'를 인터넷에 검색해, 나와 비슷한 사례를 찾고, ‘저도요’, ‘걱정 마세요.‘ ’암, 그렇게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아요’ 하는 댓글들을 쭉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내 것도 별 것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처음 며칠간은 혹시 암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만 내가 그 정도로 특별한 일을 당할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니 또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이건 암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그러다가도 갑자기, 그러니까 예를 들면 밥을 먹다가 라든가 드라마를 보다가 라든가 하는 정말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어떤 걱정의 덩어리가 작게 툭 나를 건들고 가면 다시 암이 아닐까 하는, 초조함의 기원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날, 엄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갔습니다. 엄마는 여행을 취소할지 말지 고민했습니다만 난 엄마가 계획대로 여행을 가길 바랐습니다. 예전부터 잡아놓은 여행이기도 했고, 엄마가 여행을 안 가게 되면 그 자체로 엄마는 내 종양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 될 테니까요. 그건 암이라는 결과에 힘을 실어주는 일 같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여행을 가게 되면 결과도 뒤집을 만큼 강력한 믿음이 양성 종양이라는 결과에 힘을 실어줄 것 같았습니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여행을 갔습니다. “그래 어차피 아닐 테니까.”


그날 오전 내내 나는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신경을 온통 휴대폰에 쏟으며,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습니다. 의자를 빙빙 돌리다가 반대로 돌리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그러다가 긴장감을 털기 위해 집안을 방방 뛰어다녔습니다. "와! 와! 긴장되는구먼" 혼잣말로 털어냈습니다. 숨이 헉헉거릴 정도로 뛰어다녀서 다시 의자를 빙빙 돌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자 엄마는 남은 여행을 즐겁게 보낼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 딸! 양성이래. 그러니까 이제 걱정하지 말고." 엄마에게서 검사 결과를 전해 듣고 나서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습니다. 안도하다 못해 의기양양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그럼 그렇지, 암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남은 일주일은 평소처럼 보냈습니다. 엄마도 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 피는 간간히 흘렀다가 멈추길 반복해서 얇은 손수건을 대고 지냈습니다만 그걸 제외하고는 아픈 곳 없이 멀쩡했습니다.


병명은 관내 유두종, 의사 말에 따르면 6cm 정도 되는 크기라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계속 피가 흐르니빨리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나는 아주 잠시 머뭇거리다가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수술하는 방법밖에 없나요?“

정작 말하려니 우습지만, 인터넷 사람들 말이 양성종양은 맘모톰이라는 시술로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아주 간단하다고 그랬다고요.

“네 전신 마취 수술하셔야해요.”


이전에 전신 마취를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 급성 맹장 수술도 해 본 적이 있고요.

다만 이렇게 단번의 진단에 수술을 결정한다는 게 마음에 차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전히 인터넷 사람들의 말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도 있습니다. 다른 의사는 다른 대답을 해 줄지도 모르니까요. 일단 스케줄을 보고 다시 예약하겠다고 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는데 속으로는 다른 병원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료실을 나오는 데 진료실에서부터 내내 말이 없던 엄마가 말했습니다. “응급 상황이라는 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건데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무래도 대학병원이 낫지 않을까.”


나는 이래저래 괜히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마음 차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유난밖에 떨게 없어서 다른 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소견서와 함께 받은 검사지 한 다발을 챙겨 들고 제일 처음 전화했던 대학 병원으로 갔습니다. 엄마 또래이거나 그것보다 나이 든 여성들이 대기실에 빼곡히 앉아있었습니다. 지난 병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 앉아 있는 것이 마치 내가 엄마를 따라온 보호자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어찌나 다행이던지요.


우리는 복도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많다. 그치.”

“그러게. 아휴 아프지 말아야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 지나가는 걸 보는데, 유독 정수기 앞의 여성 한 명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성은 수분 간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일회용 컵에 물을 쪼륵 받아마시더니 다시 컵을 내리고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여성은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울었습니다. 나는 연민의 감정이 들어 여성을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순간 나의 시선마저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옮긴 곳에도 혼자 울음을 삭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진료실을 나오는 아주머니, 부은 눈으로 탈의실을 나오는 아주머니. 나는 숙연한 마음이 들어 옆에 앉아 있던 엄마를 쳐다봤습니다. 엄마도 나와 같은 것을 봤는지 가만히 내 손을 움켜 잡았습니다.


두 번째 의사의 결론도 새로울 건 없었습니다.아주 작은 기대가 있었지만 워낙 작은 기대였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었고, 엄마도 대학병원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는지 우리는 큰 의문 제기 없이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유난도 떨었겠다,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한 달을 열심히 쉬고 원래의 삶을 되찾을 계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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