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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May 16. 2022

본관 외과 남성 코드 블루 종료

첫날은 6인실에 자리가 있어도 2인실을 배정해준다는 입원 괴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괴담이 진짜였던 걸까요. 입원 서류에 6인실을 신청했습니다만 첫날 2인실을 배정받았습니다.


병실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는 했으나 내 마음은 더 어쩔 수가 없어 1박 입원비를 물었습니다. 6인실 하루 입원비의 5배. 엉덩이가 들썩거렸습니다. 게다가 입원 첫날에는 병원복만 입고 있을 뿐 수액 줄을 메달고 있는 것도,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일론 환자처럼 보였습니다) 병원복으로 환복을 하고서도 짐 풀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2인실을 써보겠나 하는 마음이 들어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짐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복도 맨 끝의 2인실의 복도편 침대를 배정받았습니다. 창가 쪽 침대 아주머니는 커튼을 살짝 걷어 인사를 하고 다시 침대 커튼을 닫았습니다.


아빠와 남동생은 내가 친구들과 2박 3일 여행을 간 줄 알고 있었습니다. 보름 뒤에 입대를 할 동생에게는 더욱이 알릴 필요가 없었고 또 아빠는 여전히 내가 그날 면접에 간 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면접날 온 아빠의 문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2박3일 수술 대작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괜히 얘기해봤자 신경만 쓰고 뭘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그러나까 우리 둘이 해결하고 나중에 말하자.”

엄마는 다음날 아침 일찍 오기로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을 흔들고,병동을 한 바퀴돌고,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8시도 안 된 초저녁이었는데도 휴게실에서 일일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병동은 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병실도 벌써 불이 꺼졌습니다. 나는 조용히 머리맡의 개인 등을 켜고 침대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양치도구와 충전기, 이어폰 양말 몇 짝 고무줄 네 개, 며칠의 외박에 적당한 짐 사이에 끼워 온 하이틴 로맨스 책을 펼쳤습니다. 간단한 수술이라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수술은 수술,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니까요. 전날까지 읽던 인문학 책을 가져올까 했지만 굳이 평소에도 얻지 못한, 인생이 어쩌고 하는 것에 대한 답을 굳이 병원에서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대신 낯간지럽고 유치한 로맨스 소설을 가져왔습니다. 방법이 통했는지 난 그 책을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병원에 책을 가져가려거든 '사탄들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상속자들 중) 같은 대사가 있는 걸로 골라가세요.


책을 덮으니 아홉시 조금 넘은 시간이 됐습니다. 그대로 침대에 기대 눈을 감고 아무 생각하지 않기 위해 발가락을 까딱이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병동 전체에 울렸습니다. “본관 외과 남성 코드 블루”(정확한 멘트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코드블루가 위급한 상황에서 나오는 방송이라는 것 정도는 드라마에서 봐서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소란이라도 들릴까 싶어 숨도 쉬지 않고 귀를 기울였는데 병동은 방송을 듣지 못한 것처럼 조용했습니다. 어딘가에는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코드 블루를 실제로 들어 본 것은 처음이라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본관 외과 남성, 그 남성도 과거의 언젠가에는 건강하기만 했던 날들이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바로 전까지도 건강했을지 모릅니다.


“본관 외과 남성 코드 블루 종료”

병동은 미동없이 조용했습니다. '코드 블루 종료'라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상황이, 그러니까 삶이, 종료됐다는 것일까. 응급 상황을 잘 넘겨 종료 됐다는 것일까. 인문학 책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소용없게 돼버렸습니다. 잠시 뒤 한 차례 헬기 뜨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 역시 어딘가 죽음의 경계에 들어온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소리였던 걸까요. 사람은 죽음 가운데에 살아 있는 것인지, 살아 있음 가운데 죽는 것인지. 나는 죽음사이에 살아 있다는 것이 생경해 그 뒤로 한참동안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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