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닥 소설집
아침 신문을 덮다가 제이는 미처 닦지 못한 뭔가가 있는 듯 입술을 실룩거렸다. 최연소 상무, 40대 임원이 온다. 제이가 신문을 덮은 페이지는 바로 거기였다. 흑백 증명사진과 함께 기재된 A그룹의 40대 상무. 엄밀히 말하면 상무 대우였지만, 어차피 그게 그거 였다. 자신이 경기도 어딘가에서 아이 셋을 키우느라 허덕이는 동안 신문에 얼굴과 이름을 나란히 올린 그 아이는 새해 대기업 임원진의 자리에 서 있었다.
제이는 생각했다. 영어는 내가 걔보다 잘 했어. 학점도 내가 더 좋았을 걸. 그러다 또 생각했다. 아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하긴, 걔는 이름부터 예뻤다. 초중고 동창에 대학까지 같은 과를 진학했다. 세 반 밖에 없는 초등학교에서 지영이니 은미 같은 이름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이었다. 그건 중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 였다. 출석부를 훑어보던 교과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의 이름을 먼저 호명했다. 누가 지어주셨니? 이름 참 예쁘다.
아니 더 파고 들어가자면 그 아이는 이름도 예뻤다. 짙은 눈썹과 큰 눈, 제이는 가져보지 못한 가는 목소리를 지닌 그 아이는 얼굴도 예뻤다. 선생님들은 출석부에서 그 아이를 호명하고는 뒤따라 항상 그렇게 말했다. 이름만 예쁜 게 아니라 얼굴도 예쁘네.
제이는 그 얘기를 적어도 여섯 해는 들었을 거라 헤아려봤다. 아닌가, 초등학교 때 4년 같은 반에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 대학교 까지 합하면 십년 세월이었다.
이름만큼 얼굴도 예쁜 그 아이는 지금 대기업 40대 상무 대열에 합류했다. '유리천장을 무너뜨리고 있는 여성들' 같은 수식어를 달고. 작년에는 모교에서 후배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선배 중 한 명으로 뽑혀 강연도 했다고 들었다. 나는 작년에 뭘 했더라. 셋째 기저귀 떼느라, 늦게 까지 지속 된 밤중 수유를 끊느라 허덕거렸던 여름과 가을이 있었다.
그 아이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제이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그 아이가 하고 있는 SNS를 즐겨찾기 해 놓고 밤마다 들여다봤다. 처음엔 아이들을 재우고 적막한 밤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 시작한 소소한 재미였다. 그러나 점점 놓칠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되어갔다. 그 아이가 갔다고 하는 뉴욕과 도쿄, 오사카, 헬싱키와 런던 등을 매일 밤 들여다봤다.
제이는 알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우리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이렇게 오래된 인연인데, 왜 너는 거기에 나는 여기에 있는 거지?
제이는 신문을 덮고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해에 반쯤 묻힌 집안 풍경을 바라보았다. 첫째가 벗어 둔 잠옷과 남편이 읽고서는 아무렇게나 겹쳐 둔 책 몇 권, 색연필과 사인펜, 접다 만 색종이. 눌어붙은 시리얼 그릇과 뚜껑이 열린 잼통과 우유팩.
반듯한 인스타그램 속 그 아이의 거실 풍경에는 없는 피사체들이었다.
그때, 유학을 갔어야 했을까?
제이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건 실현되지 못할 이야기에 대한 헛꿈, 망상이란 걸 알고 있었다. 언감생시 유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집안 형편을 몰랐던 건 아니다. 그래도 스카이 출신인데, 내가. 명문대 출신인데, 내가. 엄마는 말했다. 해 준 거 없는데 공부 잘 해줘서 고맙다고, 졸업하면 좋은 데 취직해서 너 원하는 거 다 하면서 살라고. 제이는 졸업하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내가, 명문대 출신이라고. 고등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학교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학교 출신이라고, 그런 내가 취업을 못하겠어?
제이는 3학년 겨울 방학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백 통 원서 쓰면 하나는 될 거라고 선배들이 말했고, 자소서 첨삭 강의도 듣고 백 프로 합격 보장이라는 신촌 어디 스튜디오에서 증명사진도 부러 찍으러 갔다. 토익 시험도 꼬박꼬박 응시했다.
4학년 1학기에 원서를 낼 수 있는 곳은 미리 다 내보라고, 서류 통과하고 면접까지 모의고사 보는 셈 치고 해보라는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제이는 준비한 서류를 하나씩 보냈다. 자소서를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서류조차 통과되지 못하고 한 학기를 보낼 무렵, 제이가 C기업 서류 합격 문자를 받고 첫 면접을 보러 간 날, 앞자리 면접관이 옆 자리 면접관에게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진이랑 다르네. 거 봐. 내가 뭐랬어? 요즘 애들 다 이렇게 고쳐온다니까. 인상이 별로야.”
제이의 첫 인상은 그랬다. 넌 눈이 무서워. 가뜩이나 쌍커플도 없고 눈도 안 큰데, 앞만 보고 있으면 화 난 사람 같아. 웃어봐, 좀.
제이의 친구들은 침묵하고 있는 제이에게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작은 눈, 전형적인 동양인 눈매는 제이 집안의 내력이었다. 언니와 동생은 면접을 보고 온 제이의 말을 들은 후 아르바이트 비를 털어 쌍커플 수술을 했지만 제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원석에 가까운 게 내 매력이야. 그리고 나는 언니나 동생처럼 학벌에서 밀리지도 않잖아?
제이의 학습 능력은 제이의 전 재산이었다. 나는 똑똑해. 나는 책을 많이 읽어. 나는 너희 보다 아는 게 많아. 나는 매일 공부한다고. 그게 제이가 가진 무기였고, 방패였다.
그러나 제이의 방패와 무기는 그 아이 앞에서 만큼은 무력해지기 일쑤였다.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외모와 깡마른 몸, 허스키한 목소리, 정육점 둘째 딸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그 아이 옆에 서면 더 도드라졌다. 공부만 잘한 제이와, 공부도 잘한 그 아이의 간극이 분명히 보이는 순간은 그 아이 옆에 있을 때 였다.
정확히 백 서른 세 통의 서류를 보낸 후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취업한 제이는 그 아이가 미국으로 유학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 동부 사립 대, 일 년치 학비는 제이가 받을 연봉의 다섯 배 였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때 내가 앞뒤 재지 말고 유학을 갔더라면 달라졌을까?
- 여보, 상무는 보통 월급이 얼마나 돼?
- 월급? 상무는 연봉으로 말하지. 대기업 임원이면 보통 2억쯤? 왜?
제이의 남편 역시 지난주에 팀장으로 승진했다. 돈 앞에서면 악착같은 아빠가 싫어서 별 욕심 없어 보이는 남자를 만났는데, 정말로 모든 것에 욕심이 없었다. 셋째 아이 역시 제이가 졸라서 가진 거였다. 제이는 결혼 상대를 고를 때에도 많은 걸 따졌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적어도 내가 낳을 아이들에게만큼은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었다. 키, 외모, 집안 분위기, 학교까지. 제이는 성에 차지 않는 소개팅은 하지 않았다.
야, 거울 좀 봐. 솔직히 네가 외모 고를 수준은 아니잖아? 쇼핑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너도 뭔가 있어야지?
하지만 제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에겐 똑똑한 머리가 있어. 그거면 된 거 아냐? 난 매일 읽고 쓴다고. 나랑 얘기하면 다를 걸? 친구들은 모두 행운이라고 했다. 제이의 남편 말고 제이가.
너처럼 안하무인 독불장군에 옹고집과 결혼을 결심한 남자가 있다니. 제이의 친구들은 이런 말도 했다.
솔직히 너랑 어릴 때 안 만났으면 우린 친구가 되기 어려웠을 거야. 필터 없이 내뱉는 말들, 조심스럽지 못하고 급한 성격들 말이야. 어차피 너는 이런 말을 해도 안 들리겠지만.
제이는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의 말이 거슬리지도 않았다. 원석을 알아차릴 사람이 있다는 제이의 신념 같은 그것을, 보란 듯 결혼으로 증명했으므로. 그러나 결혼 이후 다시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특히나 아이를 낳고 기르고 낳고 기르고 낳고 기르고를 반복하는 동안, 제이가 읽는 것, 제이가 생각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제이는 답답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저렇게 욕심 없는 남자와 결혼 하면서 부터일까?
SNS 속 그 아이가 읽는 책 수준은 나보다 한참 떨어지는데. 겨우 베스트셀러나 고르는 주제에. 자기 계발서 라니,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잖아.
하지만 그 아이의 SNS를 들여다보는 것은 제이의 길티 플레져 같은 일이었다. 어플을 삭제해보기도 했지만 보지 않으면 궁금했고, 그 아이의 블로그를 탐닉하다 보면 엄마 몰래 동생 분유를 훔쳐 먹던 그 맛이 났다. 그 아이는 유학에서 돌아와 뭘 하는지도 모르게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한 모양이었다. 살림 블로거로 거듭나려는지 파스타 하나를 내어도 양모로 만든 테이블 매트 위에 검은 도자기 그릇과 어울리는 유기 커트러리를 올렸다. 첫째 아이에게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어 준 어느 날, 제이는 자신의 집에는 그 아이가 쓰는 살림살이와 비슷한 물건이 단 한 개도 없다는 걸 알고 중고시장을 뒤졌다. 제이는 밤마다 그 아이의 블로그를 훑고 다음 날이면 중고 마켓을 들락 거렸다. 어느 날은 아이들만 두고 독일에서 직구했다는 그릇 세트를 사러 차를 몰고 다녀온 날도 있었고, 을지로 조명 가게에서 그 아이의 침실 조명 카피 품을 10분의 1 가격에 파는 걸 보고 충동적으로 사온 날도 있었다.
제이는 그 아이가 갔다는 카페를 찾아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길을 아이 셋과 동행했다. 그 아이가 영혼을 내 주겠다고 적은 라떼를 시키고 아이들에게는 라떼 가격 만큼의 초코 케익을 시켜주었다. 케익 한 조각은 금세 사라졌고 아이들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영혼은 라떼에 팔리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귀를 먹먹하게 하는 음악소리와 그에 맞춰 톤이 올라가는 사람들 목소리에 팔릴 지경이었다.
제이는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그 지점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잘.
‘이번에 꽃님이 A그룹 상무 대우 된 거 기사 봤어? 대박. 담에 만나면 법카로 쏘라고 해야겠다.’
‘있는 집 자식이잖아. 법카 없어도 충분.’
‘헐, 정말? 난 왜 몰랐어?’
‘걔네 할아버지랑 아빠가 C그룹임원이었잖아. 아빠는 아직 현직일걸?
‘걔 이름이 그냥 꽃님이가 아니에요. 여러분. 그게 다 누구든 알아보라고 지은 이름입니다.’
세상에 평행선이 어딨어, 다 사다리꼴이야. 사다리꼴? 사는 동안은 아랫변을 향해 벌어지고 죽으면 윗변에서 만나는 거지.'
제이는 마지막 카톡을 읽고 카페 문을 나섰다.
차 앞뒤로 좁은 간격으로 주차 된 차들 사이를 왼쪽 오른쪽으로 여러 번 돌렸다 풀면서 이리저리 들락거리다 겨우 빠져나왔다. 뒷자리에 앉은 셋째가 “엄마! 바닥에 바퀴가 춤 췄네!” 라며 얕게 눈자락이 깔린 바닥에 제이가 그린 바퀴자국을 가리켰다. 뫼비우스의 띠. 무한히 반복되는 띠를 떠올렸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