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닥 소설집
아무 말.
한참 유행한 노래가 있다. 아무 노래나 틀어 어떤 춤이라도 추라는 가사의 노래.
나도 문서 창을 열어 아무 말이나 해보기로 한다. 하얀 무지 노트 처럼 줄 없는 하얀 창에 검은 커서가 반짝인다. 바람은 시원하나 나는 여전히 회색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빛바랜 남색 집업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리고 앉아 있고 그렇게 계절도 시간도 한 박자 어긋난 채로, 아무 말이나 하기로 한다.
아무 글이나 써야 하니까. 이번 주 분량은 1만자. 200자 원고지 50장 분량이다. 장당 2000 타, 10만 타 정도면 일주일 근근히 살아갈 수 있다. 일주일에 발간되는 디지털 신문이 5부, 페이지는 10페이지 내외. 한 페이지에 필진 1명, 5천만 인구 중 50명만이 글을 쓸 수 있다. 출판의 시대는 이미 종료된지 오래 이고, 오직 신문만이 살아 남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는 시대는 어떠한가. 책이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물성 자체가 귀해서 책이 보관되고 있는 서고에는 신분과 직업이 확실한 사람만이 입장 가능하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활자를 읽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영상에 의존한다. 글을 배울 필요가 사라졌고, 모든 미팅은 녹화된다. 오직 말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활자를 아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나는 선택받은 자와 다름없다. 이렇게 기록을 남겨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 그래서 언제든 아무 말이나 해야 한다.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든 적어둬야 한다. 글은 사라지고 말테니. 사라지고 말 것에 왜 이렇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곧 과거이고 지금이 곧 미래이므로.
그렇다. 이 또한 아무 말이다. 나는 어떤 책임도 의무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다음 주에 살 빵과 과일과 맥주를 위해 아무 말을 쓴다. 선조들은 넘치게 글을 마주했고, 넘치게 책을 찍어대면서 자연을 훼손했다. 그들에게 받은 교훈이 지금 이렇게 돌아왔다. 글자는 흔한 것이지만, 흔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게 되었다. 마치 한 해 살이 들풀처럼 글은 땅 속으로 공기 중으로 흩어져 갔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귀하지 않은 글을 쓰면서 귀하지 않은 보수로 근근히 배를 채우는 직업을 갖고.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한가?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지만 그 또한 필연의 집합체일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도서관 관장이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서였다. 전국에 50여개가 채 안 되는 도서관에는 필경사 비슷한 무리가 있는데, 이들은 주기적으로 글자를 입력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사회적으로 문자는 사라지고 있지만, 도서관이란 곳이 문자를 보관하는 곳이므로 필경사 비슷한 무리들은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골라 무심히 문서 창에 입력한다. 그렇게 입력한 문서는 국가 전자 도서 기록원에 보관된다. 나는 어릴 적 부터 부모님을 따라 도서관을 들락거렸으므로 문자란 것과 글을 쓰는 것을 보는 일에 익숙했다. 집에 없는 책이 넘쳐나는 그곳의 퀴퀴한 종이 곰팡이 냄새를 사랑했다. 그러다 열 일곱 살에 스승을 만났다. 그는 5천만 인구 중 50명에 해당하는 신문 필진이었다. 스승은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열람 신청을 하고 들어와 이런 저런 책을 하루 종일 읽고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서가에서 마주친 나에게 레이 브레드버리 책을 읽어봤냐고 물었다. 아직 이라는 내 대답에 그는 '도서관을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자네에게 그 책이 아직 이라니, 유감이로군.' 이라며 책을 읽고 일주일 후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대체 무슨 책이길래 싶은 궁금증과 혹시나 읽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급한 마음에 도서관을 뒤졌다. 전국에 분포된 도서관은 동일한 책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 게 원칙이었을 뿐만 아니라, 필경사 비슷한 무리가 입력한 책이 국가 전자 도서 기록원에 보관 되면 동시에 파쇄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도서관은 많은 양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마침 도서관에는 딱 한 권의 책이 남아있었다. 화씨 451, 이 책은 마침 그 주 입력자료 였다. 당시 연애 전선이 삐걱거려 만사가 복잡다단했던 필경사에게 부탁해 대신 일을 맡아 일주일 내내 나는 책을 읽고 썼다. 글자는 익숙했지만, 뭔가를 써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열일 곱이 될 때 까지 나는 글자를 써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종이는 사라졌고, 태블릿 위에 기록되는 것은 오직 숫자 뿐이었으므로 나 뿐만 아니라 내 또래 아이들은 숫자로 기록하고 그림과 영상으로 대화하는 게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글을 쓸 수 있다니. 그것은 생경한 경험인 동시에 짜릿한 쾌감을 동시에 안겨줬다. 생각한 것이 활자로 남았다. 문서 입력 프로그램은 공인된 컴퓨터에만 설치할 수 있었고 필경사용 컴퓨터가 바로 그것이었다. 새창을 열어 개인 문서를 작성하는 일 또한 허가 받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명이었다. 써야 하는 운명.
일주일 후, 나는 스승을 만났다. 자네에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지. 그는 책 이야기는 하지 않고 바로 자신의 노트북을 열어 문서 창을 띄웠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참 키보드 위에 머물렀다. 무엇을 써야 할 지, 생각은 늘 많았으나 나의 버추얼 아이덴티티가 받아적었던 뇌 속 이야기를 막상 현실의 내가 적으려 하니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그때 나를 보며 스승이 말했다. 아무 말이나 써보게. 아무 말, 이렇게 말일세.
아무 말을 적기 시작한다. 창가에는 바람이 지나가는 게 보이고, 빨간 세이지 꽃이 흔들린다. 그 옆에 나란한 청보리 얼굴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늘은 파랗고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은행잎이 눈부신 초록으로 변하는 계절에 나는 아무 말을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