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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16. 2024

[다케오] 로몬 말고 교토야

물 흐르듯 그냥 그렇게 여행한다. 인생도.

진짜 숨은 맛집일까?! 아무렴 어때! 


몇 번 발 구르기 하지도 않은 전기 자전거지만 가볍게 먹은 아침 덕분에 점심때에 맞추어 배가 고파온다. 이 작은 동네에 이탈리아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어 열심히 자전거를 굴려 당도했지만 아쉽게도 만석이라 어렵단다. 직원은 그 대신 자신의 숨은 맛집을 알려준다. 직원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절대 방문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식당. 점심시간임에도 아무도 없다. 들어온 내가 민망할 정도로 당혹스럽게 손님인 나를 맞이한다. 첫 손님이라 반가운 건지, 아님 비 맞아가며 자전거 타고 우리 식당에 찾아오다니! 하는 표정인 건지, 어라 외국인이네 하는 표정인지 동공이 흔들리는 당황스러운 눈빛을 나에게 들켜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는 오고 갈 곳도 마땅치 않고 배는 고프니 2개의 테이블 밖에 없는 이곳에 앉아 먹어야겠다. 구글 평점은 높으나 몇 개 안 되는 리뷰는 신뢰감보다 의구심을 심어준다. 지인동원 리뷰인가, 추천해 준 언니의 동생네 가게인가. 아님 정말 히든 맛집인가. 음식이 나오기까지 혼자 앉아 꼬꼬무 한다. 모든 것은 기우였다. 이탈리아 코스요리는 맛보진 못 했지만 이곳에서 여행기간 중 가장 맛있는 쌀밥을 먹었다. 분명 이곳은 저녁에 펍으로 운영되고 낮에는 놀리기 아쉬워 점심 장사 하는 곳인데 쌀밥이 이렇게나 맛있을 줄이야! 손들고 "여기 한 공기 더요!" 하고 외칠뻔했다. 가지와 배추를 잘게 썰어 넣은 된장국도 심심하니 내 스타일이고 주문한 찹스테이크도 나름 즐기지 않고 맛있다. 탄수화물, 단백질, 섬유질이 고루 갖추어진 매일 내가 먹고 싶은 한 접시 요리다. 이탈리아 코스요리에서 한 접시 단품 요리로 메뉴가 바뀌어 비용도 절약되고 예기치 않은 맛집을 하나 얻었다. 아리가또!

만석이었던 이탈리아 코스요릿집 cobacini (左) / 소개받고 간 레스토랑 IRIE, 야옹이 찰칵! (右)


IRIE 흰쌀밥은 엄지 척!



당일온천은 로몬 말고 교토야


이제 마지막 목적지 다케오 온천 로몬! 역 이름도 다케오 온센역이다. 다케오에서 온천을 안 하면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격이지. 어차피 목욕할 건데 하고 비 맞으며 빨빨거리고 다녔는데 세상에나 오늘은 쉰다. 연중무휴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공사가 한창이다. 모든 시설들을 이용할 수 없단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서성이다. 바로 앞 여관에 들어가 당일 온천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미안하지만 안돼~", "혹시 당일 온천 가능한 곳 있을 가요?", "교토야에 가봐’’ “네~! 감사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여유 있게 온천을 즐기려면 여유 있지 않게 발을 굴려야 한다. 드디어 당도한 교토야 호텔. 입구부터 레트로 감성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 영화에서나 볼법한 아주 오래된 자동차가 반들반들 잘 닦여 호텔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그 옆에 오늘의 내 길동무, 빨간 자전거를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입구로 들어가니 다케오 온천 로몬 앞에서 함께 아쉬운 발길을 돌렸던 홍콩친구들이 먼저 와 있다. ‘너도 왔니?!’ ‘나도 왔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짓이 ‘너야?’ ‘나야!’ 한다. 이곳에선 당일 입욕료 1,000엔을 내면 톡톡한 고급 호텔 수건을 작은 거 하나, 큰 거 하나 대여해 준다. 하카타에서부터 싸 온 짐. 수건과 목욕용품을 일부러 들고 왔는데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 렌탈 보관소에 고이 맡긴 상황이라 수건을 빌려야 했는데 다행히도 입욕료에 수건값이 포함되어 있다. 수건도 준비해 갔던 수건 보다 보들보들하고 톡톡해 기분이 좋다. 대욕장으로 가는 길. 나름 객실도 여럿 갖춘 큰 호텔인데 별달리 길 안내가 없다. 보아하니 사람들이 오랜 세월 밟고 다닌 바닥, 닳고 닳은 카펫이 이정표다. 더 이상 카펫의 기능이란 찾아볼 수 없는, 단지 레트로의 한 장식인양 놓인 카펫의 해진 방향으로 가다 보니 역시나 대욕장이 나온다. 세련되고 모던한 현대적 시설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단정한 목욕탕이다.  탈의실 기물들은 분명 오래된 것들이다. 세면대 수도꼭지나 의자, 신발장, 다다미 바닥상태로만 봤을 땐 옛 것 그대로인데 어쩜 이리도 관리가 잘 되어있는지 이불 깔고 한 잠 잘 정도다. 세련미는 없지만 정갈함은 곳곳에 있다. 

로몬 임시 휴일로 찾은 교토야,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나와 함께 한 빨간 자전거



비 오는 날 교토야 료칸 당일 온천


이제부터 호사스러운 목욕을 할 시간이다. 얼마나 물이 좋길래 역이름도 다케오 온센인가! 설렌다. 탕은 실내에 하나, 실외에 하나 있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실외에 보통 초록 식물들을 가져다 놓곤 하는데 이곳에는 풀 한 포기가 없다. 다소 실망스러운 외관이지만 오늘은 비가 내린다. 우산 없이 비 맞아 가며 타는 자전거는 처량할지언정 비 내리는 하늘을 보며 노천탕을 즐기는 건 하늘이 허락해야 할 수 있는 온천욕이다. 다행히 소나기처럼 빗발이 거세지 않고 잔잔하다. 바람도 없이 보슬보슬 내린다. 그리고 그 물이 내가 몸담은 온천탕으로 스며든다. 하늘 한번 봤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작심하지 않아도 명상이 절로 되는 운치다.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행위, 목욕을 하고 있다. 그것도 물 좋아 역 이름조차 온센(온천)인 이곳에서 날을 잘 만난 건지 못 만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 내리는 야외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세상 시름 모두 녹아버린다. 머리는 차고 가슴은 따뜻하다. 이 좋은걸 또 나만 해서 아쉽다. 다음에 누구를 데리고 올까?! 아이들?! 엄마?! 그래 기회가 되면 또 오지 뭐. 근데 지금 이 맛은 지금 뿐이니 지금을 충실히 즐기자.

곳곳에 놓인 레트로한 소품들
세월이 말해주는 대욕장 가는 길(左) / 교토야 차창 밖으로 보이는 비 오는 날의 다케오(右)


온천 후 우유 말고 커피 한잔


따뜻한 온천물은 내 몸을 한껏 데워 올렸다. 덕분에 기분도 한껏 업 되어 자전거를 밟고 오니 기차시간 20분을 남겨두고 자전거를 반납할 수 있었다. 애매하다. 그냥 기다리기에 길고 뭘 하자니 시골동네 역 주변이라 딱히 할 것도 없고. 구글맵을 켜본다. 역전 다방. 다케오를 검색하며 깃발을 꽂았던 커피숍. 코앞인 데다 커피 맛도 좋다는데 그냥 갈 수 없지. 사람이 많으면 테이크 아웃을 하고 아니면 10분 안에 순삭해 보리라. 작은 동네의 강점은 어딜 가나 한산하다는 거다. 이곳도 주인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뭘 줄까?" "추천해 주세요. 여기 베스트 메뉴요" 긴 고심 끝에 질문하신다. "가벼운 거 원하니, 중간을 원하니?", "중간이요" 기차 시간이 빠듯한데 긴 고심을 하시니 내 애간장은 녹았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 맛의 강도를 물으시니 왠지 전문가다워 보이고 커피 맛이 좋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커피 맛은 잘 모르나 고기는 미디엄이지 하는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외친 외마디가 이렇게나 다채로운 맛을 선사할 줄이야. 물론 커피를 커피잔 맛으로 먹는 나지만 가볍지 않은 미디엄스러운 맛은 알겠다. 다만 묵직한 맛과는 비교가 어려우니 깊은 질문은 사양한다. 예쁜 컵에 컵 받침과 함께 내어온 정성스러운 커피는 10분 컷으로 단숨에 들이켜기에 아깝다. 조금씩 조금씩 음미해 본다. 기차시간이 설령 촉박할지 언정 지금 내 앞에 놓인 커피를 시간에 쫓기듯 허겁지겁 마실 순 없다. 물론 내 입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천천히 마셔야 한다. 사랑스럽다. 온천 후 먹는 따뜻한 커피 한잔이 주는 여유로운 마음이 사랑스럽다. 절반까지는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음미하다 식어버린 남은 절반은 한입에 끝을 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 본다.  

내공 가득했던 역 앞 커피숍 Qmari coffee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갈 거야


하카타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녹곤 했던 하루를 되짚어본다. 우연히 알게 된 다케오 온센, 가능한 기차표를 구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아침 일찍 시작하게 된 하루, 비몽사몽이나 눈에 들어온 빨간 자전거, 어쩌다 보게 된 녹나무의 속살, 가려했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만석이라 최고의 쌀밥을 먹었다. 다케오 온센 로몬의 임시 휴일로 가게 된 교토야 당일온천 그리고 역전 다방. 비는 왔지만 거세지 않아 다닐 만했던 날씨. 가려했고 하려 했던 것들을 정하고 간 길이지만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가야 할 곳을 못 가 아쉬웠던 발걸음은 아니었다. 우연히 간 곳, 어쩌다 들른 곳에서도 예기치 못 했던 신선함과 즐거움은 늘 있다. 이번 다케오 여행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지나왔다. 다음 여행도, 앞으로 흘러갈 내 시간도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굽이진 길을 지나갈 것 같다.


엄지 척 쌀밥 - IRIE

https://maps.app.goo.gl/VAvW69dWixrjMxV28


당일온천 - 교토야

https://maps.app.goo.gl/t7Y34eHjLBVhrwnk9


역전 다방 - Qmari

https://maps.app.goo.gl/bwwb7ngUMaekCUb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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