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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18. 2024

[아리타] 도자기 보고 밥 먹고

다케오온센역을 베이스캠프 삼아 떠난 여행

이번 여행은 사치스럽게도 일본 벚꽃여행이다. 매번 가는 여행지지만 짧은 여행길 숨구멍 찾아 급작스레 떠나는 여행과 다르게 벚꽃 피는 시기를 예측하고 벚꽃 명소를 미리 찾아 동선까지 짠 알찬 여행. 하나 예상 밖으로 이번 봄은 추웠고 10일이나 뒤늦게 핀 벚꽃.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나 그렇듯 실이 있으면 득이 있는 법! 뜨끈한 온천물에서 양 볼을 스치는 찬 봄바람은 솜사탕 마냥 달달했다.



베이스캠프 다케오온센역


자세히 보아야 어여쁜 봄꽃들을 맞이하기 위해 3일이나 작은 도시, 다케오에서 연박을 했다. 물론 벚꽃 시즌은 보기 좋게 빚나 갔지만 혜자로운 가격대에 괜찮은 숙소를 예약했다. 3일 연박 2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에 소담스러운 무료 조식과 작지만 노천탕까지 끼고 있는 대욕장. 경비 중 절반이 비행기표와 절반이 숙박비인데 평일인 데다 일찍 예약한 덕에 부담 없는 여행길이다. 체크인도 순조롭다. 직원이 내어준 열쇠를 받아 들고 방문을 연 순간, '이게 무슨 냄새지?!' 꿉꿉한 냄새가 올라온다. ‘싸게 예약해서 인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방을 배정받았다. 오래된 카펫과 하수도 냄새는 못 견디겠다. ‘3일이나 있어야 하는데..’ 카운터로 내려가 “안 좋은 냄새가 나는데 방 바꿔줄래요?” 했더니 냄새를 확인하곤 높은 층 깨끗한 방을 내어준다. 연식이 오래된 호텔이라 신관과 구관이 있었고, 구관도 위층부터 리모델링 중인가 보다. 고층 리모델링 방으로 바꾸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다행히 평일이라 만실이 아니어서 순조롭게 방을 바꿀 수 있었다. 침대와 테이블이 다인 전형적인 일본 비즈니스호텔 1인실이지만 창 밖 시원하게 딱 트인 시골 동네 풍경이 정겹게 느껴진다. 나는 이곳에 이른(?) 벚꽃여행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벚꽃 여행의 베이스캠프 '센트럴 호텔 다케오온센 에키마에' 객실, 딱 1인분의 안락함 (左) / 객실에서 바라본 동네 전경 (右)




도자기 마을, 아리타


다케오온센역에서 2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아리타’.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오게 된 도공 ‘이삼평’에 의해 질 좋은 도자기를 생산, 여러 도공들에 의해 계승되어 오며 아리타 도자기의 번영을 이어온 곳으로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최고 영예인 그랑프리 트로피를 받을 정도로 그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최근 들어 후쿠오카 소도시 여행지로 많이들 찾는데 ‘도자기 헌팅(treasure Hunting)'이 인기다. 정해진 시간 동안 바구니에 도자기 그릇 등을 담아 구매하는데 홀가분히 떠난 혼자 여행에 짐스러워 부러 찾지 않았다.


여릿한 빗줄기 맞으며 산책했던 아리타



비 오는 시골길은 조용하다. 인적도 드물고 차도 잘 다니지 않는다.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인가 싶다가도 몇몇 가게들은 오픈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등 돌려 앉아 흙 묻은 도자기를 닦고 있다. 잘 안 들리시는지 인기척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계속하던 일을 하신다. 딱히 물건도 많지 않은데 그냥 이곳이 끌린다. 서성이니 등 굽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이랏세이마세~!’ 크게 인사하며 나오신다. 웃으시며 “둘러봐” 하시는데 뭐 하나 꼭 들고 나와야 할 것 같다. ‘뭘 사지?!’ 무겁지 않게 작은 술잔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가 깨지지 않게 곱게 포장해 주신다. 그리곤 과자가 담긴 봉투를 하나 더 안겨 주신다. ‘선물이야~!’ 다 펴지지도 않은 등 굽은 할머니가 먹을 것을 내어주시니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내가 하나 더 쥐어드려야 할 것 같은데 어린 손녀 챙기듯 과자를 챙겨주신다. 건네받으며 느껴지는 거친 손길이 참 상냥하다. 조용한 시골길 비 맞아가면 온 손님이 고마워서일까?! 아님 정말 손녀 같아 챙겨주시는 걸까?! 고맙다. 길 따라 조용히 걷는다. 사람은 없어도 어쩌다 마주친 인정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겹다.


길가다 들른 이름 모를 도자기 상점 (左) / 등 굽은 할머니가 챙겨주신 과자 (右)



시골길 곳곳이 아기자기하다. 마을 안내문도 자기로 되어있다. 길 따라 물 따라 산 한번 보고 개천도 한번 보고. 시골내기여서 그런지 이런 곳을 굳이 찾아다닌다. 연천 엄마가 봤으면 “우리 시골동네나 여기나”라고 했을 법하다. 이곳을 굳이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예쁜 찻잔을 골라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있어서다. 부슬비가 내리니 커피 맛이 더 은은할 것 같다. 어떤 찻잔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혼자 우산 쓰고 가는 발걸음이 총총총 가볍다. 점심시간을 빗긴 식당은 먹고 싶던 메뉴는 품절되어 아쉽긴 했지만 머무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한적하다. 4인석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천천히 찻잔을 고른다. 꽃 보러 왔지만 꽃이 없어 커피잔에 꽃을 수놓았다. 예쁜 노란 꽃 잔. 한 쟁반에 내어 오는 음식들이 아기자기하고 맛도 좋다. 예쁜 도자기 그릇들이 둘러싸인 곳에 앉아 먹으니 꽃밭에 소풍 나와 먹는 밥 같다. 화장실 세면대도 벚꽃에 새들이 정겹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식당 옆 도자기 가게도 있어 구경 삼아 보고 맛있는 점심 먹기 딱 좋은 곳이다. 핫한 관광 스팟이 있는 곳도 아니고 작정하고 도자기 그릇을 사러 온 것도 아니지만 예쁜 자기 그릇에 담아내어 오는 따뜻한 음식과 커피만으로도 이곳에 온 가치가 있다. 보슬비는 오지만 발걸음은 맑음이다.


아기자기한 찬기에 정성스레 내어온 일본 가정식 (左) / 내가 고른 꽃잔에 담긴 향긋한 커피(右)


 오붓한 노부부의 늦은 점심 식사(左) / 레스토랑 옆 도자기 판매상점(中) / 한국사람들이 많이 열어본 듯한 안내 '열지마라'(右)


키티 캐릭터와 콜라보 한 찬기 세트(左) / 벚꽃이 만개한 화장실 세면대와 거울, 버블숍 디스펜서 (右)



이번 여행 베이스캠프 - 센트럴 호텔

https://maps.app.goo.gl/ZSvGYPBo1q1ddrML6



도자기 찬기에 담긴 맛있는 밥과 따뜻한 커피 - 갤러리아리타

https://maps.app.goo.gl/p1xqA1UKdwcxLeB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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