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오온센역을 베이스캠프 삼아 떠난 여행
벚꽃 여행이 먹방 여행이 됐다. 하카타역 출발 나가사키 일일투어도 캔슬되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모객이 안된 모양이다. 평일은 비행기 표과 숙박비는 저렴하지만 내가 원하는 투어를 하지 못 할 수도 있다. 특히나 비인기 노선은 더 그렇다. 이번 여행 베이스캠프 다케오온센역에서 30분 남짓 신칸센을 타고 나가사키로 혼자 떠나본다. 처음 타보는 신칸센. 80km나 떨어진 곳을 단 30분 만에 도착하다니! 빠르긴 엄청 빠르다.
나가사키 카스테라와 나가사키 짬뽕 먹으러 진짜 갔다.
나가사키는 원자 폭탄이 투하된 도시로 각인되어 있지만 전쟁의 참혹함과 슬픔을 찾아 나선 길이 아니기에 이곳은 내게 조용한 항구도시다. 부산과 비슷하며 아직도 전차가 다니는 곳.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어 'Kazagashira Park' 이정표를 찍고 길을 걷는다. 포토스팟 안경다리도 지나고 시장을 거쳐 본격적으로 오르막 길을 걷는다. 아뿔싸! 또 이런다. 볕 좋은 곳에는 늘 공동묘지가 있다. 목적지만 찍고 올라가니 이 길이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는 길인지 미처 몰랐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좋아 파란 하늘, 흰 구름을 어깨동무 삼아 걷게 되어 등골이 오싹하진 않다. 오른다. 또 오른다. 택시 탈걸. 하면서도 뒤돌아 내려다보이는 시내 전경은 날이 좋아 더 눈부시다. 묘지를 앞뒤로 세우고 집들도 늘어서 있다. 동백섬에서 실컷 봤던 동백꽃도 보이고 길냥이도 산책하는 길이다. 목적지는 Kazagashira Park이나 가는 길목에 미술관이 있어 잠시 들러 본다.
자신만의 아뜰리에를 갖은 할아버지
언덕배기 골목들을 가로질러 당도하니 생각보다 규모는 작고 이곳 역시 아무도 없다. 인기척을 듣곤 이내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나오신다. 몇 점 걸려있지 않은 그림을 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말씀을 건네신다.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이셨고 은퇴 후 이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전시도 한다고 하신다. 한국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작품도 같이 전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내 자연 풍광이 한눈에 들여다 보이는 명당으로 나를 끌고 나가신다. 그곳에 서서 한참을 지형과 날씨에 대해 영어와 일본어로 설명해 주신다. 그렇다. 이곳은 할아버지가 많고 많은 노년의 시간을 평온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며 오가는 이들을 맞이하고 담소를 나누는 아지트다. '부럽습니다. 할아버지!' 본인만의 아뜰리에를 지으시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노니는 삶. 닮고 싶은 삶이다. 나이 듦을 짐스러워하지 않고 여유롭게 즐기시는 노년의 삶. 젊디 젊다. 짧은 시간이라 면면히 들여다보진 못 했지만 내가 살고 싶은 삶대로 해석해 본다. 선물이라며 본인 그림으로 만든 엽서를 손에 쥐어 주신다.
어쩌다 마주친 벚꽃
미술관을 나와 가려던 길을 이어간다. 야호! 드디어 만났다. 벚꽃! 높은 산 햇살을 그대로 받아서 인지 찬 바닷바람에도 꽃이 소담스레 피었다. 무리 지은 만개한 벚꽃은 아니지만 벚꽃여행 기분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앙 다문 봉우리도 탐스럽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파란 하늘, 흰 구름, 초록 잎과 노란 풀꽃들을 배경으로 핑크가 '내가 주인공이야!' 외친다. 이곳은 벌써 벚꽃잎들이 흩날려 떨어지고 있다. 내 마음도 봄 꽃바람 마냥 살랑인다. 겨우내 추워 웅크리고 있던 내 마음이 말캉해진다. 커리어의 한 챕터를 접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까 갈팡이던 마음이 우연히 마주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따뜻한 봄바람을 맞이하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다. 마흔, 불혹을 넘기면 어른이고 세상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내 인생길 위에서 흔들린다. 좀 전에 인사를 나눈 '아뜰리에 할아버지'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작은 벚꽃 잎을 실어 나르는 따스한 봄바람 따라 내가 가는 길도 자연스럽게 핑크빛 이길 소망 한다. 혼자 걷는 발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실어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아침나절에 못 본 지역 농산물 시장도 눈에 들어온다. 일상을 나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전해진다. 길 위에서 일상 아닌 일상을 거니는 내 느린 발걸음이 호사스럽다. 이미 나는 꽃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대에 못 미친 나가사키 짬뽕과 카스테라
나가사키에 가면 꼭 먹는다는 나가사키 짬뽕과 카스테라. 벽면에 유명인들의 사인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추천하는 짬뽕을 먹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맛보다 못하고 짜고 비리다. 카스테라는 누구나 다 아는 그 맛이다. 단정한 찻잔에 분위기로 먹는다. 시즌 상품 핑크 패키지의 벚꽃 카스테라. 상상이 가는 아는 맛일 듯싶다. 굳이 나가사키 짬뽕과 카스테라를 먹으러 부러 먼 길을 비싼 교통비 내고 오지 않아도 될 듯싶다. JR패스와 여유로운 일정, 노면 위로 전차가 다니는 이색적인 풍경을 원한다면 올만하고 왔으니 한 번쯤 지역명이 붙은 이곳만의 음식을 먹어 봐야지 싶으면 먹고 갈만한 음식이다.
기상이변과 일정변경으로 벚꽃 여행은 접고 먹방 여행을 계획하며 떠난 나가사키. 비 개인 맑은 하늘 아래 기대하지 못했던 벚꽃을 마주했지만 부러 찾아간 맛집에서 먹은 나가사키 짬뽕은 기대에 못 미쳤고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맛으로만 본다면 우리 동네 빵집 카스테라가 내 입맛에 더 맞았다. 맛을 떠나 스테인드글라스의 영롱함과 고혹적인 잔에 담긴 커피 향이 카스테라 맛보다 내 기분을 더 좋게 한다. 여행은 언제나 계획과 다르게 예기치 않은 곳으로 흐른다. 인생을 여행에 빗대어 말하곤 하는데 내 인생 역시 ‘뭘 해야지’ 했던 계획은 늘 보기 좋게 빗나가고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매불망 염원했던 취업과 갑작스러운 퇴사. 그리고 지금 길 위에 서있다. 글을 읽고 쓰며 사는 인생을 계획하지만 과연 이 인생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질까?! 의문스럽기도 하고 때론 '아무렴 어때! 하다 보면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거야!' 하며 오늘도 나는 무모한 여행과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나가사키 벚꽃이 제일 먼저 피는 곳 일듯
https://maps.app.goo.gl/ooHBCMyXXLksubTr7
노년의 삶이 부러운 할아버지 아뜰리에
https://maps.app.goo.gl/9zqJm5BZfiXxEeZJ7
영롱한 스테인드글라스와 고혹적인 찻잔의 커피에 취해 먹은 평범한 카스테라
https://maps.app.goo.gl/Bu2N2tQE1HfaatKi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