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같지만 늘 새롭다
좋아서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에는 취향이 깃들여져 있다. 일상이 여행이자 여행이 일상인 나에게 '떠남'은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 여러 곳 중 일본, 그곳에서도 후쿠오카와 삿포로는 현재 나를 누리는데 최적인 곳이다.
왜 일본이니?
동남아로 떠나는 가족여행이나 10시간 이상 가야 하는 장거리 유럽여행을 제외하고 대개 혼자 가는 여행지는 일본이다. 짧은 비행시간과 낮이건 밤이건 여자 혼자 걸어도 안전한 나라다. 혼자 걷던 시드니와 이스탄불, 로마에서 여성인 ‘나’를 휘파람으로 불러대는 경험은 일상이었다. 대낮에 경험해도 불쾌한데 늦은 밤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등골이 오싹하다. 이에 반해 일본은 도심이든 시골길이든 무례하게 대하는 현지인을 본 적이 없다. 도심 속에선 타인에 대해 관심 없는 그들이 무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편안한 여행이다. 내가 그들에게 읽히지 않고 나 역시 그들을 내 방식대로 읽지 않아 내 무의식이 평온하다. 외국인인 나와 현지인인 그들이 서로 해석되지 않고 상호작용하지 않아 좋다. 원하는 게 있으면 돈을 주고 사거나 서비스를 받으면 되는 간결한 관계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편하다.
왜 후쿠오카와 삿포로니?
언제나 일본이지만 또 언제나 후쿠오카와 삿포로다. 물론 도쿄도 가보았고 오사카에 들러 교토와 고베도 다녀왔지만 늘 마음이 가는 건 후쿠오카와 삿포로다.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1시간도 안 되는 비행시간과 비행기값이 서울-부산 간 KTX 보다 저렴해 한때 부산 살던 나에게 피난처였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인지 가장 익숙해 나름 단골도 있고 최적의 동선으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기차로 1~2시간이면 유후인, 벳부, 구로가와, 구마모토, 다케오, 우레시노, 아리타, 나가사키 등 여러 다양한 도시들을 경유하며 여행할 수 있어 늘 가고 싶은 곳, 나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여행지다. 삿포로는 일반적으로 후쿠오카에 비해 비행기값이 비싸다. 우연한 기회에 비수기 시즌에 맞춰 떠난 삿포로 여행에서 홋카이도의 목가적인 풍경에 반해 그 풍경을 사계절 다 보고 싶어 최근 삿포로 앓이 중이다. 일본의 최북단에 있어 늦게 피는 벚꽃을 즐길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날씨와 파랑, 초록, 흰색이 어우러지는 청아한 자연경관이 날 유혹한다. 가을은 알록달록 단풍이 들어 더없이 아름답다. 청의 호수에 비친 단풍들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몸서리치도록 추위는 싫지만 사람 키만큼 쌓이는 눈이 신기하고 눈이 내리는 하늘을 마주하며 따뜻한 노천탕에 앉아 설국을 감상하면 세상 모든 복을 끌어와 내가 누리고 있는 기분이다. 게다가 최근에 엔저로 낮은 경비로 다녀올 수 있어 좋고 간장을 베이스로 한 식문화 역시 나와 잘 맞아 특별한 액티비티를 안 해도 맛집 투어만으로 눈이 즐겁고 입이 호강하는 곳이다.
마니아 또는 모험가?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보는 여행도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나의 여행은 일상의 지친 피로를 씻어내는 조용하게 혼자 거니는 여행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 안정감을 느끼고 몸이 편한 곳으로 가게 되어 매번 일본 후쿠오카와 삿포로다. 이쯤 되면 이곳 마니아라고 할 수 있나? 하고 자문해 보지만 그렇다고 이 지역에 깊은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여자 혼자 자기 편한 숙소, 생활필수품을 효율적인 동선으로 쇼핑할 수 있는 곳, 늦은 밤 혼맥 하기 좋은 곳, 기분 내기 좋은 합리적인 가격의 코스요리, 날 생선은 즐기진 않으니 비싼 오마카세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스시집, 나른한 오후 조용히 앉아 커피와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카페 등 나만의 아지트를 즐긴다. 그렇다고 매번 같은 동선에 같은 곳을 가는 건 아니다. 나름 여행 컨셉이 진화하고 있다. 후쿠오카는 처음 ‘피난처’로 시작해 이젠 벚꽃 여행, 소도시 여행, 구로가와 료칸 여행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삿포로는 시계열을 따라 4계절을 탐닉하고 있다. 비행기표가 넘사벽이었던 핫시즌인 7월 라벤더 시즌과 맥주 축제기간은 이번에 귤 농사를 잘 지어(제주에어 찜특가) 잘 다녀왔고 눈꽃축제와 유빙체험은 언젠가 꼭 해볼 나의 위시리스트다.
같지만 언제나 새롭다
늘 같은 도시지만 새로운 계절, 새로운 장소,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선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가는 마니아적 성향이지만 그 안에서 이전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모색하는 모험가이기도 하다. 예기치 않게 시작된 산길 달리기, 비 오는 날의 시골길 자전거 투어,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 온천욕, 우연히 마주한 오누마코엔과 크루즈 투어(아주 작은 배) 등 색다른 경험은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그리고 언젠가 떠나게 될 여행, 도야 마라톤 대회와 시레토코 국립공원 트래킹은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언제나처럼 후쿠오카와 삿포로, 같은 곳에 가지만 늘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새로운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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