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와 청바지'를 지나 '새로운 시작'으로
함께 떠나기도 하지만 혼자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 또는 친구들, 때론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하지만 홀로 낯선 곳을 다니며 '나'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흥에 겨워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가슴이 뭉클해 눈물이 차오를 때를 감지한다. 그리고 때론 불편한 감정과 생각이 피어오르게 하는 상황을 알아차린다. 혼자 하는 여행은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귀한 시간이다.
비키니와 청바지
호주 골드코스트를 여행할 때 돈도 없었지만 수영도 할 줄 몰라 놀꺼리가 없었다. 아침에 눈뜨면 골드코스트 해변을 절반으로 나누어 오전에 한쪽 해변을 끝까지 걸었고 오후에는 데칼코마니 마냥 반대 해변을 하염없이 걷는 일뿐이었다. 호주생활 내내 입고 다녔던 질긴 어두컴컴한 청바지를 입고 움푹움푹 발이 빠지는 모랫길을 나는 온종일 걷기만 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 비키니 언니들은 넘실대는 바닷물을 가르며 보드를 탄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정해진 길, 늘 같은 노선을 매번 같은 방향으로 걷는 반면 그녀들은 드넓은 망망대해를 제 몸보다 큰 보드판 위에서 자유자재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내달리는 모습이, 즐기는 삶이 도전적이고 유쾌해 보였다. 설령 자빠져 바닷물에 빠지더라도 말이다. 브리즈번 누사 비치에서도 그랬고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도 나는 늘 걸었고 비키니 언니들은 멋지게 서핑보드를 탔다. 당시 들었던 생각은 ‘그곳에 가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즐겨보자. 수영도, 서핑도 못 하지만 비키니는 입을 수 있었잖아!’ 남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스스로 즐겨보리라. 설령 그것이 비키니를 입고 자빠지는 경험이라도 말이다.
조금만 더 가볼까? 한번 더 해볼까?
그래서 그랬을 까. 내 여행 동반자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나와 함께 하는 길은 고행길이요. 힘든 여행이라 말한다. 이탈리아 포시타노를 갔을 때도 크루즈 타고 여기까지만 가볼까 하고 꼬셔서 눈앞에 보이는 버스를 가리키며 "저 버스를 타고 라벨로까지 올라갔다 오면 좋을 것 같아" 했다. 물론 그곳까지 다녀왔다. 베네치아에 갔을 때도 무라노까지만 갈까 하고 배에 올라 부라노를 찍고 헤밍웨이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도 왔다 갔다는 '로칸다 치프리아니'가 있는 토르첼로섬까지 가고야 마는 여행자가 되었다. 팔라우 여행에서도 "상어가 나타났다!" 하고 다들 피하지만 상어 볼 기회가 내 생애 또 언제 있을까 싶어(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오리발 끼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사람을 헤치지 않는 순한 상어다. 그리고 마침내 필리핀에서는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고야 말았다. 그곳에 가면 그곳을 최대한 누려 보려고 한다. 이왕지사 비싼 비행기 타고 왔는데 본전도 뽑아야 하고 내가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오나 하는 마음으로 찍고 찍고 또 찍고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낯선 곳이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런 활동량이 많은 여행자는 아니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숙식을 한다는 건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대학 때 친구들과 떠난 경주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큰 장마로 철길이 유실되면서 구미에 내려 하룻밤을 어쩔 수 없이 잤을 땐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여관방 구석에 누워 일어나질 않았다. 젊은 시절 고등학교 친구들과 갔으면 이것도 추억인데 하고 즐겼을 만한데도 당시 예상치 못한 일정과 여행지는 두려움과 낯섦, 우울감, 그리고 변비를 선사했다. 이랬던 내가 호주에서 우프 생활을 하며 이 집에서도 자 보고 저 집에서도 자보곤 좀 더 적극적인 여행자가 된 것 같다. 거실 한쪽 구석에 간이침대를 놓고 툭 치면 자빠지는 칸막이를 두른 곳에서도 자보니 어디든 등 대고 불 끄면 자는 곳이었다. 가리는 곳이 없으니 낯선 곳에서의 불안함은 곧 설렘으로 바뀐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해방감
하나 설렘도 어느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법. 쌍둥이 육아와 직장 생활로 내 몸과 마음은 여러 번 고아 구멍이 숭숭 난 사골 뼈 마냥 잡고 뒤흔들면 으스러지는 지친 상태였다. 이때 낯선 곳은 설렘보다는 생존을 위한 피난처였다. 그곳이 내게는 비행시간이 짧아 가깝게 방문할 수 있던 일본. 그중에서도 후쿠오카 정확히 말하면 하카타 역 주변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말들은 고립감과 동시에 해방감을 선사했다. 먹고 자고 쉬고. 무엇을 특별히 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추슬러지는 쉼터다. 아이들이 기저귀를 때고 스스로 먹고 서고 어느덧 책가방을 둘러메고 친구들과 함께 스스로 등교하기까지 나의 직장생활은 계속되었고 나는 나만의 동굴 ‘하카타’로 여러 차례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더 이상 직장생활을 병행하지 않아도 되는 5월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날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젠 피난처를 찾아 떠나지 않아도 된다.
독립된 여행, 해방된 나
9 to 6 하는 회사로부터의 독립과 어린아이들로부터의 육체적 해방은 내 여행일대기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된다. 혼자 긴 여행이 가능해졌다. 이제 감질나게 당일치기나 1박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여러 날을 혼자 여행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혼자 한 달 살기를 감행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요즘은 나름 컨셉을 잡아 혼자 사분사분 여행을 즐기고 있다. 혼자 떠나는 3월 후쿠오카 벚꽃여행에 이은 가족과 함께 하는 5월 삿포로 벚꽃여행. 얼마 전 다녀온 후쿠오카 소도시 여행 등 매번 가까운 일본이긴 하지만 변화하는 계절과 장소를 확장하며 그곳을 즐기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일본여행이 피난길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혼자인 내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면서 나를 읽는 여행이 된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
먹고 사느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설레어하는지, 어떤 것에 가슴 뛰는지 도통 모르고 살았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 기호가 뭔지, 내 취향이 어떤 건지 잘 모르고 살았다. 삼시세끼 밥 먹으면 끝나는 하루로 20여 년을 살다 보니 내 인생에 내가 없어졌다. 나는 존재하는데 나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스스로를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나는 사람을 그다지 많이 만나지 않는 사람이다. 인생에 몇 사람이면 충분한 사람이고 사람을 통해 기를 받기보단 기 빨리는 사람이었다. 물건을 대하는 내 마음도 그렇다. 정해진 것, 익숙한 것,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새로운 걸 돈 주고 샀다 한 번도 쓰지 않고 몇 년을 그대로 두곤 정리된 것들도 많다. 낯선 곳을 다닐 때도 이곳 저것 싸돌아 다녀도 마지막에는 편안한 숙소에 들어앉아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원래 그랬던 내 모습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나이 들어 바뀐 내 기질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혼자 여행을 다닌다. 낯선 길 위에서 내가 더 투명하게 잘 드려다 보인다. 어떤 것들이 내 마음을 흘러넘치게 하고 메마르게 하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새로운 시작의 여행
마흔 중반 회사를 나온 여자가 혼자 여행하는 것은 홀가분하면서도 아직 시작하지 않은 2막에 대한 고민이 곳곳에 서려있다. 퇴사했고 여행 다니면 먹고살만한 거 아니야 하겠지만 어떤 점에서 그렇고 어떤 점에서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적을 둔 곳은 없지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돈은 벌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는 생이 끝나지 않는 이상 중요하니깐 말이다. 다만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 업으로 삼고 싶다. 직업을 갖는다고 해서 과거처럼 월급을 받고 내 시간을 저당 잡히고 싶지는 않다. 명함에 기대어 회사가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젊은 시절 수순대로 학교 졸업 후 취업, 결혼과 육아로 이어져 정해진 사이클대로 걸어왔다면 이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업으로 삼고 싶다. 인생 후반에는 글을 읽고 쓰는 삶으로 채우고 싶어 글쓰기 연습을 위해 ‘100일 글쓰기’를 해보니 귀결되는 것이 여행이었다. 차고 넘치는 마음이 글자로 새겨진다. 여행이 글쓰기의 물꼬를 튼 샘이다.
흘러넘치는 마음이 내가 갈 길을 만들길 오늘도 길 위에서 희망해 본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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