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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02. 2024

혼자 여행 vs 가족 여행

애 딸린 아줌마의 혼여를 위한 변(辨)

‘혼자 왔어요?’ 일본 여행 중 만난 한국 아줌마, 베트남 여행 중 만난 일본 아저씨에게서 들은 말이다. 한국 아주머니는 "혼자 무슨 재미로 다녀요, 호호호", 하시고 일본 아저씨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괜찮냐(Are you ok?)"고 묻는다. 젊은 청년도 아닌 중년 여성이 혼자 여행 다니는 게 그들 눈엔 이상해 보였나 보다. 짧은 대화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큰 간극이 보인다. 혼자와 무리, 무리에서 벗어난 나. 말 못 할 사연이 있다거나 혼자선 재미없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같은 맛, 다른 입맛


물론 좋은 것을 보거나 맛보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런데 해보니 내게 좋은 것이 꼭 그들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혼자 먹은 내 인생 최애 우동, 정확히 말하면 국물 없는 우동을 함께 했는데 그들에겐 영 어색한 것 같다. 맹수 마찰을 세게 해 탱글거리고 이 사이로 쫀득하게 씹히는 면발. 함께 나오는 야채 튀김고명이 넓은 접시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아 보이는 이 부카케 우동을 그들은 단지 간장에 비벼 먹는 면발이 좀 더 굵은 간장 비빔국수 정도로 생각하나 보다. 극찬을 하며 어렵게 찾아간 내가 민망해진다. '그럴 수 있지. 같은 밥상에서도 식성이 모두 다르니 그럴 수 있지.' 나에게 좋은 걸 굳이 애써서 함께 할 필요는 없겠다 싶다. 일정에 맞게, 상황에 맞게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함께 하는 즐거운 여행이리라. 

하카타역 다이치노 우동(Daichi no udon) 붓카케 우동


비수기 평일 혼자 여행 특권


여행에서 가장 큰 지출항목으로 꼽히는 비행기표와 숙박비 역시 혼자 하는 여행을 부추긴다. 혼자 여행은 최저가에 맞추어 여행일정을 짤 수 있다. 물론 싼 비행기표는 비수기를 의미한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시즌이라 같은 호텔이라도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특히나 동남아를 우기에 가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우기라고 해서 하루 종일 비만 오지 않으니 종종 무지개와 파란 하늘 뭉개 구름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오래도록 줄 서야 할 맛집도 없다. 현지인들의 출퇴근 시간만 피하면 원하는 곳에서 식사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론 이런 일정이 가능한 건 내가 지금 9to6를 하는 회사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그림에 떡으로 느껴졌던 여행일정을 내가 소화하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당장 즐길 수 있으니 원 없이 즐기리라. 이 좋은 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룰 필요가 있겠는가. 

노을 지는 해 질 녘에 타서 반짝이는 야경으로 마무리 됐던 호치민 시티투어버스



가족여행은 호캉스가 최고지!


그런데 가족여행은 아이들 학교 일정에 맞추다 보니 여행일정이 남들 갈 때 가야 해 비행기표 단가가 올라간다. 당연히 숙박비 단가도 올라가고 인원수와 비례해 배가 된다. 게다가 이왕이면 아이들을 위해 수영장이 있는 깨끗하고 안락한 고급 호텔로 잡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여행 코스도 아이들과 함께 할  1일 1 코스만 잡고 멀미하는 딸을 위해 차로 1시간 이상 되는 거리는 가지 않는다. 이렇게 짜다 보디 가족여행은 언제나 동남아 휴양지에서 즐기는 호캉스가 최적이다. 간간히 욕망에 사로잡혀 1일 2코스를 하거나 도시 근교로 떠나는 여행은 내 돈 쓰고 사서 고생하는 길이다. 먹는 것 역시 맛집을 찾아다니기보단 호텔 내에서 풀보드로 해결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효율적이다. 괜스레 SNS맛집을 찾아 나섰다가 서로 얼굴 붉히며 돌아올 수 있다.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결론은 숙박비 좀 더 내고 호텔에서 해결하는 것이 모두가 대체적으로 만족했던 여행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볼거리, 먹거리, 할 꺼리는 살포지 접어 혼자 여행으로 갈증을 푸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고 몸이 덜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하지 않다.

가족여행으로 떠난 나트랑 웨스틴 리조트, 운 좋게 업그레이드 된 인생 첫 '풀빌라'



때론 버거운 24시간의 사랑스러움


여행은 새로운 곳에서 돈을 내고 하는 쉼인데 때론 가족 간 거리 마지노선이 좁아져 여행생활반경이 겹쳐지고 때론 부딪치며 날카롭게 상대를 찌를 수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까지도 말이다. 집에선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자연스레 숨구멍이 생기는데 반해 여행 가면 24시간 붙어있게 된다. 물론 아이들이 사랑스럽지만 내 몸에 사랑스러움이 24시간 얹어져 있으면 간혹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최대한 몸을 낮추고 포복자세로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될 또는 받게 될 공격을 피해야 한다. 결론은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호텔에서 대부분의 것을 해결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1일 1코스로 한정한다. 그래야 내 몸과 마음도 평화롭고 안정되어 사랑을 줄 수 있다. 천하무적 모성은 없다.


글을 마치려니 마치 혼자 여행을 예찬하는 것 같다 머쓱하지만 진심 그렇다. 주변에선 ‘애 딸린 엄마가’, ‘가정주부가’, ‘애들은 어떡하고’, ‘회사도 안 가는데 돈 쓰러 다닌다’ 등 많은 수식어를 붙여주지만 "내 아이와 내 돈은 내가 걱정해요. 귀중한 시간 내어 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굳이 얼굴 붉힐 필요 있는가. 서로 각자 사는 인생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알고 그걸 실천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할 따름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나는 혼자 여행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고 행복한 기운을 얻는다. 그리고 그 행복한 에너지가 아이들에게도 전해진다. 그게 내가 혼자 떠나는 이유다. 뭐 거국적인 이유가 있어야 할까 싶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혼자 여행해 보길 추천한다. 나이가 많건 적건 싱글 이건 아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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