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맘마'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존재하게 하는 나만의 오아시스
결혼 6년 만에 찾아온 첫 아이의 유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가 찾아왔다. 첫 아이가 친구를 데려오느라 늦어졌나 보다. 기다렸던 만큼 큰 기쁨이었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쌍둥이라 고생스럽지만 한 번에 키울 수 있어 좋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맞다. 기저귀 떼는 시기, 이유식을 시작할 시기, 어린이집 이후 일렬종대로 나래비 세워진 것들의 사이클이 같아 좋지만 갓난아이들이 밤낮없이 울어 재낄 때는 끔찍하리만큼 힘들었다.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던 쌍둥이 육아와 지친 일상
아이들 백일 직후 서울에서 연고가 없는 부산으로 이사한 것도 한몫이었고 그곳에서 아이를 함께 봐줄 ‘이모님’을 쉽게 모실 수 없는 상황도 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남편 야간 근무날에는 혼자 울어대는 아이들을 도저히 볼 수 없어 결국 서울에서 도와주시던 분이 부산까지 내려왔는데 첫날 첫마디가 ‘나가서 밥이라도 한 끼 먹고 오소(조선족)’.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몇 달 만에 하는 혼자만의 외출인가. 감옥 탈출이 따로 없었다. 혼자 정처 없이 발을 내디뎌 간 곳은 동네 쌀국숫집. 나만의 위한 음식을 시켜 한입 가득 면과 국물을 들이켜는데 눈물이 주르륵 뺌을 타고 내려온다. 식사 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와서 혼자 인 게 다행이다. 맛을 느끼며 천천히 먹는 식사라서, 나를 위한 온전한 한 끼라서 먹는 내내 울었다. 집 밖 탈출이라 기쁨인 건지, 이제야 탈출한 슬픔인 건지 모를 눈물이 계속 났다.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던 나를 위한 한 끼.
나를 위한 게 별거 없다. 따뜻한 한 끼와 커피 한잔!
그날 외출은 별개 없었다. 한 그릇의 따뜻한 음식과 커피 한 잔. 그리고 혼자 걷는 길. 당시 많이 우울했다. 내면의 밑바닥을 박박 핧키고 있는 기분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데다 밥 역시 편히 먹지 못했던 시절이다. 왜 고문으로 잠을 안 재우는지 그때 알 것 같았다. 사람이 미쳐 돌아가는 기분이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웠지만 지친 육아로 나는 상당히 날카로웠고 예민했으며 온 마음이 울음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만난 곳이 나만의 동굴, ‘후쿠오카’였다.
부산에선 서울 보다 후쿠오카가 더 가깝다.
부산에서 후쿠오카는 서울보다도 가깝다. 당시 한국에 처음 오픈한 경기도 광명에 있는 이케아 보다 후쿠오카에 있는 이케아가 더 가깝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배를 타고 가도 되고 비행기로는 40분이면 충분히 당도하는 이국 땅이다. 당시 운 좋게도 제주에어에서 부산발 후쿠오카행이 왕복 5만 원대 이벤트가로 풀리며 싼 값에 예약을 했다. 1박이지만 24시간도 안 되는 짧은 일정이다. 비행기표는 득템 했지만 문제는 육아다. 하루가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떨어져 본 적이 없어 마음이 불안했다. 아이들만 분리불안이 있는 게 아니다. 엄마도 아이들과 떨어지게 되면 불안하다. 마음은 마음이고 몸부터 해방되고 싶다. 몸부터 분리되어야 심리적으로 내가 더 안정될 것 같다. 그래야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도, 나를 향한 내 마음도 바닥을 치고 올라오리라. 오랜만에 손주들을 보러 온 친정 부모님과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후쿠오카로 떠났다. 겸사겸사 손주들 보러 오셨다고 하시지만 내 여행을 위해 생업이 바쁘신 친정 부모님이 일부러 오셨으리라. 휴전선에 맞닿은 시골동네 ‘연천’에서 사선으로 끝에 위치해 있는 부산까지 새벽부터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운전해 오셨으리라. 알았지만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이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단 말이 나오나 싶다. 누군가 철없다 혀를 끌끌 차겠지만 떠나지 않으면 이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밤마다 아이들을 보며 주먹으로 벽을 쳤으니 말이다. 잘못 읽어 주먹으로 아이들을 쳤다고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엄마’와 ‘맘마’에서 벗어나 ‘나’로 존재한다.
후쿠오카는 비행시간도 짧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도 짧아 여행 앞뒤로 잘라먹는 시간이 적다. 이동시간이 간결해 짧은 여행일정이지만 타 지역에 비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여행시간을 좀 더 길게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과 말이 단절됨으로써 오는 홀가분한 자유를 손쉽게 맛볼 수 있다. 요즘은 경상남도 후쿠오카시라고 할 정도로 많은 한국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효탄스시을 줄 서서 먹지 않았다(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한국말이 들리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내가 못 알아듣는 언어로 둘러 쌓이니 이제야 ‘내’가 서서히 보인다. 엄마, 맘마로 존재하던 내가 이제야 ‘나’로 존재한다. 스테디셀러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후쿠오카에서 24시간 실현할 수 있었다.
나만의 동굴, 후쿠오카에서 나를 치유한다.
이렇게 후쿠오카는 지친 육아에 홀연히 떠났던 나만의 ‘동굴’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닳고 닳아빠진, 구멍 난 내 몸과 마음을 드려다 보고 꿰매어 다시금 채울 수 있는 나만의 ‘동굴’이었다. 분리된 공간과 시간을 통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나’를 인지하고 ‘나’란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했으며 ‘나’로서 온전히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대단한 경험도 아니고 대단한 깨달음도 아니다. 단지 내가 한 건 내 시간 속에 나를 혼자 두는 거였다. 밥을 먹을 때 온전히 밥만 먹고 ‘맛있다’를 느낀다. 아이들을 먹이느라 정신없이 싱크대에 서서 대충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식지 않은 밥을 끝까지 흐름 끊기지 않고 차분히 앉아 먹는다. 잠을 잘 땐 아이들을 재우다 나도 모르게 지쳐 잠드는 게 아니라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히 정리된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아주 간결한 행동들이다. 모바일로 생필품만 사는 뻔한 쇼핑이 아니라 쇼핑 카트를 끌고 진열대 사이를 누비며 정리된 물건들을 쭉 살피고 필요한 물품들을 골라 담는 과정, 다양한 커피와 차, 과자 앞에서 새로운 맛을 탐색하는 순간조차 ‘내가 사고하고 있구나, 내가 생각하는 인간이구나’를 느끼게 해 준다. 늘어진 티와 헐렁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우는 아이들 밥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딸랑이를 흔들어 대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 느낌과 생각으로 존재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고작 혼자 하는 한 끼 식사와 과자 쇼핑이라도 말이다. 아이들의 울음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엄마가 아니라 사고하고 그에 따라 의사 결정하는 인간임을 느끼게 해 준다.
아이들은 늘 사랑스럽다. 그래서 더 헌신하게 되고 희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헌신과 희생도 감정이기에 충전 없이 계속 사용만 하다 보면 방전이 된다. 가끔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지친 몸과 마음을 채우고 다시금 동굴 밖으로, 아이들 곁으로 행복한 에너지를 가지고 다가갈 수 있다. 나에겐 그 동굴이 ‘후쿠오카’였다. 큰맘 먹고 극적으로 비행기를 탈 수도 있지만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 상황 따라, 여건 따라 집 밖 카페이거나 산책길이 될 수도 있고, 집안에 있는 베란다 때론 화장실이 될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지친다면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흐르는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야 한다. 당장 동굴 속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나만의 동굴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고 결국에 그 속으로 들어가 충전할 수 있게 된다. 모두 동굴 하나쯤은 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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