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가장 몸집이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몸집이 큰 나무는 주위의 나무들을 하찮은 존재들이라고 여겼습니다.
어느날 어린나무가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가지들을 펼쳐놓아서 태양을 모두 가려버렸어요.
아저씨, 가지를 조금만 옆으로 움직여주세요.”
몸집이 큰 나무는 냉정하게 말했어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주변의 나무들도 몸집이 큰 나무에게 말했어요.
“가지를 조금만 움직여봐요. 어렵지 않은 일이잖아요.”
몸집이 큰 나무는 냉정하게 말했어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시간이 지나 어린나무가 태양을 받지 못해 시들기 시작했어요.
안타깝게 지켜보던 나무들이 몸집이 큰 나무에게 화를 내며 말했어요.
“저 어린나무가 죽어가는 게 불쌍하지도 않아요?
제발 그 거추장스러운 가지를 조금만 움직여줘요.”
몸집이 큰 나무는 냉정하게 말했어요.
“왜들 남의 일에 참견이야. 당신들이나 신경 써!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구!”
어린나무는 이제 곧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변의 나무들은 가엾은 어린나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때였어요. 숲속에 나무꾼들이 나타났어요.
나무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어요.
그리고 나무꾼 한명이 몸집이 제일 큰 나무를 가리켰어요.
“저 나무로 합시다!”
몸집이 큰 나무는 놀라 겁먹은 눈으로 주변 나무들에게 말했어요.
“나를 좀 도와줘요!!
제발 새들을 불러 모아줘요!
늑대, 멧돼지, 곰들을 불러줘요!
저 나무꾼들이 나를 베겠다고 해요!!”
주변의 나무들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어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숲속에 몸집이 제일 큰 나무는 사라졌어요.
나무꾼들은 죽어가는 어린나무를 정성껏 보살펴주었어요.
몸집이 큰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서 어린나무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어요.
태양의 축복을 가득 안은 채.
“나는 내 일을 할 뿐인데, 사람들은 나한테 고맙다고 해요.
뭔가 사회를 위해, 우리 공동체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직업, 흔치 않잖아요?”
-책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여자 소방관 세레나 바나시의 말
“책을 쓰고, 방송에 출연한 건 자신이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이 유명해진 건
제 생각에 지지를 보내주고 박수를 쳐준 사람들과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이 유명세가 남아 있을 때 어서 좋은 일을 해야죠.”
-<같은 책>, 신체 기증인 로버트 아쉬톤의 말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뜻의 ‘noblesse’가 ‘의무가 있다, 책임이 있다’는 의미의 ‘oblige’를 만나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의 많은 책무가 따른다’는 의미를 담아냅니다.
우리가 아는 복지국가 하면 떠오르는 북유럽은 특히 이러한 사고가 자연스럽게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며, 고급전문직 종사자는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당연히 스스로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은 편이겠지요.
물론 저 역시 TV다큐멘터리에서 보았을 뿐이라 실제의 정서를 알 수는 없지만, 훗날 꼭 그곳을 찾아가 그들의 정서를 경험하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한 전문직 노동자에게 물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부럽지 않습니까?”
“아니요. 전혀. 저는 제 일이 좋아요. 그들은 그들이고 저는 저에요. 물론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그게 제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진 않아요. 저는 제 일을 사랑합니다.”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세금을 남들보다 더 많이 내는 데 불만이 없습니까?”
“아니요. 전혀. 당연히 그렇게 내야죠. 많은 세금을 낸다고 해서 제가 굶주리거나 병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윤택하게 살고 있는걸요. 당연히 저의 세금으로 힘없는 사람들에게 연금을 줄 수 있고, 병든 사람에게 무상치료를 할 수 있을테니 서로에게 좋은 게 아닐까요?”
반대용어로 ‘노블레스 말라드 noblesse malade’는 ‘병들고 부패한 귀족’을 뜻합니다.
부동산 투기, 탈세, 횡령, 불법증여, 병역면제, 조기사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들려오던 말들이었습니다.
모두 힘이 없어서 노동 후 술안주로 “썩어 빠진 세상”이라고 외칠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만이 지구며,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서양은 다른 행성이라고 여겨질 때는 바뀌지 않을 것처럼 포기하고 살아갔지요.
조금 살만해지고 우주선 티켓을 사서 다른 행성을 탐사하는 사람이 늘어나서야 함께 지구라는 공간에 살고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고 같은 땅위에서 우리는 어리석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노블레스 말라드’의 존재들에게 이용당하며 살아왔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모두가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는 침체 될 대로 침체된 지금이 시작이라고 여겨집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면 오를 일만 남았으니까요.
새로운 대통령을 만나는 날이 다가옵니다.
이젠 화려한 포장지에 현혹되지 않는 눈이 생겼고,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질문하는 수많은 매체들이 등장하였으며, 정당한 권리와 댓가와 책임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최대한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언론이 모두에게 신뢰를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속에 복지를 꿈꾸고, 약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위대한 힘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한恨’이 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우리의 정서가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황사가 일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가 맑게 개인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과 좌절과 포기와 단념이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거대한 나무가 잘려나갑니다.
어린나무를 다시 건강하게 자라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늘 창공에 걸려있습니다.
지금의 불안 때문에 ‘긍정’이란 단어가 배부른 소리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금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펼쳐질 희망을 기다릴 힘이 모자랄 것 같아 ‘긍정’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잊지 말아요.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2017. 4. 24
-jeongjong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