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입양 이야기를 천천히 글로 모아 브런치북을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저의 솔직한 입양에 대한 생각, 입양 절차에 관한 이야기, 입양 가족으로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을 가감없이 적어보려고 합니다.
입양에 관심이 있으신 예비 입양 가족분들, 입양에 대해 궁금해 하셨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4년의 난임 기간을 거친 후, 입양을 통해 아이를 얻었다.
우리는 임신이 안 되자, 결혼 일 년 만에 병원에서 난임 검사를 받았다. 주변에서 건강상의 문제일지도 모르니 미리 검사를 받아두는 게 좋다고들 했다. 검사상 이상은 없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시술을 해도 괜찮겠단 진단이었다.
하지만 막상 난임 병원에 입성을 해 보니 우리는 뭐든 해보고 싶어졌다. 마음이 급했다. 우린 결국 인공수정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술은 우리에게 과한 시도였다. 가만히 기다리면 자연히 될 터였다. 괜히 유난을 떠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빨리 아이를 갖고 싶었다. 별다른 피임이 없는 정상적인 부부임에도 우린 매달 임신에 실패한 경험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나이도 있고 하니 굳이 시술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첫 시술을 할 때만 해도 흔히 말하는 '로또'로 시술 한방에 임신이 되는 게 아닐까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내 난임은 이유 없이 계속 됐다.
나는 이 기간을 내 인생의 제 3 암흑기쯤으로 본다. 내가 떠올리는 그 시절의 이미지는 이렇다. 긴 터널이 있었고, 멀리 밖이 보이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건강도, 친구 관계도, 재정 상황도 모두 엉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난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주변에서도 점점 '둘만 사는 것도 좋지 않으냐.'는 조심스러운 조언을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둘만 살기를 희망했던 적이 없었다. 우리의 미래에는 항상 아이가 있었다.
대학생 때, 엄마와 둘이 외식하면서 내가 엄마에게 왜 우릴 키웠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스물여덟에 혼자가 되어 자식 둘을 키웠다. 어릴 땐 몰랐는데, 커서 보니 그때 엄마가 너무 젊었다, 아니 어렸다.
"나보다 더 귀한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나중에 결혼해 살아보면 알겠지만 남편도 그렇지가 못해. 근데 새끼는 내 입에 들어간 것도 내서 주고 싶은 법이거든. 그게 참 중한 경험이라. 뭐 네가 결혼 안 한다, 애 안 낳는다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난 네가 애 낳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 것도 모르고 산다는 게 참 아깝지."
시술을 실패할 때면 엄마의 그 대답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왜 내게만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나에게는 그럴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까. 이 저출산 시대에 내가 낳겠다는데.
이후 내가 고생하지 말고 둘만 살라는 사람들 말에 속상해했을 때, 엄마는 또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들이 다 뭐한다고 애를 키우냐 하지? 나 같으면 둘이 산다, 애 없이 산다 하지? 다들 힘들겠지. 애 없이 사는 네가 홀가분해 보이겠지. 애 키우는 게 쉽진 않으니까. 그래도 너 걔들이 낮엔 너한테 힘들다 힘들다, 낳지 마라 낳지 마라 해놓고 밤엔 다 자기 집에 가서 지 새끼 물고 빨고 하는 거야. 그게 사람이야."
맞는 말이었다. 힘들다는 거지, 자기 아이가 싫다는 말은 아닐 터였다. 그냥 나를 위로하느라 하는 말일 뿐이었다. 육아가 힘드니 둘만 살라는 사람들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그래도 내 새끼 이쁜 게 세상 사는 낙이라고 엄마는 항상 말했다. 어쩌면 내가 당연히 애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동생과 나를 키우며 살아온 엄마를 보고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엄만 분명 힘들었을 텐데, 분명 행복하기도 했으니까.
시술을 실패하고 함께 난임을 겪던 친구들과 펑펑 우는 날이면, 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도 나도 엄마가 될 거야. 그게 언제일지, 누가 먼저일지는 모르지만 우린 모두 엄마가 될 거야."
난 정말 그때 그렇게 믿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서로를 토닥이던 우리를 기억한다. 물론 우린 모두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세 번의 인공 수정과 다섯 번의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건 시술이 아닌 입양을 통해서였다. 시술은 모두 실패했고, 우리 부부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이제와 나는 딸을 만나는 방법엔 수없이 많은 길이 있었다는 걸 내가 늦게 깨달았다는 걸 안다. 내가 딸을 만나는 길은 그 길이 아니었는데 난 엉뚱한 길을 다리가 아프게 걸었다. 옆에 난 예쁘고 사랑스러운 오솔길을 두고 어찌 그 아스팔트만 걸었던지. 내가 이르지 못할 길을 두고 헤매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드디어 나는 딸을 얻을 길을 찾아내었다. 감사히도 딸은 그제야 무사히 내 품에 안겼다.
수많은 시련이 당신 앞에 닥칠 때, 그 길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라. 놀랍게도 길은 더 있다. 그리고 당신에게 의지가 있다면, 그 길의 끝에 언젠가는 선다. 내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