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즘 시대에 난임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지만 난임 병원에는 항상 사람이 차고 넘친다. 난임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난임 병원에 가본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특히 토요일은 도떼기시장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유명한 난임 병원엔 평일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진료실 앞엔 앉을자리가 없을 경우도 허다하다.
난임이 차고 넘치는 시대라 그런지 직장에도 난임을 겪고 있는 내 또래의 동료들이 여럿 있었다. 어느 날 난임 병원을 다니는 동료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의 지인이 슬며시 입양을 권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임 병원을 다니며 힘들어하지 말고 입양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고 했다. 물론 아무리 우리를 평소 안타까워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한 말이었다고 해도 상황이나 관계의 깊이에 따라 지나친 발언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고 싶은 건 동료들의 반응으로 내가 고민해보게 된 입양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다.
동료는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입양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속상해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건 내 아이를 갖고 싶어서라고도 했다. 다들 그 말에 동의하면서 공감을 표했다. 너무 심한 말이라고도 했고, 속상했겠다고 위로했다. 같은 난임을 겪고 있으니, 내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입양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득 서글퍼졌다.
카페에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나중에 내가 입양하겠다고 나서면 민망해질 것 같았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내 입장을 말해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명확하게 마음이 선 건 아니었지만 그날 나는 입양 의사를 밝혔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난 입양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순간 동료들이 조금 당황한 걸 느끼긴 했지만, 감사하게도 나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그녀들은 자신이 임신을 원해서 그렇지, 입양도 부모가 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녀들은 여전히 나의 입양을 지지해주고, 나의 육아를 응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입양에 대한 주변의 일반적인 반응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입양 의사를 밝히기 전, 그녀들이 보인 반응이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내 동료들은 아주 일반적이고, 사회적으로 용인할만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고, 지나치게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이지도 않다.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이다.
집에 돌아와서 난임 카페에서 ‘입양’을 검색해보았다. 난임이 지속되면서 친정부모나 시부모, 근처 친구들에게 입양을 권유받은 사람들의 한탄이 많았다. 댓글에도 모두 기분이 나빴겠다거나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냐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입양 자체를 언급한 것을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입양은 일종의 금기어였다.
물론, 입양은 주변의 권유로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부의 탄탄한 의견 일치에서 진행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입양을 권유하는 것은 그것이 부모이더라도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권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또 상황과 대상에 따라 도를 넘는 조언일 수 있다. 하지만, 입양을 논하는 것 자체를 기분 나빠하거나 심지어 불쾌해하는 댓글을 보면서 입양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인가를 알 수 있었다. 타인이 한다면 멋지다, 대단하다고 칭찬하지만, 막상 자신에게는 누가 언급하는 것조차 불쾌해한다면 그 사회는 입양을 정말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게 맞을까.
친생 자녀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당연하다. 그게 일반적이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입양에 대한 인식은 조금 더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입양을 권한 게 기분 나쁠 일은 아닌 사회였으면 좋겠다. 입양도 아이를 얻는 방법 중 하나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회라면 좋겠다. ‘입양도 좋은 방법인데 난 낳아서 기르고 싶어.’라고 담백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후, 우리 부부가 입양을 완전히 결정하고 난 뒤 지인들에게 입양 이야기를 꺼냈을 때 주변에서 입양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우리의 결정을 존중하고 축하해주었다. 말 그대로 도시락 싸다니며 말리는 가족이나 지인은 우리 주변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이 가끔 하는 질문에서 우려와 걱정을 느낀다. 아마 주변에서 본 적이 없으니, 그런 듯하다. 낯섦과 무지는 가끔 두려움이 되니까.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입양 가족을 주변에서 본 적도 없어 낯설다. 나 역시 입양 준비 전에는 주변에서 입양 가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입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세상엔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직접 겪지 않는 입양에 대해 어찌 잘 알 수 있을까. 당연하다. 사람들은 입양을 드라마로, 영화로, 나쁜 뉴스로 알아간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입양은 갈등을 드러내는 요소로 자주 활용된다. 그러니 인식이 좋을 리 없다. '입양을 하면 저런 문제가 생기겠군. 그럼 그렇지. 남의 애 키우는 게 쉽나?'라고 생각해버리기 쉽다. 입양을 하나의 가족 형태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이 문제를 어쩌면 좋을까. 자, 똑같이 생각해보면 어떨까? 친생 가족들도 드라마, 영화, 나쁜 뉴스에서는 다들 좀 그렇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모나 가족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일반적인 부모나 가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게 아닐까? 그냥 드라마, 영화일 뿐이고, 뉴스에 나오는 그 가정이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않나? 입양도 같은 시선으로 보면 편견은 사라질 수 있다.
실제 입양 가족이 나오는 입양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람들은 그 가족이 입양의 아주 좋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 그들은 입양가족의 일반적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입양 가족의 일상은 친생 가족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와 부부가 같은 집에서 사는 데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아이들은 그자체로도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들이다. 함께 정들어 살면 똑같다. 다들 오늘 당장 다큐멘터리에 나와도 문제가 없을 만큼 잘 산다. 우리 주변의 가족들이 그러하듯이.
이 세상이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부모의 마음은 간절해진다. 입양인으로서 내 아이를 세상 앞에 내놓기에 부모인 나는 이 세상이 아직 두렵다. 조금이라도 세상이 입양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 가족은 대체로 주변 사람들이 아는 유일한 입양 가족이다. 우리 가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나의 가족과 지인들은 입양에 친숙해지고 입양을 제대로 알아간다. 그들의 인식이 바뀌면, 그들의 지인과 가족의 인식이 바뀌고, 세상도 조금 바뀌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너무 느리고 여전히 부족하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일 것이다. 이 글은 내 아이를 지켜내고 싶은 간절한 부모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