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누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남편과 서울에 방청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시작 전 가벼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사전 MC가 나와 재미있는 농담도 하고 몇몇 방청객의 호응에 작은 선물을 주고 있었다. 무대 앞으로 나온 오십 대 부부에게 자녀가 몇이냐고 진행자가 질문했다. 그들은 자녀가 없다고 답했다.
남편이 숙소로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사람들, 아이가 안 갖고 싶었던 걸까? 아님 우리처럼 못 가진 걸까? 결혼을 늦게 했을까?” 난임이 길어지면, 모든 게 그렇게 보이고 들린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그렇다.
남편은 그 부부가 자녀가 없다고 말하자 MC도 방청객들도 잠시 당황해서 정적이 흘렀었다고 했다. 큰 결례를 했다는 듯이. 하긴, 요샌 그런 개인 정보를 묻지 않긴 한다. 그럼에도 난 전혀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정말 모두들 얼어붙었던 걸까? 어쩌면 남편이 우리의 상황 때문에 그때의 분위기를 왜곡했을지 모른다.
“난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했다고 느꼈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어차피 임신하지 못한다면 자기가 말하는 그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어. 둘만 살든, 입양해서 살든 남다르게 사는 건 마찬가지야. 당신이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는 게 일반적이라고 느낀다면 우리끼리 사는 것보단 입양해서 아이가 있는 게 더 우리에게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애 이마나 우리 이마에 입양이라고 낙인을 찍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
부부 사이엔 아이가 있는 게 평범하다는 남편의 인식은 낡은 것이지만, 사실 아이가 없는 나이 든 부부를 향한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단지 시대가 달라져서 대놓고 묻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 조심할 뿐이다. 주변인을 통해서라도 아이가 없는 이유를 캐묻어 알아내고 마는 호기심 넘치는 인간들이 꼭 있다.
또 한 번은 함께 리조트를 걷는 데 아이를 데려온 부부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꼭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둘러싼 느낌이었다. 그 넓은 로비홀에 아이가 없는 부부는 우리뿐이었다. 캐릭터로 꾸며진 수영 시설이 유명한 곳이고 여름 방학 기간이라 더욱 아이들이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남편이 갑작스레 물었다.
“입양을 비밀로 할 순 없을까?”
남편도 계속 입양을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런 순간을 놓칠 순 없었다. “만약에 자긴 누가 우리 집 현관에 아기를 두고 가면 키울 수 있겠어?”라는 내 질문에 남편은 조금도 고민 없이 “당연하지. 그럴 리 없지만.”이라고 답했다. 남편은 그러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고, 잘 키우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이 남자, 종족보존의 본능이라거나, 유전자, 물보다 진한 피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아기를 못 낳아서 입양해서 키우는’이라는 주변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정말 입양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린 둘 다 내 핏줄이 아닌 것에 대한 아쉬움은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리 뛰어난 머리도, 외모도, 예술적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그런 걸까. 꼭 내 핏줄이었으면, 나를 닮았으면 하는 기대나 욕심은 처음부터 우리에겐 없었다.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일단 현실적으로 내가 맞벌이라는 점, 육아 휴직을 하려면 입양을 밝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비밀 입양에 대한 남편의 기대는 쉽게 무너졌다.
나의 마지막 난임 시술은 최종 단계에서 멈췄다. 체외에서 수정된 수정란이 모두 도중에 폐기되어 시술할 수정란이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닿은 느낌이었다. 이제 몸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을 나와 원무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고, 서로 안으며 위로를 할 정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남편은 내 손을 평소보다 조금 세게 꼭 쥐었다. 그 계단을 다 내려가기 전에 남편이 내게 말했다.
“우리 이제 입양하자.”
원무과에 남은 병원비를 결제하고 돌아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바이 바이’를 외쳤다. 물론, 이런 마무리가 마냥 기뻤던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우린 실패한 셈이니까. 하지만 우리에겐 부모가 될 다른 방법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건 포기가 아닌 방향 전환에 가까웠다.
긴 시간 동안 함께, 또 각자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왔기 때문에 남편의 결정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우린 바로 입양 센터에 전화로 방문을 예약하고, 다음 주에 입양센터를 찾았고, 그날 바로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다.
남편이 입양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시술의 계속된 실패였겠지만(아마도), 그동야 입양을 주저했던 까닭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담이었다. 남편은 일반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들이 우리 가족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그는 자신에게 끝없이 물었을 것이다. 우리 중 누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특히 ‘한국’이라는 혈연중심적이고 남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관심이 넘쳐흐르는 사회에서.
입양에 관한 이슈가 터질 때, 나는 여전히 내가 움츠러듦을 느낀다.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볼 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을 때쯤 이런 댓글을 보는 건 지금으로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프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어른인 나조차 아직 사회의 시선에 완벽히 무장되어 있지 않다. 입양아 학대 사건이 터졌을 때, 유난히 활발한 딸아이의 다리에 자주 생기는 멍자국을 혹시 선생님이 학대로 오해 하시진 않으실지 걱정했었다. 우리 가정이 입양가정이라 더 관심을 받는 건 아닐지 괜히 맘이 쓰였다.
우리는 사회의 시선 아래서 고통받을 내 아이의 삶을 더욱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런데, 커가며 아이가 느낄 사회적 시선은 더 클 것이다. 사실 입양 부모는 자주 '대단'하거나, '선한'사람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시선은 참 싫다. 반대로 입양아는 '불쌍하다', '차별받을 것이다'라는 프레임이 자주 씌워진다. 그게 더 싫다. 우리는 공개 입양을 결정했다. 그건 아이가 입양아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우리는 딸에게 세상의 시선 앞에서 당당하게 고개 드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우니까 우리는 더 단단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입양 부모도 여전히 사회의 시선이 두렵다는 게, 사실 입양 3년 차인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사실 일상에서는 입양 가정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삽니다. 그러다 입양 이슈가 터지면 저도 좀 민감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럴 때면 아이를 공개입양으로 키우는 게 맞나 고민되고, 이사라도 가서 이제부터라도 숨기는 게 아이를 위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공개입양이 답이라고 결론을 얻고 나면, 저희는 다시 용기를 내 봅니다. 딸아이가 입양을 제대로 인식하고 제게 물어올 때쯤엔 제가 더 단단해져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