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을 위해 우리는 대한사회복지회를 찾았다. 미리 전화로 상담 예약을 하고 가서인지, 센터를 들어서자 바로 담당 복지사가 우리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간단한 질문들을 시작으로 진지한 내용까지 상담이 이어졌다. 당시 서른 중반이었던 우리는 입양 부모로서는 매우 젊은 축에 속했다. 난임 부부들도 마흔까지는 노력을 해보는 경우가 많았고, 친생 자녀를 키우다 입양을 결정한 부모들도 대부분 사십 대 이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갓난아기를 입양하기를 희망했는데, 아무리 어려도 백 일이 지나야 입양이 가능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태어난 지 열흘 정도인 아이도 입양을 진행했었는데 이젠 아이의 발달 수준에 이상은 없는지 기본적으로 파악한 후 입양을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일은 되어야 목을 가누고, 눈 맞춤을 하니까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갓난아이를 안아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딸아이면 좋겠다고 했더니, 일 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입양에 대해 알아보면서 아이의 성별을 입양 부모가 선택한다는 게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성별에 선호가 없는 부부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가능하다면 딸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남편은 아들과 공을 차는 것보다는 딸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는 편이 더 어울렸다. 누가 봐도 예정된 딸바보였다. 나 역시 딸을 키우고 싶었는데 자연임신과 달리 딸이라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좋았다.
우리는 공개 입양을 할 예정이라, 굳이 혈액형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혈액형을 배울 때쯤에 부모의 혈액형과 다른, 자신의 혈액형에 당황하는 경우가 있어, 꼭 혈액형을 맞춰 입양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 예전엔 비밀 입양이 많았으니, 혈액형은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아, 굳이 딱 닮은 아이를 원하는 것은 아닌데, 아이가 우리와 비슷한 느낌이면 좋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크고 동글동글한 편인데 아이만 다른 느낌이면 가족인데 어색할 것 같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상담사님 입장에서는 너무 모호한 표현이지 않았나 싶다.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을 것 같다. 그게 그 말로 들리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을 더 풀어서 말하자면, 누구나 보고 '아, 닮았네.'소리가 나올 정도는 아니어도 된다, 분위기만 비슷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게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닮은 게 크게 상관이 있었을까 싶긴 한데, 그땐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또 뭐든 말해보라고 하시니, 생각나는 대로 중얼거렸던 게 아닌가 싶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면 이젠 외모는 상관없다고 할 것 같긴 하다.
입양에 대해 공부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거의 신생아에 가까운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는 건 입양에서는 가장 쉬운 길이다. 돌만 지난 아이여도 연장아 입양은 또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하물며 한참 말 안 듣는 네 살 배기나 유치원생, 초등학생은 더 쉽지 않다. 아이와 부모가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이가 입양되는 연령과 비례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딸도 요즘 미운 네 살이라 고집이 심하고 떼쓸 때가 많은데, 이때 입양했다면 아이를 지금처럼 바로 예뻐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음으로 힘든 길은 장애 아동을 입양하는 분들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부러 희망하여 그 아이의 부모가 되어준다는 것은 많은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배부른 괴로움 없이, 출산의 고통 없이 건강한 딸아이를 안게 된 것이다.
상담사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질문들도 하셨는데, 아이의 출신 배경에 신경을 쓰는지, 종교가 있는지 등도 물으셨다. 우리는 막연히 미혼모의 아이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정 불화로 인한 출산 전 이혼이나 성범죄, 외도로 인한 입양도 있다고 했다. 또 친생부모가 특정한 종교를 가진 입양부모를 희망하기도 했다. 나름 많이 고민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들에 숨이 턱턱 막혔던 게 사실이다. 성범죄로 생긴 아이라니. 피해자 입장에서야 안타깝지만, 가해자 쪽도 생각하면 선뜻 답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딱 '싫어요'라는 말도 나오지 않아 멍하게 있으니까 상담사분이 먼저 아이가 매칭 될 때 다시 고민해보셔도 된다고 하셨다. 머리로는 아이는 모두 순수하고 아무런 죄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무 마음에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물으시니 선뜻 답을 못했던 게 사실이다. 만약 입양을 생각하신다면, 상담 전 부부끼리 이런 의논도 해보고 가시길 바란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를 매칭하고 난 후에도 법원 결정이 나기까지 6개월가량을 더 위탁으로 양육해야 한다고 했다. 조부모의 도움으로도 위탁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부모 중 한 명이 휴직하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위탁은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일단 다른 대안이 없으니 수긍하고 돌아 나왔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상담을 돌이켜 보았다. 둘 다 긴장한 상태였고, 몇 가지는 미리 생각해 간 것들이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질문들도 많아서 어떻게 답변을 했는지, 혹시 실수한 것은 없는지 되새김질해 보았다. 상담을 해주신 복지사님은 친절하셨지만, 그때 우리 부부에겐 그보다 더 권위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졌다.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조금이라도 책잡힌 곳이 있지 않았을까, 그 순간을 끝없이 되돌려 이야기했다.
“그런데 들었어?”
남편이 뜬금없이 물었다. 나는 남편의 질문이 무얼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응, 좋았지?”
“응, 생각 못했는데 좋더라.”
복지사님은 상담 내내 우리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셨다. 우리로서는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그 사소한 단어 하나가 우리에게 얼마나 설레고 벅찼는지 그분은 아마 모르실 거다. 우리는 그렇게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