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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05. 2022

6. 내 인생에 이 순간만큼 설렌 적이 있었을까

  아이가 온다고 생각하니, 임신 준비로 허비해버린 신혼이 그제야 아쉬워졌다. 우리는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에 지쳐 신혼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었다. ‘지금을 즐겨, 둘이 사니 얼마나 좋아.’라고 위로하던 친구들의 말이 사실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집에 갇혀서 육아만 하는 그 친구가 더 부러웠었으니까. (물론, 막상 육아를 경험한 뒤 나는 그 친구의 말이 진심으로 부러워서 한 말임을 온몸으로 이해했다. 하하.)    당시 우리 부부는 어딜 가든 아이 생각에 매여 있었다. 그냥 편하게 놀면 좋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뭔가가 간절해지면 자신이 지금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에버랜드 튤립 축제에 가서도 아이를 안고 다니는 사람들 밖엔 안보였다. 둘만 있으면 진짜 편하고 즐겁게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시술에 실패하고 홧김에 비행기표를 질러 갑자기 괌에 갔을 때도 비행기 안에서부터 아이들이 많아 당황했었다. 그제야 알았지만 괌은 비행시간이 비교적 짧아 어린아이를 대동한 가족 여행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난임 시술을 실패한 후에 갈 여행지로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바닷가에서 노는 꼬마들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그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다 우리도 아이와 나중에 괌에 다시 오기로 다짐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늘 그 공간과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입양을 결정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이 여유롭고 세상 모든 게 예쁘게만 보였다. 마치 복권 당첨 번호를 미리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냥 둥둥 마음이 떠다녔다. 우린 유모차를 검색하고, 아기 침대를 사야 할지를 의논하고, 카시트를 골랐다.

  그리고 아이가 오면 하기 힘들 일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노 키즈존 카페 나들이, 둘만의 밤 산책, 주말 내내 낮잠 자기, 등산, 자전거 데이트, 분위기 좋은 비싼 레스토랑, 술집 데이트, 콘서트 가기, 영화 데이트. 남편과 둘이 신혼을 오 년이나 보냈으면서 제대로 해본 게 없었다. 지나간 오 년이 새삼 억울했다. 이제 아기가 오면 ‘둘’인 시간은 당분간 없을 테니까 우린 충분히 그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남편이 먼저 일본 여행을 예약했다. 이전에는 방사능이 걱정돼 출산 전에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여행지였다. 이제 출산할 일은 없을 듯하니, 아이가 오기 전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지쳐 쓰러져 잘 때까지 걸으면서 관광을 하고, 맛집을 찾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일본 여행을 다녀온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방사능이 걱정돼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그해 설 명절엔 조카들의 선물을 사주러 백화점에도 갔다. 백화점 아동 코너에 갔을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아동 코너가 있는 층을 항상 피해 다녔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살 물건이 없기도 했겠지만 그 풍경이 생경했다. 설빔을 사러 온 아이들이 넘쳤지만, 전혀 마음이 힘들지도 않았다. 조카들의 물건을 고르면서 힐끗힐끗 신생아 용품도 구경했다. 언제 올 지 아직 하나도 정해진 게 없으니 덜컥 뭘 사긴 이른 시기였지만 눈요기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내 인생에 이 순간만큼 설렌 적이 있었을까? 물론 육아의 힘듦에 대한 두려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든 부모들이 해내고 있듯 나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부모가 출산 전 육아의 고통을 어렴풋이 두려워하면서도 아이를 상상하고 기대하듯, 우리 부부도 전혀 다를 것 없이 그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몰거나, 아이를 배 위에 올려두고 재우거나, 아이와 키즈 카페를 가는 일상적인 순간을 빨리 맞이하고 싶었다. 만약 결혼하자마자 큰 어려움이 없이 아이를 낳아 키웠다면 아마 그런 순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난임 기간을 더한 긴 시간이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증폭시켰다.

  아이는 예쁜만큼 품도 많이 들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육아의 순간이 항상 아름답지는 않았다. 유모차를 모는 건 생각처럼 재미있지도 않았고, 차에 싣는 것도 무겁고, 계단을 마주치면 들어 옮길 일도 많았다. 아파트 단지 산책 정도라면 모를까 남편이 없을 땐 무거워도 아기띠를 매는 게 더 편했다. 배 위에 올려두어도 아기는 쉽게 잠들지 않았고, 명치 위가 답답해 나도 잠에서 자주 깼다. 이건 남편과 신혼초 팔베개를 하고 잘 때와 비슷한 불편함이 있었다. 키즈 카페는 생각보다 비쌌고, 아이가 다칠까 따라다니다 보면 돌아올 때쯤엔 내가 더 지쳐 피곤했다. 그럼에도 자주 생각했다. 육아가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에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장난치며 항상 말했다.

  "힘들어? 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그럼 우린 망설임 없이 답한다. "응. 하고 싶었지. 엄청!" 그리고 아기를 기다리던 순간을 다시 떠올린다. 그럼 어디선가 아빠 파워, 엄마 파워가 쏟아진다. 아이를 기다렸던 시간이 우리에겐 에너지 탱크인 셈이다.

  당신이 지금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떠올려보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는지, 누리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라. 분명 당신에게도 파워가 쏟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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