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입양 절차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먼저 서류를 준비했다. 입양 부모 대상의 연수를 듣고, 건강 검진을 받고, 건강 기록을 조회하고, 재산을 모두 증명하고, 에세이를 작성했다. 남편은 에세이 작성을 유난히 힘들어했는데, 결국은 인터뷰 형식으로 내가 남편에게 관련 질문을 하고 초안을 작성했다. 이후 남편이 그 내용을 다시 수정하면서 글을 완성했다. 에세이를 작성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정말 속속들이 다시 들여다 보았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책임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와 남편의 육아관이 어떻고, 그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시간만 나면 대화를 나눴다. 남편의 의중을 명확히 알지 않고서는 글을 쓰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는 그런 대화 주제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아이와 무얼 하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는 게 당시 기약없이 아이를 기다리는 우리의 낙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입양 관련 서류들을 모두 작성하고, 필요한 기관에 가서 발급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들었다. 경찰서에서 범죄 사실이 없다는 서류를 발급받거나, 학력이나 직장을 증명하는 서류를 발급받는 일은 그나마 쉬웠다. 평소 사람들이 요구하지 않는 서류을 발급 받는 경우도 많았다. 공무원이나 기관 직원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사용 용도를 묻는 경우가 잦았다. 입양을 위해 발급받는다는 답을 하면 그들은 고개를 들어 우리를 힐끗 올려다 보기도 했는데, 순간 우리를 평가하는 듯한 눈빛을 느낀 적도 적지 않았다. 뭐 인상을 보니 나빠보이진 않네, 하는 눈빛으로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하면 어색하게 ‘아, 네.’라고 대답할 수 밖에. 하하하.
재산을 낱낱이 밝히면서는 이렇게 우리 재산을 까발릴 일이 또 있을까 싶어 웃음이 났었다. ‘아마 정치를 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다시 없지 않을까? 하하하.’ 뭐,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를 돌았다. 막상 재정 상태의 민낯을 보니 참 별게 없어보였다. 우리의 재정 수준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혹시 부자가 아니라고 입양이 기각될까 살짝 걱정했다. 서류의 남은 칸에 한 줄이라도 더 쓸 게 없나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던 기억이 난다. 건강 검진에서는 법원에서 요구하는 마약, 알콜 중독을 판독하는 병원을 찾아서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하고 헤맸었다. 건강 기록에서는 내가 임신 준비를 위해 난임병원에서 먹었던 약들을 해명해야 했고, 에세이는 마지막까지 혼신을 기울여야 했다. 서류를 모두 준비하는 데 한달 보름이 걸렸다. 서류를 모두 넣으니 서류봉투가 찢어져버렸다. 그만큼 두께가 엄청났다는 말이다.
서류를 준비하면서의 고충을 주변에 이야기하면 모두들 ‘그런 것까지 내는 구나’ 하면서 신기해했다. 그리곤 당연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일이니까. 나도 기본적으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또 이게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면 난 왜 이렇게 평가받고 심사받을 게 많나 하는 속상함이 밀려왔다. 난 그냥 한 아이의 엄마가 되려는 것 뿐인데. 친구들과 똑같은 마음인데. 내 배 아파 낳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참 어렵구나, 싶었다. 그냥 가끔 서러웠다. 막상 입양을 준비하면서 정말 낳을 수 있으면 이거 할 기운으로 하나 낳았겠다는 마음이 든 적도 있다. 하하하. 정말 옷만 안벗겼지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발가벗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후 진행한 심리 검사에서는 내 머릿 속을 스캔 당하는 느낌이었다. 검사지의 문항 하나 하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도 검사자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입양에 검증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입양 절차가 까다롭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내가 제출한 모든 서류는 그 중 무엇 하나도 빼놓지 못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약을 하거나, 범죄 사실이 있는 사람이 입양 부모가 되면 안 될테니까. 나는 절차가 지나치다거나 줄여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평범한 개인으로서의 소회를 말하는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난임 후 입양을 진행한 여자로서 느끼는 심리적 무력감을 말한 것이라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내가 난임을 겪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계속 자연 임신과 입양을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입양아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가 소중한데 사실 보통의 부모는 에세이를 쓰지도, 마약이나 알콜 중독 검사를 받지도 않는다. 서류상으로는 출생 신고 하나면 부모가 되지 않는가?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배로 아이를 낳았다고 자연스럽게 부모의 자격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땐 그게 억울하고 속상했다. 물론 지금이야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만약 내가 출산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나중에 막둥이를 입양으로 데려오려고 준비했다면 그 과정에서 속상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난임이 아닌 입양부모님들은 절차가 복잡하긴 하지만 나처럼 마음도 복잡하진 않으신 것 같았다. 난임 후 입양을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애를 못 낳으니, 엄마가 되려면 이런 것까지 해야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 속만 상한다. 그냥 게임을 클리어하듯 하나씩 준비하시길 바란다. 하하하.
오히려 나는 입양 절차 때문에 입양이 줄어든다고 말하는 언론의 보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입양 절차가 복잡해 입양을 포기할 사람이라면 입양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나 역시 서류 준비와 절차가 힘들었지만 그 때문에 입양 자체를 포기하려는 마음은 갖지 않았다. 입양 부모들끼리 입양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음을 서로 이야기할 때에도 그 때문에 입양 자체를 망설였다고 말하는 부모는 본 적이 없다.
서류를 준비하면서 나는 한 가지 마음으로 나를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내려놓았다. 나는 아이의 친생모를 떠올렸다. 나와 함께 한 아이의 ‘엄마’가 될 그녀가 무의식 중에 계속 떠올랐다.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마음 먹고 괴로워하고 있을 친생모를. 아이가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을 친생모를. 센터고, 복지사님이고, 판사고 다 모르겠고 난 그녀에게 내 속속을 모두 드러낸다는 마음으로 서류를 준비했다. 물론 그녀가 그 서류를 볼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난 서류를 준비하면서 자주 그녀를 떠올렸다. 지금쯤 내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그녀를. 자주 울고 있을 그녀를. 나는 그녀를 조금 안심시키고 싶었다. 아마도 그녀는 기관에서 예비 입양 부모를 철저히 검증해줄거라 믿고 있을 것이었다. 아이를 내게 보내줘 감사하다고, 당신의 아이는 안전할 거라고, 사랑받으며 자랄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 사이 서류는 모두 준비되었고, 난 센터로 서류를 제출했다. 또 한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