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일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복지사님이었다. 복지사님? 겨울에 뵙고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복지사님. 벌써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와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많이 기다리셨죠? 저희 가정방문하러 가도 될까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데, 울컥하면서 입이 턱 막혔다. 첫 방문부터 들었지만 적응되지 않는 단어, 어머님. 복지사님은 상담 갔던 첫날부터 나를 '어머님'이라고 부르셨다. 어머님, 어머님. 세상 흔하고도 흔한데 내게만 그렇게도 허락되지 않던 말. 민망하게 회사 복도에 서서 눈이 뻘겋게 달아오르며 터진 울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어떻게 통화가 끝났는지 모르겠다. 날짜가 잡혔고, 나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감사합니다.'와 '복지사님 편하신 대로요.'를 반복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 마음. 이 사람은 지금 내게 누구보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 뒤에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시 무언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가정방문으로 복지사님은 생각보다 오래 집에 머무르셨다. 부부가 함께 삼십 분가량 복지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가 따로 1시간씩 상담했다.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나, 교우 관계에 관한 질문도 있었고, 입양이나 육아에 대한 의견을 다시 묻기도 하셨다. 먼저 상담을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아 남편이 상담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조용해져서 끝났나, 싶으면 또 대화가 이어졌다. 남편의 개별 상담이 마무리되고 다시 부부가 함께 앉았다. 가장 궁금한 질문, 복지사님이 오시고부터 줄곧 묻고 싶었던 질문을 드디어 꺼냈다.
"저희에게 올 아이가 이제 정해졌나요?"
"......."
역시 아직은 이른 건가? 너무 성급한 마음을 보였나? 괜히 물어봤나? 그래 그래, 너무 조급해 보였어.
"많이 기다리셨죠? 이렇게 방문을 온 건 곧 아기를 보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에요. 그냥 아무 때나 오진 않아요."
몇 가지의 질문과 이야기가 끝나고 상담은 마무리됐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복지사님께서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어주셔서 즐거웠다. 오히려 만날 때마다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니, 금방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제 복지사님과의 다음 만남이 기대되기까지 했다. 입양 카페에서는 가정 방문에서 복지사님이 냉장고를 열어보시거나, 베란다까지 사진을 싹 찍어가시기도 한다고 해서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는데 우리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담사님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남편이 물었다.
"그럼 우리 아기는 벌써 태어난 걸까?"
아, 아기가 정해졌다면 이미 태어났겠구나. 어디선가 꼼지락거리고 있을 아기를 상상해보았다. 아기를 상상하니 자연스레 미소가 번지는데, 금세 미소를 거뒀다. 가슴이 설레다가, 곧 시렸다. 기쁘고 짠한 마음이 동시에 일었다. 마냥 기뻐만 하기에는 미안한 무엇이 있었다. 내 아기는 지금쯤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 것일까? 아기는 일생을 그리워하게 될 그 이별을 벌써 했을까? 무사히 우리의 품으로 오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