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맡긴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그 다음 순서는 가정방문인데 아무 연락이 없었다. 여섯 달은 족히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기다려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오늘 오전이라도 전화가 올 것만 같은 긴장감이 이어졌다. 친정 엄마도 뭘 꼬치꼬치 묻는 성격이 아니신데, 저번 친정 나들이에 은근히 "거기선 아무 말도 없대? 암것도 물어보도 않하고?"하셨다. "응, 기다리는 가정이 많대. 여름은 돼야하지 않을까?" 하니, "뭔 입양하는 사람이 그리 많다냐." 하며 아쉬움을 그대로 드러내셨다.
그시절 우리 부부는 아이 없는 삶을 그제야 즐기기 시작했다. 함께 공연을 보고, 퇴근 후엔 조용히 책을 읽었다. 미뤄뒀던 기타 연습을 하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고 미니멀 라이프에 빠져 집안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책을 보는 남편 뒤통수에 대고 지나가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자기는 아이가 빨리 안오니까 기다려지지 않아?"하고 물었다. 나는 두달이 넘어서니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었다.
"아니, 난 요즘 사는 거 만족스러워서..."
"그래? 그럼 우리 이렇게 살까?"
"아니, 뭐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까 좋은거지, 뭐."
그랬다. 우린 남은 자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동안 자유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자유. 온전한 우리 둘만의 시간.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 그래도 내가 아이를 기다리는 일에 얼마나 긴장을 놓지 않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꿈을 꿨다. 밤새 꿈에 우리 부부는 아이를 맞았다. 꿈 속에서 나는 첫 선보기에 가지 못했고, 남편에게 아이 사진만 받아 보았다. 누워 있는 아기인데 족히 3살은 넘어 보일만큼 덩치가 제법 컸다. 천하장사감이라 예전같으면 큰 아기 선발대회에 내보내도 되겠다 싶은 아이였다. 막상 법원 절차를 다 마치고 아이를 만나러 갔는데, 고등학생은 될 법한 큰 여자 아이가 멀뚱하게 서 있었다. 그제서야 깜짝 놀라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치를 주었지만, 남편도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다. 이미 법원 절차가 마무리 되어 더이상 되돌릴 수도 없었다. 이제 아이를 키울 거라고 사 둔 분유며 젖병이며 옷이 무색한 이 상황이 황망할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하늘에 대고 '제가 원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전 아주 어린 아이를 원했다고요.' 소리쳤다. 왜 이런 상황을 내게 말하지 않았냐고 남편을 원망도 해보고, 역시 내가 선보기에 갔어야했다고 나를 책망했다. 꿈이여서인지 그 여자아이도 나에게 서운함을 내비치지도 않고 장승처럼 서서 '이제 내가 너의 몫이다. 넌 어쩔 수 없을 거다.'하는 뚱한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잠에서 깨고 보니,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내가 아이가 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구나, 아이가 내 생각과 다르면 어쩌지 두려워하고 있구나, 그래서 꿈을 다 꾸는구나. 계속 애닳게 기다리는 티 내지 않고 '지금'에 집중하는 척 하고 있었는데 다 들통난 셈이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가 올까?'에 대한 불안이 그 꿈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아이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조금씩 혼란스러워졌다. 빨리 진행되지 않으니, 생각도 많아지고 쓸데없는 고민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임신에 대한 갈망이 커서 아이가 생기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가늠해볼 여유가 없었다. 혼자 여유롭게 샤워를 하고 바디오일을 바르면서, 쇼파에 앉아 책을 보면서, 설겆이를 하면서 육아하는 순간을 떠올려봤다. 역시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동시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이 엄습했다. 그러면 어느새 아이가 없는 지금의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편안함, 안락함, 고요함이 주는 만족 말이다. 이 생각은 곧 주변 사람들이 괜히 아이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닐 텐데, 하는 생각으로 번졌다. 이전까지 한 번도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데, 막상 아이가 진짜 생긴다고 하니까 육아가 현실로 느껴지면서 겁이 났다. 고민 끝에 지금의 내 감정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임신한 엄마들도 겪는 같은 과정을 나 역시 겪고 있는 것이라고. 내 삶의 가장 큰 변화가 시작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