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니멀리스트는 거지가 아니다
미니멀라이프의 지속가능성
"그러니까, 이 노트북을 어쩌라는 거야?"
"아, 괜히 샀어......"
내인생 첫 노트북의 짧은 역사
나에게는 노트북이 있다. 2년 전 이맘때쯤 나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꿈을 신랑에게 내비쳤다. 부끄러웠지만 그 말을 꺼낸 것은 노트북이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욕심을 내기 시작해서 자주 컴퓨터에 앉아 있었는데 남편이 자주 보는 거실 한가운데 놓인 컴퓨터의 모니터가 꽤 부담스러웠다. 계속해서 한글 파일을 켜두고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나에게 보이는 남편의 관심은 과분할 정도였다. 별 것 아닌데 계속 뭘 쓰는지 남편은 궁금해하고, 나는 모니터를 가리기 급급했다. 멀찍이서 남편이 가까이 걸어오면 훠이 훠이, 손을 휘저었다. 노트북이 있다면, 혼자 조용히 앉아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진지하게 내 꿈을 이야기 한 결과, 나에게도 노트북이 생겼다. 희고 예쁘고 큰, 노트북. 내 생애 첫 노트북. 나는 한글만 쓸 거니까 비싼 것도 필요 없다고, 제일 싼 걸 사주면 된다고 굽신굽신거려 어디서 오십 만원도 채 되지 않는 노트북을 샀다. 그래도 새 것이고, 하얗고 예뻤으니까 한동안은 꽤 아끼며 들고 다녔다. 주방 식탁에 앉아서도 쓰고, 들고 나가 커피숍에 앉아서도 썼다. 처음에는 한글로만 글을 쓸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블로그에도 글을 올려보고 싶어졌고, 또 그러다보니 인터넷도 가끔 하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작은 용량인데다가 여러모로 부족한 녀석이라 조금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지, 블로그에 글 하나를 올리려면 내 수명이 먼저 닳아지는 것만 같았다. 계속 나는 모니터 한가운데 동그라미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만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에 이 정도일 줄이야. 그 이후론 나도 노트북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남편과 나는 경쟁적으로 데스크탑 컴퓨터를 시간을 나눠 사용하게 되었다. 문제는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이 노트북이 나의 처분 목록에 오르게 된 것이다.
미니멀리스트라면 마땅히 노트북을 버리거나, 처분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자그만치 노트북인데 쉽게 처분하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집에 노트북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과 회의가 열렸다.
"얘를 어쩌지? 우리 사실 쓰지도 않잖아."
"그래도 노트북이 하나 있긴 해야 하는데, 얘는 정말...... 쓰기가 힘들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이 노트북을 어쩌라는 거야?"
"아, 괜히 샀어......"
계속 쓰기도, 버리기도 난감한 이 물건을 어찌하란 말이냐.
미니멀리스트의 지속 가능성
오늘은 미니멀리스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속 가능성'이라고 하면 대부분 미니멀 라이프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지속 가능성'은 물건을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하여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다.
미니멀리즘을 잘못 이해한 경우 많은 사람들은 싸고 저렴한 물건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을 상상하기 쉽다. 미니멀리스트는 부자와는 거리가 멀고 가난한 삶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용할 가치 있는 물건을 고르는 것에 집중한다. 싼 것을 여러 개 사용하는 것보다는 오래 쓸 물건 하나를 골라 구입한다. 예를 들어보자. 보통의 사람들이 여러 개의 머그컵을 두고 생활한다면, 미니멀리스트는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하나의 머그를 구입해 사용한다. 이렇게 단 하나의 운동화, 단 하나의 귀걸이, 단 하나의 볼펜, 단 하나의 접시를 사용한다. 집에 함부로 물건을 사 들이지 않으므로, 하나의 물건 구입도 신중하다. 조금 비싸더라도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질 좋고, 가치 있는 물건을 고른다. 그리고 고른 물건을 아끼고, 잘 관리하면서 사용한다. 여러 벌의 코트를 사기보다 한 벌의 질 좋은 겨울 코드를 구입해 잘 관리하며 입는다. 여러 개의 후라이팬을 쓰지 않고, 한 개의 주물 후라이팬을 잘 관리하며 쓴다. 싸구려 가전 제품을 자주 바꾸기보단, 좋은 가전 제품을 최대한 오래 잘 관리하여 사용한다.
적은 물건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그 적은 물건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패스트패션이나 일회성 물건보다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물건에 관심을 보인다. 미니멀리스트는 거지가 아니다.
똑똑한 척했던 절약의 결과
남편과 오랜 대화 끝에, 우린 노트북이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신랑이 포토샵 등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데스크탑 컴퓨터를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무작정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차마 말을 못하고 남편도 불편했던 것이다. 이번 성과금이 나오면 그 돈을 보태 조금 더 쓸만한 노트북을 새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결론적으로 노트북 구입에 이중으로 돈이 든 셈이다. 우리는 가끔 세상 멍청한 짓을 하며 똑똑한 척하곤 한다. 어차피 한글만 쓸 거니까 저렴한 노트북을 구입했다며 알뜰한 나를 얼마나 칭찬했던가.
오늘은 똑똑하게 절약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조건 싸게,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쉽게 망가지거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채워주지 못해 새로 비슷한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면 이중으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똑똑한 게 절대 똑똑한 게 아니다. 적은 물건을 구입하되, 물건을 하나 구입할 때는 함께 깊이 있게 이야기해보고 잘 관리해서 오랫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가치있는 물건을 선택하는 습관을 들이자. 당장은 조금 더 돈이 드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절약은 장기전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덧붙이기. 우리는 예산에 없던 새노트북을 올해 사는 것을 포기했다. 특별한 수입이 생기지 않는다면 새노트북은 내년 초에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비상금으로 살 정도의 급한 상황은 아니니까 예산을 마련해 내년에 사는 것이 옳다. 예산은 큰 문제가 없다면 되도록 지키자. 필요하니까 사야지, 하면 필요한 건 세상에 넘치기 때문에 예산을 지키기 어렵다. 별다른 특별 수입이 없는데 예산 외 지출을 늘이면 결과는 적자인생이 된다. 그러니까 한 번 살 때 제대로 사자.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