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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민 Feb 28. 2019

맛있으면 0칼로리?

치킨과 믿음의 의지성

맛있는 걸 참아야 하는 고통은 정말 크다. 먹으면 안 된다는 마음과 먹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기 위해 우리는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믿으면서 우리는 밤 10시에 치킨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믿음이란 것이 정말 그럴까? 우리의 의지대로 무엇인가를 믿고 또는 믿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정당화된 믿음'의 기준


어떤 것을 안다는 것, 다시 말해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예로부터 인식론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으로 흔히 '정당화된 믿음'이라는 조건이 요구된다.


누군가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은 쉽다. 실제 사실과 비교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저번 주에 시켜먹은 치킨은 16000원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영수증을 보고 그 믿음의 참 거짓을 판별하면 된다. 그런데 믿음의 정당화 문제는 조금 다르다. 어떤 이의 특정한 믿음을 두고 충분히 그런 믿음을 가질만했다고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정당화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의견이 갈렸다.


첫 번째 주자는 '인식적 의무론'. 이 입장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특정한 인식적 의무가 있고, 그 의무가 충족될 때만 믿음이 정당화된다고 본다. 철학자 펠드먼은 그러한 의무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로 지지되는 것을 믿고, 지지되지 않는 것은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 누군가가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난의 대상이 되듯이, 믿을만한 증거가 없는데도 단지 그렇게 믿고 싶다는 이유로 믿음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입장이다. 


다음은 '비의무론' 진영인데, 이들은 인식적 의무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철학자 올스턴이 정의하듯, 단지 누군가의 믿음이 인식적으로 "적절하다"던가 "좋다"고 평가되고 굳이 그 반대의 믿음을 가질 이유가 없다면, 그 믿음은 정당화된다는 입장이다. 의무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책임도 없고 비난도 할 수 없다.


둘 중 어떤 입장을 따를 것인지는 아쉽게도(?) 취향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인식적 의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능한가 라는 물음에 어떤 답이 나오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다면 해야 할 의무도 없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치킨 냄새가 흘러나온다. 부엌 쪽으로 가보니 가족 중 누군가가 시켜둔 듯 식탁 위에 놓인 치킨 한 마리가 보인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내 앞에 치킨이 있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믿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런 믿음을 갖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혹시 내가 환영을 보는 건 아닐까 하며 의심하고 여러 번 검토한 끝에 형성된 믿음이 아니라, 그저 눈앞에 뻔히 보이고 냄새까지 솔솔 나니까 자동적으로 그렇게 믿게 되는 것 아닌가.



당신은 하필이면 다이어트 중이었고 그날 저녁은 유난히 배가 고팠다. 고민을 거듭하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를 외치며 테이블 위에 있던 치킨을 해치우고 다음날 아침 체중계 위에 올라갔는데... 어제에 비해 몸무게가 2킬로나 불어있다! 눈에 너무도 선명하게 비치는 체중계의 숫자. 이것이 현재 당신의 몸무게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당신의 마음속에서 그 믿음은 점점 더 굳어질 것이다. 오늘 저녁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이처럼 믿음은 당신이 원치 않는데도 형성되기도 한다.


이 예시들이 공통적으로 암시하는 바는 믿음이란 우리가 스스로 의지를 발휘해서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럴만한 이유나 증거가 주어지면 의지와 무관하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은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은 인식적 의무론에게 큰 위협이 된다. 만약 믿음의 생성이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면 그에 대해 의무를 지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어떤 것을 믿을지 말지 컨트롤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특정한 규범에 따라 믿음을 가져라 마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무언가를 할 능력이 없다면, 그것을 해야 할 의무는 있을 수 없다.


믿음이 의지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오고 가는 중이다. 의무론자들이 믿음의 의지성을 변호하기 위해 맛있게 먹으면 살이 덜 찐다고 ‘믿기로 결심’하는 것을 예시로 내놓으면, 비의무론자들은 이건 진짜 믿음이 아니라 그저 어떠한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고 그것을 행동의 전제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는 식이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 우리가 밥 먹듯 늘상 당연하게 수행하는 이 행위가 정확히 어떤 행위인지, 그 행위의 당사자인 우리가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니. 이럴 때마다 철학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참고로 오늘날 대세(?)는 비의무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믿음은 비의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논증을 제시하기 까다로운 이유는 너무나 다양한 심리 상태가 일상적으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퉁쳐지고(...) 있고, 그렇게 뭉뚱그려진 다양한 심리 상태 각각을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정의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맛있게 먹어도..."


믿음에 관한 문제만큼이나 골치 아픈 것으로는 다이어트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따위는 믿지 않는다. 얼마나 맛있게 먹든지 섭취한 칼로리는 그대로일 뿐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아무리 믿으려고 애써도, 이제까지의 내 모든 경험들이 증거가 되어 저 명제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토록 내 의지에 반하여 형성되는 나의 믿음...! 그렇다. 나는 어디까지나 믿음은 비의지적이라고 믿는다.


덕분에 내가 치킨을 시키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기름에 튀긴 닭고기의 맛은 절로 웃음이 나오지만 거기서 오는 칼로리는 그렇지 않으니까. 대신 직접 홈메이드 치킨을 만들어 먹는다.


Ⓒ오수민


먼저, 닭은 튀기지 않는 방법으로 조리한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해 구우면 편하지만 이 두 가지가 없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냄비와 프라이팬만 있어도 충분하다. 우선 냄비에 물을 끓여 닭고기가 속까지 익을 수 있도록 알맞게 삶는다. 다 익은 고기는 건져내서 우선 닭고기의 껍질 부분이 팬에 맞닿게 올려 노릇하게 구워준다. 반대편도 마저 굽는데, 이때 너무 오래 구워서 육질이 퍽퍽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닭고기를 삶는 동안 소스를 만들어 둔다. 계량은 대충 집에 있는 숟가락을 사용해 편하게. 간장 3큰술, 고추장 1큰술, 설탕은 취향껏 2-3큰술, 마늘은 큰 숟갈로 1스푼 넣어도 되지만 간 양파는 작게 1스푼만. 물엿과 케첩을 작은 1숟갈씩 넣어주고 물을 가감해 농도를 맞춰주면 양념치킨 소스가 완성된다. 이 양념을 작은 냄비에 살짝 끓이면 되는데, 사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랩만 씌워 전자렌지에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결과물은 훌륭하다.


이렇게 만든 소스에 구워낸 닭고기를 찍어먹어도 좋고, 구워진 닭고기와 함께 팬 위에서 휘리릭 볶아내도 좋다. 아무래도 두 번째 방법이 좀 더 맛깔스럽긴 하다.


Ⓒ오수민


담백하게 먹고 싶다면 굽는 과정에서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하면 된다. 이때 레몬즙을 한번 뿌려주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나는 방울토마토도 함께 구워 곁들였다. 


Ⓒ오수민


고추장 베이스의 소스가 싫다면 앞서 나온 레시피에서 고추장과 양파를 빼고 달콤한 간장 소스를 만들 수도 있다. 이때 굴소스를 조금 넣어주면 훨씬 맛있다. 참고로, 굴소스 대신 발사믹 식초를 한두 큰 술 넣으면 갑자기 중화풍의 느낌이 물씬 나는 소스로 변신하니 꼭 한 번 시도해볼 것을 추천한다.


직접 조리한다는 수고만 조금 들이면 양념도 취향대로 만들 수 있고, 원치 않는 잉여 칼로리도 한껏 덜어낼 수 있다. 게다가 맛도 좋으니 참 고마운 요리가 아닐 수 없다. 치킨은 먹고 싶지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를 믿으려 결심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이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홈메이드 치킨의 세계로 넘어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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