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공유하는 사이, 나와 세계
초콜릿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먹지 않는 건 아니다. 화이트 초콜릿은 초콜릿이 아니라며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그것이 린도르라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먹는다. 이런 나의 취향이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저 '맛이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을 충실히 따르는 것뿐이다.
얇고 바삭한 웨이퍼에 달콤한 초콜릿이 덮여있다면, 이건 웬만해선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웨이퍼와 초콜릿의 조합으로 유명한 로아커, 레돈도, 킷캣 등의 과자가 항상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런 류의 과자는 코팅된 초콜릿이나 필링만 다른 종류로 바꾸면 맛이 확 달라지기 때문인지 종류도 다양하고 신제품도 자주자주 발매된다.
신제품을 좋아하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출시되는 킷캣의 신상품은 특히 반갑다. '한정판 루비 킷캣' 또한 그랬는데, 영롱한 핑크빛 색상의 초콜릿과 예쁜 패키지는 비싼 가격을 못 본 척하게 만들었다. 이왕 산다면 하나만 사기엔 섭섭한 법. 같은 프리미엄 라인의 '비터', '말차'까지 세 가지 호화판 킷캣을 손에 넣었다. 만족스러운 지름이었냐고? 음... 그 감상은 잠시 후에 털어놓도록 하겠다.
칸트와 헤겔. 이 두 철학자는 인간의 확실한 앎을 규명하기 위해서 인간의 이성에 주목했지만, 그 초점은 서로 달랐다. 칸트가 외부의 관점에서 이성 능력 자체를 관찰하여 규명하고자 했다면, 헤겔은 우리가 경험하는 삶 속에서 그 능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려 했다.
이처럼 인간 정신의 본성이자 원리인 이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이성이 자꾸만 모순을 만난다는 것이었다.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이성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원인을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며 묻는 운명을 타고났다. 앞서 등장한 레돈도, 킷캣, 로아커, 이 셋은 각각 다른 제품이긴 하지만 분명 서로 닮은 데가 있다. "왜지?" 당신의 이성이 그 원인을 묻고, "셋 다 ‘웨이퍼’와 ‘초콜릿’의 조합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도출해낸다.
이성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이렇게 상위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보편 개념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방금전의 예시처럼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보다 정돈된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개별적인 과자가 속하는 더욱 상위의 개념인 '웨이퍼'와 ‘초콜릿’을 확립한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원인을 묻는 일에 끝이 안난다는 것. "초콜릿은 왜 만들어졌을까" 또는 "인간은 왜 음식을 먹어야 하나"까지는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왜 존재하나", "인간을 일부러 창조한 존재가 있는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대답하기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어떤 대답을 내놓든 맞는 것도 같고 틀린 것도 같다. 모순에 봉착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성이 자신에게 허락된 영역 밖으로 나가버릴 때 모순을 만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애초에 만나선 안될 상대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헤겔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성이 모순에 부딪혔다는 것은 오히려 이성이 세계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길, 이 세계엔 원래부터 모순이 존재하고 이성은 그저 그것을 발견한 것뿐이라나. 흠, 조금 의아하다. 이 세계를 제대로 파악한 결과가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해답이 아닌 모순이라니. 헤겔은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성이 끝내 모순에 맞닥뜨리는 건 당연하다고, 모순은 이 세상에 원래 존재한다고 헤겔이 말하는 까닭은 그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개념과 진리들이 변증법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맞다. 이전에 우리가 살펴본 "인간의 정신은 변증법적인 운동을 통해 발전해 나간다"는 헤겔의 설명에 나왔던 바로 그 변증법이다.
둘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그 둘을 통합하는 제3의 길로 나아가는 것. 위에 등장한, '보편 개념'이 확립되는 과정을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변증법의 도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과자를 모두 함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통합하는 상위 개념인 '웨이퍼'와 '초콜릿'을 도출해냈지 않은가.
이성이라는 본성을 가진 탓에 인간 정신은 계속해서 변증법적인 운동을 해나가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개념들이 이처럼 변증법적이라는 건 어쩌면 이 세상도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헤겔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와 세계가 이성이라는 같은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바로 그 원리—이성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이성을 사용하다보니 얻게된 보편 개념. 그 보편 개념은 변증법을 통해, 다시 말해 개별적인 것들을 모두 아울러 포섭할 수 있는 차원으로서 확립된 것이기 때문에 현실의 불완전함과 다양성을 포함할 수 있다고 헤겔은 말한다. 이름난 장인이 만든 맛부터 외관까지 모두 완벽에 가까운 초콜릿부터, 작년 우리 집 주방에서 연성된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엔 영 껄끄러운 초콜릿까지, 모두 '초콜릿'이라고 부른다. 언뜻보면 어떻게 저게 똑같은 초콜릿인가 싶다.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보편 개념이 변증법적인 덕분에 '초콜릿'은 양쪽 모두를 가리킬 수 있게 된다.
헤겔이 보기엔 세상의 모든 개념과 진리가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맞닥뜨린 모순은 '오답'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이성을 사용해, 역시나 동일하게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이 세계를 지극히 제대로 파악한 '정답'인 것이다.
손가락만한 너비에 길이는 그보다 조금 긴 초콜릿 하나가 반올림해서 오천 원. 나머지 두 개는 개당 사천 원. 헤겔은 세계에도 이성이 있는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에게 이번 구매에 대한 소감을 말하라면, 개당 오백 원짜리의 일반 킷캣을 가지고도 프리미엄 킷캣의 맛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다(...)
평범한 녹차 킷캣이나 프리미엄 녹차 킷캣이나, 초콜릿으로 감싼 웨이퍼라는 본성은 동일하다. 비싼 만큼 녹차 가루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먹어보면 그냥.. 킷캣이다. 가장 많이 기대했던 루비 킷캣은 확실히 상큼하니 입맛에 맞았으나 이 또한 기존의 라즈베리 킷캣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네슬레의 영업부는 이 글을 못마땅하게 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 글을 읽고 나서 오히려 프리미엄 킷캣을 사고 싶어 지는 사람이 있을지. 원래 세상은 모순적인 게 당연한 거라는데. 굳이 사볼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이번 지름을 계기로 세계 이성도 생각해보고 완전 손해는 아니었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머릿속 한 구석에서 이건 그냥 자기 합리화 아닌가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싶지만, 아마 당이 떨어져서 그럴 것이다. 초콜릿을 마저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