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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Jul 18. 2023

숨 막히는 도돌이표

< 뜬구름을 잡는 걸까 > 83년생의 집


83년생 부부의 집은

초등학생 아이들의 개구진 웃음소리가 대문을 넘지만, 사실 따라 웃는 부부의 웃음은 끝이 흐리다.



보내는 곳은  피아노 학원과 학교 방과 후 수업뿐.


각각 장롱 한 칸에 사계절 옷이 다 들어갈 만큼 옷도 화장품도 사지 않고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유지하지만, 방심하면 늘어나는 자잘한 살림과 아이들 용품과 때를 놓쳐 급히 주문해 먹는 외식비를 따져보면 검소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주위에서 유행하는 무지출 챌린지와 미니멀 라이프를 보면 죄책감이 늘어간다.


남편은 집 대출과 보험료와 공과금에 관한 것들을 최전선에서 막고 있으니, 생활비와 그 외 지출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전문적인 일자리가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해도 턱 없이 부족하다. 마이너스, 마이너스. 장기 대출과 단기 대출로 돌려 막고 있다.



하루는 친한 동생이 밥을 사준다며, 음식을 시켜 놓고 마주 앉아 말했다.


"언니 그렇게 쪼들리면 아침부터 밤까지 할 수 있는 일을 구해서 다녀."


나도 생각을  해 본건 아니니 바로 대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 둘인데 둘 방과 후를 학원으로 채우는 비용이나 돌봄 부탁하는 비용 생각하면 크게 남지 않아. 그래서 애들 내가 보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아이들을 맡아 줄 친정엄마의 컨디션과 스케줄에 맞춰 날짜를 조율해가며 틈틈이 하는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어려운 형편을 아시는 엄마가 그냥 돌보아주시니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친한 동생도 바로 말했다.


"그렇게 드문드문하면 돈이 되겠어? 그리고 이력이 되는 일을 해야지. 내가 아는 언니는 간호조무사 자격증 따서 하는 데 그게 다 경력이 쌓이는 일이야."



"OO아, 나는 작가가 되고 싶으니까 돈만 벌면 돼, 다른 일로 경력은 필요 없어. 글을 쓸 시간도 필요하고."



주문한 감자탕 냄비가 나오고, 불을 켜는 동안 짧은 침묵이 흘렀다. 동생이 '그렇겠다.' 정도로 마무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심한 듯 말했다.



 "언니, 그 뜬구름 잡는 소리. 한 달 한 달 고비라면서 고고하게 '나는 글 쓸 거니까 다른 일로 경력은 쌓을 필요 없어.' 그러고 있어?"



이 친구는 평소에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눈앞이 핑 돌았다.


찔린 것 같기도 하고, 매우 억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야아~ 아니야아.... 나 재택 아르바이하느라 밤새고 다음 날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가고 애들도 내가 케어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사냐고. 애들을 아예 돌봄으로 맡기고 언니가 아침부터 밤까지 일자리 구해서 일하면 한 달에 300만 원은 거뜬히 벌 텐데.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그렇게 벌어서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정확한 말에 눈물이 터졌다.




나도 알고 있다. 꿈이니, 글이니 하는 소리를 할 때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나를 한심하게 볼 거라는 것, 비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늘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상상 속 불특정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친구를 통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면전에서 직접 들으니 1초의 지체도 없이 울음이 났다. 동생은 당황했다.








잘 모르겠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밀어붙여야 했는데 생계에 쫓겨 다른 일을 하며 보낸 시간이 '허송세월'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생계는 나 몰라라, 집에 앉아 글만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며 이번엔 꼭 끝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쪼들려도 일과 글 쓸 시간, 포기할 수 없는 직접 양육 시간을 다 잡고 분배하며 해보려고 애썼다.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렇다.   



내게 그런 충고를 한 그녀도 우리 아이들과 꼭 같은 나이의 딸들이 있지만 그녀는 생계를 위해 세 달씩 지방에 내려가서 숙소를 잡고 아이들과 따로 생활을 한다. 평일은 온종일 돌봄이 되는 대안학교에 저녁까지 맡기고 남편이 퇴근 후 돌보며, 친구는 주말에만 올라온다. 대신 야무지게 일을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여행을 다니고 돈에 쪼들리지 않고,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들을 가르친다. 재테크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녀와 나는 지향점이 다르다. 아직 어린아이들과 보내는 귀한 시간이 내겐 '돈'을 '기회비용'으로 버려도 감내할 만큼 우위에 있다. 덜 벌어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을 배우고 쓰는 시간은 뜬구름이 아니라 '나라는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지금 무엇을 하는지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에 돈을 덜 버는 만큼이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다. 빚이 과도하고 생계가 아슬아슬하다면, 당장 모든 걸 멈추고 생계에 뛰어들어야 할 거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귀를 막고 지내다가도



털썩 주저앉게 된다. 40대 중반을 향해가며 회사 생활에 조금씩 지쳐가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잔뜩 희망 회로를 돌리며 큰소리를 치던 마음이 정말 흔적 없이 증발해 버리고 초조하고 두려워졌다. 나의 선택들이, 판단들이 틀려서 그래서 우리가 계속 힘든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여름방학이 끝나는 9월부터는 매일 나가는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숨 막히는 도돌이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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