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을까? 시간도 체력도 항상 부족한 내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엔 단순하게 단행본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번역을 직업으로 제대로 싶어서 대학원까지 졸업했고 인하우스 번역사로 잘 살아왔지만 언젠가 단행본 번역을 해서 역서 출간도 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다 너무 마음에 쏙 드는 책이 내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작가와 컨택 후 번역을 하면서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에너지에 흠뻑 빠져 지냈다. 그러고 나서부턴 사실 번역이나 출간 그 자체가 더 이상 목적이 아니었다. 책의 메시지를 세상에 더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원서인 <How to make sense of any mess>는 명료하게 사고하고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정보 구조 설계, 온톨로지, 멘털 모델, 다이어그램 등을 소개하며 그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적용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성공 방법론을 제시한다. 번역을 하고 수 차례 퇴고와 교정을 거치면서 이 책의 메시지를 수 없이 많이 곱씹었는데, 그러면서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여러 차례 더 검증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더욱더 이 책은 내가 세상에 꼭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이 굳건해지자 나는 이 작업에 시간과 애정을 열렬히 쏟게 되었다.
사실 그만두고 싶었으면 중간에 얼마든지 슬며시 그만둬도 아무도 모를, 그리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그런 작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끝까지 해내지 않으면 이 책의 메시지를 내가 제대로 소화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책은 그 자체로 나를 응원하면서도 때론 채찍질한 것이다. 엉망진창이 된 것 같아도 어떻게든 그 안에서 정신줄 잡고 결과를 만들어 내라는 것. 그 메시지를 따르니 정말 책이 완성되었다. '과연 이게 될까?' 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시작했지만, 나는 차근차근 한 발씩 발을 내디뎌 막연한 계획을 확실한 결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단행본 번역을 한번 해보자'로 시작했던 소소한 목표를 달성한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더 명료하게 사고하고 소통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게 쪼개어 관련 글을 계속 쓸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내가 읽은 책들은 앞으로 내 인생에 수도 없이 자주 불어닥칠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나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고, 내가 쓴 글들은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때 나를 응원해 주고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남을 위해 글을 쓴다고 해도 사실은 나 스스로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또한 이번 경험은 내가 커리어를 다시 피봇 하게 된 결정타가 되었다. 이 책 덕분에 IT 회사의 인하우스 번역사로서 빠졌던 정보의 엉망진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자발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의 엉망진창 속으로 풍덩 빠질 예정이다. 회사의 신규 프로덕트의 성장을 전체적으로 매니징하는 역할을 맡아보려고 한다. 사실 전문적으로 번역을 하기 전에도 다른 회사에서 비슷하게 해 봤던 일이고, 그때 사람과 일에 지쳐버렸던지라 전문 번역으로 피봇 했던 것인데, 결국 상상도 못 한 이유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프로젝트의 의도와 방향성을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할 거다. 복잡한 정보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구조화할 거다. 정확한 언어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들을 나 스스로, 또 동료들과 함께 축하하고 응원해 나갈 거다. '과연 이게 될까?' 하는 불확실성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무언가는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더이상 엉망진창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사람과 정보가 뒤얽혀 엉망이 되어버린 곳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AI의 시대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나중에 또 세상에 전하고 싶은 훌륭한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그때 다시 번역의 세계로 돌아가겠지만, 당분간은 새로운 엉망진창 속에 빛을 비춰 탐색하고 연구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엉망진창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참고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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