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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다

How to make sense of any mess

by Lyla

이게 진짜 되는 걸까? 마지막까지 조마조마했는데 교보문고 POD 플랫폼에 원고를 올리고 이틀 뒤에 판매 승인이 났다. ISBN도 발급받았다. 정말 쉽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548377




본문 교정을 3교까지 보고 하시라도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렸다. 표면적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병치레와 갑작스레 다녀오게 된 가족 휴가 때문이긴 한데, 사실 2교를 보고 나니까 더 이상 교정을 보기가 싫었다. 2교 수정본을 받았는데, 이제 여기서 진짜 딱 한 번만 더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겁이 난 것 같다. 이번에 모든 실수를 다 잡아내지 못하면 턱없이 부끄러운 나의 문장들이 그대로 인쇄되어 나갈 거라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이제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는 단 한 번뿐! 그래서인지 괜히 더 꾸물대고 갖은 핑계를 댔다. 회사 일이 바빠서. 원고 볼 기분이 아니라서. 너무 졸려서. 너무 배불러서. 머리가 아파서. 아이가 놀아달라고 해서. 그렇게 2주 정도를 그냥 뭉갰는데 다행히도(?) 주변에 선언을 해둔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꾸역꾸역 3교를 보는 나를 발견했다.


무려 3교에도 출몰하는 이상한 문장들을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면서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번역했다면 전문 에디터분들이 나의 문장들을 멋지게 손봐주셨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단행본 전문 에디터가 아니다 보니 모든 게 불안하고 불확실했다. 교정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오탈자나 이상한 문장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폰트가 괜찮은 건지… 그 어떤 것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뭐든 장단점이 있는 법.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냈다면 번역 일정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내 마음대로 작업 일정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가 온전히 나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와 직접 소통하고 계약 조건을 내 마음대로 정해서 협상할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다. 출판 기획을 내 마음대로 세우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책 소개글을 작성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이 콘텐츠를 앞으로 어떻게 더 알릴지 고민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인데, 이런 작은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재미있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책과 작가를 발굴하고, 팬심으로 낳은 내 새끼(?) 같은 역서를 앞으로 이 세상에 더 자랑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A부터 Z까지 혼자서 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성과이다. 충동적으로 작가에게 첫 이메일을 보냈지만, 이메일이 온라인 미팅이 되고, 출판 계획서가 되고, 교정지가 되고, 출판 계약서가 되고, 온라인 상세 페이지가 되었다. 언젠가 번역서를 하나쯤은 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으로 시작했고, 우연히 기회가 생기자 작은 태스크들을 찬찬히 실행에 옮겼다.


때론 진전이 없었다. 괜히 시작했나 싶기도 했다. 아이를 재우고 조금씩 밤잠을 줄여가며, 아이를 주일학교에 보내고 잠시 짬을 내어, 회사 점심시간에 책상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번역을 하고 교정지를 보고 계약서를 검토했다. 가끔 피곤할 땐 괜히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세운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는 자투리 시간을 긁어모아 가치 있는 경험으로 만들었다. 문장을 쓰고 기획을 하며 내가 아직 얼마나 번역 실력과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지 깨달았다. 부족함을 느끼게 되자 좋은 문장에 목말랐다. 그래서 도서관에 더 자주 가서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났다. 내 번역에 쉽게 만족하지 않고 교정을 거듭하면서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문장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어서 이 과정이 견딜만했을 수도 있다.


책을 내기 전과 낸 후의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일터와 일상에서 엉망진창이 된 것들을 봐도 예전과 달리 더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 1년 내내 책과 씨름한 덕분에 애비가 이 책을 통해 전하는 교훈들이 내 머릿속에 콕 박혀버린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엉망이 된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 마음은 모두 내 맘 같지 않다. 그게 정상이다. 나는 언제든 복잡한 혼돈 속을 뚫고 나갈 수 있다.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된다. 조금씩이라도 앞으로만 나아가면 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측정하면 된다. 그게 회사에서 새로 맡은 프로젝트든, 운영하고 있는 가게 일이든,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든 말이다.






https://abbycovert.com/make-sense/


애비에게 책 판매 승인이 났다는 소식을 알리자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곧 How to make sense of any mess 공식 홈페이지에 내가 번역한 국문판 소개 페이지가 올라갈 예정이다.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에 이인 네번째 번역판이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일하면서 겪는 엉망진창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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