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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Apr 25. 2022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그 아이의 머리에서 후드득 떨어져 내리던 새하얀 분필 가루와 눈물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처음 본 순간 나는 반해버렸다. 내 학창 시절이기도 했던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청춘드라마라니 반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정해진 결말로 나아가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과도했고 그 과도한 주제의식을 조금이라도 매끄럽게 담아내기에는 갈등의 전개 과정이 다소 어설프고 유치했다. 마치 드라마에서 인용되었던 이 문구처럼.


학생이라는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공부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한 때는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의 마음을 울렸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싸이월드 흑역사, 중2 감성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어버린 문구이다. 실은 많은 것들이 그러하다. 시간의 먼지를 털고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내 기억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학창시절 내내 그렇게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들은 다시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그렇게도 떠나고 싶던 우리 동네는 실은 제법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정말 교도소 같기만 하던 학교는 실은 교도소에 비유하기에는 아주 허약하고 모순적인 공간이었다.


나는 교복을 입게 된 이후 내내 학교가 싫었다. 혹여나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중학교에 입학한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 일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걸.


수학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다 말고 갑자기 우리 쪽으로 걸어오시더니 분필지우개로 한 아이의 머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선생님이 얘기하시는데 감히 물을 마시고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아이의 머리에서 후드득 떨어져 내리던 새하얀 분필 가루와 갑작스런 폭설에 휘청거리는 나뭇가지처럼 덜덜 떨며 서 있던 그 아이의 억울한 얼굴. 그게 중학교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이후로도 그 첫인상을 바꿀 만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 시간마다 학생주임선생님은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기 위해 늘 본보기로 시끄러운 아이들 몇 명을 집어내어 강당 앞에 세웠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뺨을 때렸다. 수백 명이 떠드는 소리보다 쫙 하고 뺨을 때리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질 때쯤 조회는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 중에도 뺨 때리는 게 특기인 선생님이 있었는데 결국은 학생 한 명의 고막을 터트렸다. 물론 많은 남학교에서 행해졌던 체벌의 수위란 고막이 터지는 것조차 별일 아닐 정도였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우리들이 학생이라는 죄로 매 맞는 죄수들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요즘 교권 추락이나 교실 붕괴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내 기억 속의 교권과 교실은 이미 붕괴되고 있었다. 체벌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공포는 곧 무뎌지고 때로는 그 공포를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정규 수업 시간 이후에도 모두 참여해야 하는 방과후 수업 시간이 있었다. 다들 체력이 바닥난 시간대이다 보니 수업은 귀에 들리지 않고 다들 졸기 일쑤였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잠이 많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엎드려 자는 그 친구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혼을 내며 깨웠다. 그런데 다음 순간 우당탕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그 친구가 앉아 있던 의자가 내던져진 것이다. 선생님이 화가 나서 그랬냐고? 아니. 그 친구가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집어던진 거였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선생님도 똑같이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구나. 공포에 이어 충격과 슬픔, 허탈감에 빠져 아무 말 없이 수업 중간에 교실을 나가 버린 선생님의 뒷모습 또한 잊을 수 없는 학교에 대한 기억이다.


물론 선생님들의 체벌에 비해 학생들의 반항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숨은 반항은 일상에 산재해 있었다. 나의 반항은 귀마개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들 중에는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을 수업과는 관계없는 잡담에 할애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 수업을 해봤자 듣지 않고 조는 학생들이 많아서 재미있는 잡담으로 깨워보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 의도를 이해하고 존경할 만큼 아름다운 사제 관계는 이미 교실에 없었다. 사실 문제의 의자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재미있지도 않은데다가 여고생이 듣기에 다소 불쾌한 수위의 자기 무용담이 몇 십 분씩 이어지던 중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귀를 잘 가린 후에 귀마개를 끼고 혼자서 문제집의 뒷부분을 공부했다. 어쩌면 의자를 내던지는 것보다 더 철저한 불신이었고 깊은 붕괴였다. 선생님들의 체벌은 그 붕괴를 막아보려는 안간힘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안간힘으로 인해 더 빠르게 무너져 갔지만.


교사의 체벌을 고발하고 자퇴를 선택한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승완'의 모습


졸업 후 딱 두 번 학교를 찾아갔었다. 한 번은 졸업한 직후, 한 번은 교사가 된 이후.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다. 학창 시절 내내 학교를 그렇게도 싫어했으면서도 나는 교사가 되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체벌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인물이 자퇴를 선택한 것에 비하면 거의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 선택에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었지만, 뭐랄까, 그냥 한 번 더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어른에 대한 믿음이, 내일에 대한 설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틀어막고 있던 귀마개를 빼고서 다시 돌아와 어린 나와 직면할 기회를.


그 사이 세상은 빠르게 바뀌어 체벌은 사라졌고 수업 시간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체벌이 사라진 자리에 존경과 신뢰가 돌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무심하고 폭력적이었던 학창 시절을 겪었던 학부모들은 쉽게 교사를 믿지 않고, 아이들은 교사를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성적과 따돌림과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한다. 


내가 좋은 교사인지도 역시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겉으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실은 그다지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에서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가 싫어하던 종류의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나름으로 애썼지만, 때로는 똑같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앞으로도 학교에 너무 잘 적응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내내 어딘가 불편하여 그 불편함으로 인해 좀 더 애쓰는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적어도 지금 이 아이들이 먼 후일 떠올리게 될 2020년대의 학창 시절은 조금 덜 슬프고 조금 더 청춘답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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