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하 Dec 27. 2018

완벽한 반숙 계란을 먹기 위하여

계란을 완숙으로 삶는 것은 쉽다. 그냥 물이 끓든 말든 계란을 넣고 푹 삶으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와 상관없이 완전하게 익는다. 나는 완숙 계란과 반숙 계란 중 하나만 고르라는 명을 받는다면, (계란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너무나 당연히 반숙을 선택할 것이다. 반숙이 완숙보다 만들기 어려우니까, 완벽한 반숙 계란을 먹는 것은 완벽한 완숙 계란을 먹는 것보다 훨씬 값지고 맛있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계란 한 판의 가격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집 근처 마트에서 계란 10구에 2,500원을 받는 것을 보고 다시는 계란을 저기서 사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다. 집 보다 조금 먼 할인마트에서는 30구에 2,490원을 받고 있었다. 혹시나 깨질까봐 조심히 들고오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냉장고를 꽉 채운 계란들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든든하다.


반숙 계란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의 세기와 삶는 시간이다. 초록창에 '반숙 계란 삶는 법', 또는 '반숙 계란 맛있게 만들기' 를 검색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레시피를 선보이며 이 방법이 가장 좋다고 뽐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래 레시피나 블로그를 보고 요리를 잘 따라하는 편인데, 반숙 계란은 이상하게 내가 원하는 정도로 삶기가 너무 어려웠다. 어떤 곳에서는 계란을 넣고 물을 끓이라고, 다른 곳에서는 물이 끓고나서 계란을 넣으라고, 또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르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일본 라멘집에 가면 맛있는 간장 반숙 계란인 '아지타마고'를 맛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운 라멘을 시키면, 매운 것을 먹기 전에 속을 보호하라는 의미에서 아지타마고를 한 입에 쏙 넣는 것으로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다. 라멘을 먹기 전에 아지타마고를 먹는 것은 라멘을 먹기 위해 라멘집에 가기보다, 반숙 계란을 먼저 맛보는 즐거움 때문에 라멘집에 간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냥 메인메뉴를 먼저 막 먹기보다, 전혀 다른 메뉴로 의식을 치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반숙 계란은 나에게 매번 냄비 앞에서 '어떻게 하면 맛있고 완벽하게 삶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해준다. 어떻게 보면 계란이 내 준 숙제 같기도 하고, 점차 내 집의 불 세기와 냄비 물의 양에 맞는 조합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모든 일의 시작과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반숙 계란을 일상처럼 잘 삶을 수 있을 때가 과연 올지, 온다면 언제 그렇게 될지 기대된다. 완벽한 반숙 계란을 먹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은 왠지 매번 시작하는 하루의 처음과 닮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명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