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은 허다하다. 나는 우산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라 비 오는 날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내 손에 평소에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물건을 드는 일은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우산을 어떤 곳의 우산꽂이에 자주 두고 다닌다. 집에 걸어오면서 우산을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지만, 우산이 싫어서인지 귀찮아서인지, 우산을 찾으러 돌아간 적이 별로 없다.
지금 가지고 다니는 우산은 사실 누가 어딘가 두고 간 우산을 또 실수로 가지고 들어와서 가지게 되었다. 우산의 무늬는 군대 얼룩무늬라, 비 오는 날에 사람들이 한번씩 자기들의 우산 너머로 내 우산을 한번 흘겨본다. 집에 들어오면 나는 내가 아닌 나의 우산이 받은 관심에 내심 뿌듯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우산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가지고 다닌다.
잃어버리는 일은 관심과 무관심의 사이에 있다. 관심이 있다면 잃지 않도록 더 꽉 손에 쥐는 버릇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관심하다면 그것을 손에 잡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손에 꽉 쥐려고 한 그 찰나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무엇을 놓치는 것이다.
땅에 떨어진 것에 대해서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오만원 지폐가 땅에 떨어져 있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 돈을 주울 것이다. 고무줄 머리끈 하나가 떨어져있다면 굳이 많은 머리끈을 두고 주울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만약에 사람이 땅에 떨어져있다면? 나는 과연 땅에 떨어진 돈에게 달려가듯이 그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굳이 내가 먼저 다가갈 필요를 느끼지 못할까?
그는 왜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을까?
누가 땅에 떨어지도록 밀쳐버렸을까? 다른 누군가 떨어지라고 시켰을까? 스스로 결심한걸까?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그가 그렇게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힘이 있었을까?
상실. 상실에 대하여 어느 경찰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일하는 지역경찰은 사람의 변사체를 볼 일이 잦다.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목격하는 그 장면은, 처음을 잊을 수가 없게 만든다고 했다. 그것을 본 날에는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집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오랜 시간동안 씻거나, 숨을 길게 참고 집에 가는 등의 행동을 한다고. 마치 그 사람의 죽음은 너무 슬픈 일이지만, 그것을 목격했다 할지라도 일단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나를 지켜야 한다고.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잃어버린 그 순간부터는 잃어버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지키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이 땅에 떨어진 그와 그의 삶을 우연히 본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채 차가운 바닥을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매섭게 자리를 옮기는 다른 한 사람이 있을 것. 그리고 지금 분명한 건, 그는 달려오고 달려가는 둘의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