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 된장찌개
베이식한 게 최고
방문을 열었을 때 구수한 된장 냄새가 자작하게 보글거리는 소리를 타고 들어올 때면 기분이 잔뜩 좋아진다. 바로 내가 된장찌개 덕후이기 때문이다.
워낙 된장찌개를 좋아하다 보니 한동안 매일 된장찌개가 밥상에 올라도 물리지 않는다.
소화 기관이 좋지 않은 나에게 된장찌개만큼 속이 편한 음식도 드무니 예뻐할 수밖에.
고깃국인데도 느끼하지 않음이란‧‧‧‧
가끔은 계절 채소 달래가 들어간 알싸한 된장찌개도 좋고
방아 잎이 들어가 방아 잎 특유의 향긋한 향이 나는 된장찌개나, 고추 한두 개를 총총 썰어 넣은 얼큰한 된장찌개도 좋다. 또 달큼한 애호박과 쫄깃한 팽이버섯이 더해진 된장찌개 역시 좋지만, 맛국물에 소고기 양지와 감자, 두부가 듬뿍 들어간(우리 집 된장찌개 기본 설정값)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이 된장찌개를 본문 내에서 기본 된장찌개로 칭한다.)
엄마의 음식은 어떤 틀이 있다기보다 그날 첨가하고 싶은 걸 넣어 창조하시곤 하는데 된장찌개도 예외가 아니다.
청국장은 냄새에 예민한 내가 극도로 싫어해 끓이시지 않지만, 감자 대신 고구마가 그 자리를 차지할 때도 있고, 단배추 물김치를 된장찌개 국물에 담가 먹기 위해 전분을 조금 추가해 걸쭉하게 끓이시기도 한다. 기다리(미역귀)나 미역지(미역 줄기로 간장 찌를 담은 것)를 넣으실 때도 있다.
한번은 조갯살과 고기를 함께 볶아 끓이신 적이 있는데, 뭐랄까‧‧‧‧ 변화를 꿈꾸는 시도는 좋지만, 인생처럼 결과가 늘 좋을 수만 없듯 실로 맛의 그래프도 굴곡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연의 맛과 어우러져 풍미를 더하는 재료도 변화를 거치며 발견되었겠지만, 실험이 계속되다 보니 각자의 개성이 너무 뛰어나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없는 된장찌개를 만나는 횟수도 빈번히 일어난다.
오늘 메뉴가 된장찌개라 할지라도 맛을 확인하기 전까지 마냥 기뻐할 수 없음이란‧‧‧‧
어쩌다 기본 된장찌개가 나오면 쌍 따봉을 날리며 한 숟갈 음미할 때마다 진짜 너무 맛있다고 찬사를 날린다.
'엄마 이렇게만, 제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만요.'
가끔 원고 작업을 할 때면 다른 이들의 작품에 비해 부족한 것 같아 고심하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좋게 보이려고 평소 다가갈 수 없는 주제에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덜컥 발을 들여놓거나, 잘 되지도 않는 말투나 표현을 써보려고 용쓸 때가 있다.
써 놓은 원고에 '이 내용도 추가하면 좋겠다'라며 이것저것 첨가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버거워서 절절매거나, 내가 원고에서 담아내고자 했던 내용들이 서로 엉켜 글 끝에 가보면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핵심 내용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온종일 뭔가를 캐내려고 산을 헤맸는데 얻은 거라곤 탈탈 털린 심신뿐. 상황은 구조 요청을 해야 할 판이랄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길을 잃고 자충수를 둘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다 도리어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모르게 될 때이다.
지금 그대로는 부족할 것 같은 마음.
내가 나의 매력을 몰라서 일 때도 있지만
내가 나를 믿는 힘이 없어서 일 때도 있다.
좋은 것들은 세상에 너무 많지만
내가 나라서 매력적일 때가 있다.
무엇이 좋은지 헷갈릴 때는
기본이 가장 좋을 때가 있다.
“엄마 나는 우리 집 기본 된장찌개가 제일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