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책’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무지막지한가. 책을 파는 공간은 또 어떠한가! 요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도 오백 종을 넘는 책들이 있다. 오백 개의 전혀 다른 세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실 서점을 시작하기 전에는,
‘후후, 큐레이션 책방해야지! 일반서점이 마트라면 나는 보게라에서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발렌티노가 될 테야! 절반 이상은 내가 읽었으니까 손님이 원하는 책을 딱딱 추천해드리면 좋겠다. 하하하, 이거 책 맛집으로 소문나면 어쩌나? 알바를 구해야 하나? 책장을 늘려야하나? 그럼 또 어떤 책으로 채우지? 앞으로 미리 목록을 만들어 둬야하지 않을까?’
라는 허황된 꿈을 꾸기도 했다. 물론 그게 허황되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의 뮤즈인 아이유 님은 이런 얘기를 했다.
‘음악 라디오DJ가 정말 하고 싶었는데, 실제로 라디오 게스트를 하다 보니까 저는 아직 DJ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 3~4개월이야 제가 좋아하는 음악들 틀면서 신나게 하겠지만, 그 이후로는 음악 선곡이나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힘들 것 같아요. 음악 방송 DJ를 하려면 정말 엄청나게 많은 가수와 노래를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나는 아이유 님의 이 말을 책방 오픈한지 3주만에 격하게 동감하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손님이 가져오는 책에 ‘얼마입니다.’하고 계산만 한다면 서점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나는 내 취향으로 공간을 채우기 위해 서점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내 공간에서 누군가가 책을 고르려 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정보를 총 동원해서 손님에게 독서의 기쁨을 줄 수 있는 책을 골라드리는 일이 (개인적으로) 서점원의 역할이자 사명이라 생각한다. 책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물건이다. ‘나 이거 재미있게 읽었어, 이거 읽어 봐.’, ‘그거 읽어 봤는데 별로. 내 취향은 아니더라.’라는 대화는 책방에서 흔히 들어볼 수 있는 대화다.
누군가에게는 재미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미없는 책.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 아무거나 대충 골라드릴 생각은 없다. 완벽하게 손님이 원하는 책을 척척 골라낼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적어도 손님의 취향에 근접한 추천을 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