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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서점원 Aug 31. 2022

오! 아브라사스

2019

오늘은 잠을 설쳤다. 아니, 사실 오늘만이 아니라 어제도 그랬다. 꿈이 너무 강렬해서 새벽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꿈속의 내가 평행세계의 또다른 나라면 아마도 심장마비로 죽었기 때문에 강제로 꿈에서 깬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와 오늘, 나를 깨운 건 ‘말’이었다. 누군가 내게 어떤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충격에 빠져 잠에서 깼다. 어제의 충격적인 말은 ‘사랑해’였다. 누군가로부터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고, 나는 그 말이 너무, 정말 너무나도 충격이라서 말 그대로 심장이 팡-! 하고 터지는 바람에 꿈에서 깼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그 사람은 결코 내게 하지 않(았)을 말이(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어제 내가 죽은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했으나, 오늘 꿈에 나온 사람들은 조금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세명의 남자가 등장했는데, 한 남자는 절규하고 있었고, 다른 두 남자는 그 남자를 위로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엎어져 오열하던 남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그 베르테르다.


“다 틀렸어! 나는 결국 사랑을 얻지 못하게 되었어!”


베르테르는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거절을 받고 망가졌다. (로테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바닥을 구르며 고통에 차 절규했다. 분명한 사실은, 그의 사랑이 거부당한 이유가 다만 그 상대방이 베르테르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못생기고 가난해서 싫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슬퍼하고 아파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건 누구의 탓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절망했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것에는 그나마 사회적 장치가 있었다. 이를 테면 로테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가 있었기에 덜 비참해질 수 있었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꿈에서의 베르테르는 그냥 사랑을 거절당한 상황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탓도, 사회의 탓도 할 수 없었다. ‘난 너 싫어!’라는, 잔인한 말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 안에서 발생한 일이었기에 베르테르는 절망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기적과도 같았으니. 내 마음이, 내 진심이 아무리 애절하다해도 결국 상대방이 아니라면 끝인 거다. 한참을 울며 절규하던 베르테르가 깨달음을 얻은 듯 조용히 읊조렸다.


“그래, 나는 이제야 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됐군!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이건 분명 신의 잘못이야! 신을 탓하고 욕해야겠어! 나는 죽어서 신을 만나리. 그리고 신도 죽이리!”


그런 베르테르를 지켜보던 젊은 남자가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을 쳐다보며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베르테르가 사랑을 이루지 못해서 너무 아파해요. 어떡하죠? 그에게는 지금 권총 아니면 데미안이 필요해 보여요. 둘 중 무엇이라도 있으면 그의 고통을 치유해줄 텐데...”


하며 아쉽고도 슬퍼했다. 그의 말을 조용히 듣던 산티아고는 입맛을 쩝 다시며 별일 아니라듯 대꾸했다.


“죽을 만큼 고통을 느낀다는 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의 증명이지. 너무 걱정 말거라, 싱클레어. 그는 살아 있단다.”


산티아고의 말에 싱클레어는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어째서 베르테르는 찰나의 사랑에 목숨을 걸까요? 만약, 그 여인이 베르테르를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그 둘은 몇 년이나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할까요? 영원을 장담할 수 있을까요?”


산티아고는 싱클레어를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목숨 정도는 걸어볼 만하지.”


그리고 나는 깼다. 만약 내가 베르테르처럼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면 어제 꿈에서 ‘사랑해’라고 말해서 나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람과 인연을 이어 나갔을 수도 있다. 몇번의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기에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싱클레어가 말한 것처럼, 그 사람과 인연이 이어졌다고 한들 10년, 50년, 100년을 첫 마음 그대로 유지하며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그 유명한 세기의 연인들도 고작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별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충격을 받아 꿈에서 깰 정도로 각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니 꿈에서 깬다는 건, 어쩌면 알에서 깨어나는 것? 오,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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