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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서점원 Aug 31. 2022

HUG

2022

마음의 병이 깊어졌을 때, 나를 살린 건 J의 온기였다. 타의적으로 많은 걸 내려놓게 된 귀로에서,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굳혀준 건 J와 나눈 짧은 포옹이었다. 챙겨간 책도, 빼어난 풍경도, 맛있는 음식이나 특산주도 아닌 J의 짧은 포옹. 온기와 향, 잘 가라는 인사. 일주일내내 찾지 못했던 빛을 그 짧은 2-3초의 시간에 얻게 되었다. 용기와 위로. 섬을 떠나며 이번 여행은 저 2-3초를 위한 여행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나는 보통, ‘가기 싫어.’라는 의미로 ‘갈게!’라고 말하곤 한다. 또는, ‘가지마.’라는 의미로 ‘잘 가!’하고 인사를 한다. 꽃이 피기 전, ‘잘 가!’하고 인사를 한 S는 ‘날이 더워지기 전에 다시 올게!’하고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벚꽃이 모두 떨어진 며칠 전,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 반짝 더위가 찾아온 무더운 날이었다. 어린 왕자는 오후 4시에 친구가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질 거라 했지만, 나는 어리지도 않고 왕자도 아니라서 S가 도착해야만 행복할 것이다.


내가 서울의 밤을 싫어한다는 건 이미 글로 많이 썼다. 너무 많이 써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기분인데, 그래도 또 역시 이방인으로서 겪는 상실감과 공포는 ‘서울의 밤’만한 게 없다. 서울에 일이 있어서 숙박을 할 때마다 홀몸으로 쓸데없이 고급 숙소만 골라잡는 이유기도 하다. 낡고 더럽고 후미진 곳에 있는 숙소에 들어가면 상실감과 공포의 덩치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H는 가장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H에게 부채감이 있는데, 그건 곧 은혜를 입었고 입은 은혜를 갚겠다는 의미다. 늦은 시간까지, 정확하게는 더 이상 내가 ‘서울의 밤’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취할 때까지 함께 술을 마셔준다. 함께 있어준다. 나의 주정도, 재미없는 아저씨 개그도, 취해서 부리는 만용과 객기도 모두 받아준다. 그리고 헤어질 때 서로의 어깨에 온기를 묻혀준다.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건 큰 힘이 있다. 특히나 몸과 마음이 위태롭거나 지친 사람이라면, 그 짧은 온기에 정말 많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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