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어! 느새. 부터. 여. 행. 은 안 멋져.
1. 내가 사랑하는 작가님 한 분은 폐소공포증이 심해서 어느 날엔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터널에 들어갔다가 죽을 고비를 경험하셨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나의 폐소공포증은 다행스럽게도 터널정도의 큰 규모는 괜찮기에 안도했는데, 얼마전 터널식 자동세차장에 세차하러 들어갔다가 진심으로 중간에 문 열고 뛰쳐나올 뻔했다. 마음의 병은 나도 모르는 사이 몸집을 키우는가 보다.
2. 그래서 탁 트인 곳에 가면 마음이 안정된다. 탁 트인 곳 중 최고는 단연 바다와 산이다. 하지만 나는 또 바다를 무서워한다. 보통 바다는 내 기준에서 꽤 많은 날들이 ‘화가 난 상태’로 보인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이도 무섭다. 결국 바다속은 내게 있어서 또 하나의 밀폐된 공간이며, 철썩 거리는 파도는 나를 낚아채기 위한 덫이고, 거친 바람은 바다로 밀어 넣기 위한 몰이로 보인다.
3. 그렇다면 산이 하나 남았는데 이건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힘들잖아. 산에 오르는 건 힘들다. 바다보다 무섭지는 않지만 산을 오르는 건 힘든 일이다. 힘들기 싫은 건 인간의 본성이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는 없으니, 하기 싫은 건 좀 안 하며 살겠다는 게 나의 인생관이다. 그리고 산을 오르는 일은 역시나 힘든 일이라는 걸 오늘 다시 깨달았다.
4. 숙소 뒤편에 오름이 하나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가볼까?’ 싶어서 다녀왔다. 지금보면 요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이 자주 등산 사진을 올리던데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 등산 경험을 짧게 말하자면, 진짜 중간에 토할 뻔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차서 호흡이 뒤엉키고, 호흡이 뒤엉키니까 숨이 더 차고, 헥헥 거리다가 켁켁까지 갔다.
5. 아이폰에는 <건강> 어플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보통 내 일평균 걸음수가 1,300회 정도된다. 가장 낮을 때는 400회 이하가 나오기도 한다. 근데 오늘만 6,000회 정도를 걸었다고 나오니까 아주 몸뚱이가 난리가 났다. 몸이 고되면 머리가 띵하며 현기증이 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그 증상을 다들 아시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상태로 냉큼 정상에서 사진만 찍고 다시 호로록 내려왔다. 내려오며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
6.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가 원문이지만 나에겐, “인간의 ‘망각’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가 더 맞는 말 같다. 잊고 지냈다. 잊었기 때문에 ‘여행 못간지도 오래됐으니까 잠깐 제주도 내려가서 좀 쉬다 올까?’라는 멍청한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다. 벌써 몇 년 전에 나는 분명 ‘두 번 다시는 절대! 혼자서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이 멍청이는 또 낼롬 이렇게 혼자 여행을 왔고, 외로움과 쓸쓸함의 고통 속에서 후회하고 있다.
7. 원래 여행은 혼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긴 시간 동안 많은 곳을 혼자서 여행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낯선 여행지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 이후로는 절대 혼자 여행을 가지 않기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 → 망각 → 또 혼자 여행 감 → 고통 → 다짐 → 망각…’의 반복. 외로움은 감정이 아닌 통증의 영역이며, 통증은 극복되는 것이 아닌 참는 것일 뿐이므로 삶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다.
8. 알면서, 충분히 겪었으면서 또 혼자 와서는 후회 중이다. 더군다나 제주에는 너무 많은 기억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너무 많은 사랑들과 너무 많은 아픔들과 너무 많은 추억들이 정말, 너무할 정도로 많은 곳이다. 과거의 나는 왜 이렇게 제주에 많이 내려왔던 것인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인가. 왜 그들과 사랑을 나눴던 것인가. 이제는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찰나의 반짝임을 겪은 대가로 치르는 고통이 너무도 크다.
9. 많은 글을 쓰고 많은 글을 지웠다. 쓰고 싶었던 글도, 지워야만 했던 글도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