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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씨걸 Aug 09. 2022

첫 러닝 트랙 데뷔 성공

작은 성공이 결국엔 큰 하나를 만들어낼 거야

 

120여 일을 남겨두고 67kg에서 시작한 나의 바디 프로필 (이하 바프) 도전은 하루하루가 하드코어였다. 출근을 하기 전 비몽사몽 한 눈으로 헬스장에 가서 땀이 비가 오듯 운동을 하고 퇴근한 뒤에도 축 처진 어깨로 다시 헬스장으로 가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느라 뭉쳐진 근육들을 풀어주었다. 이 루틴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살이 조금씩 빠지는 듯했지만, 식단을 완전한 다이어트 식단으로 고쳐버리는 데까지는 여전히 성공하진 못했다. 그래서 가끔 나 자신을 음식 앞에 풀어놓을 때마다 그다음 날은 회개운동에 온 시간을 바쳤다. 마치 몸에 있는 수분이 땀으로 다 빠져나갈 것 같이 땀을 흘리고 나서야 안심을 하는 것도 일종의 루틴이 되어버린 듯했다.


기본적으로 유산소 운동만을 위해 쓰는 시간은 하루에 2시간 이상. 트레드밀 위를 걷다가, 빠르게 걷다가, 뛰다가 경사를 올려서 또 걷다가 그 마저도 시간이 가지 않으면 싸이클로 옮겨 타서 쉴 새 없이 발을 굴렀다. ‘그런데도 이렇다고? 느으으릿, 느으으으으으릿. 이 속도로 빠진다고 내 살들아? ‘체중계에서 내려올 때마다 속에서는 불이 났다. 일과의 우선순위를 운동에 두고 헬스장에 가서는 온 힘을 다했으니까. 그러나 완전히 음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나의 과오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한숨을 내리 쉬며 속에 난 불을 껐다 그, 즈음 친구 A에게 연락이 왔다.


누나 러닝 할래요? 만나서 러닝 해요!


친구 A는 러닝에 진심인 찐 러너.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로 사회에 진출하여 다시 만났다가 최근 다시 재회했다.) 그런 A 에게서 러닝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는 달리기에 진심인 반면 나는 달리기를 정말 싫어한다. 어릴 적부터 달리기라면 영 꽝. 한마디로 소질이 없어서 러닝을 하자는 제안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에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실내 체육관에서 반복되는 운동에 질릴 때로 질렸을뿐더러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니 이제껏 시도해보지 않은 운동으로 컨디션을 환기시켜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러닝을 돈을 들이지 않고 도전해볼 수 있는 최적의 운동인 셈. '잘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여전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응. 해보자. 보라매 공원에서 만나!

누군가에게 나의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는 나는 약속한 날 아침까지도 매우 긴장을 했다. 더군다나 그 전날에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했기 때문에 몸이 조금 더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상태로 제대로 뛸 수나 있을지 걱정 반에 달리기에 성공하면 느낄 성취감에 대한 기대 반으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서는 A와 그의 절친한 대한 선배이자 나도 종종 이야기를 듣곤 했던 B언니를 함께 만났다. B언니도 러닝 경력이 꽤 되어서 둘은 자주 만나 함께 러닝을 하는데, 나의 러닝 첫 데뷔전에서 페이스를 맞춰주기로 했다. 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래된 러너의 포스로 몸을 풀면서 "할 수 있어. 우리가 속도는 맞춰줄 거야. 오늘은 처음이니까 3.5km 정도 뛰어보고 더 할 수 있으면 해 보면 돼." 등의 말들로 내 긴장도 풀어주었다. 헬스장이 나의 놀이터라면, 공원 위 트랙은 그 둘의 놀이터와도 같은 곳. 낯선 곳에서 쭈뼛쭈뼛 서 있다가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난 둘의 모습을 보니 오늘만큼은 나도 러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러너였다.



보라매공원의 트랙 한 바퀴는 생각보다 길다. 그냥 걷기 운동을 할 때도 길다고 생각했지만, 달리기를 할 때도 이 트랙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어라? 이게 되네?'. 된다. 되고 있다. 나는 이 트랙 한 바퀴를 달리고 있다. 달렸다. 달릴 수 있다...! 속도가 얼마인 건 중요치 않았다. 마침내 성공을 했다.


"누나, 괜찮은데요?"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나. 처음 뛰어보는 것 치고는 괜찮다는 말이었지만, 내게는 누구보다 전문가인 A의 피드백은 다음 한 바퀴를 조금 더 오래 뛰어볼 수도 있겠다는 용기를 내기에 충분했다. 잠시 쉬고 다시 시작.


가운데의 나를 중심으로 앞은 친구 A가 뒤는 언니 B가 든든하게 페이스를 맞춰주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번호 뭐야? 사진 보내줄게"


뒤에서 나를 따라오다가 커트머리를 찰랑이며 가볍게 나를 앞지르고 번호를 묻는 언니 B의 모습은 멋짐 그 자체. 내 속도를 맞추어서 먼저 가주는 사람은 내가 조금 더 달릴 수 있게끔 동기 부여를 심어주고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은 너무 빠르게 가지 않아도, 천천히 가도 된다는 안심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총 3.5km를 달렸다. 

첫 러닝 트랙 데뷔 성공!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작은 것부터 하나씩. 그런데 언제나 그 시작이 어렵다. 시작이 어려울 땐 기꺼이 내어주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보면 된다. 러닝을 처음 시작하던 이 날처럼. 손을 내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보기도 하고. 이 단계를 넘으면 누구나 시작은 할 수 있다. 시작을 하기만 한다면 일단 절반은 성공! 물론 미션을 완료해서 목표를 달성하면 더 좋다. 달성 가능한 작은 성공들이 결국 큰 하나를 만들어낸다. 큰 성공도 해본 사람이 해보는 거라고, 작은 성공을 해보지 않았다면 큰 성공의 기쁨과 과정의 감사를 맛볼 수 없을 테니까. 앞으로 내가 진짜 러너가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트랙 위에서 달리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했다. 그러니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바디프로필도 다른 그 무엇도.


(어려울 때 기꺼이 손 내밀어 주는 친구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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