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친구 여러분. 수지입니다.
올해부터는 편지를 매월 쓰기로 했어요.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 "잘 지내?" 하고 묻기 위해서 말이죠. 제게는 "잘 지내?" 라는 질문이 큰 의미가 있는데요. 최근에도 발견한 저의 모습이지만 저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묻지 않는 이상 먼저 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켠에는 항상 누군가 제게 "잘 지내?" 고 물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고요. 그래서 제 스스로 묻기로 했습니다. 1월에도 잘 지냈는지, 무탈한지, 지금은 어떠한지요. 그렇게 1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기 전에 브런치를 켰습니다.
어느날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클립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송화가 익준에게 "익준아, 넌 요즘 널 위해 뭘해줘?" 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익준이 "너는?" 하고 되묻자 "나는 장작을 세워두는 도구를 샀어. (익준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아니. 그냥 나를 위해 그거 하나 샀어." 라고 송화가 대답해요. (송화는 굉장한 캠핑매니아) "그래서 너는? 너는 뭘 위해 뭘 해주냐고~!" 송화가 다시 물으니까 익준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너랑 밥먹는거." 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까지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야기고요. 클립을 다 본 저는 당연히 나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지 생각을 했죠. 저는 요즘 저를 위해 일주일에 단 한명을 만납니다. 지난 달에는 연말이 끼어서 자의로 타의로 거의 매일같이 많은 모임을 나갔거든요. 그런데 1월이 되어 올해의 목표로 평일엔 단 하나의 약속만 잡고서는 4주차가 된 지금까지 잘 지켜나가고 있는데요. 아니, 글쎄! 그 한명과 아주 밀도있는 만남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그런 시간을 통해 충전이 되고요. 남은 날에 물리적으로 쉬는 시간이 생기는 건 덤이고요!
그리고 나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쓰는 공용용품 대신 나만의 세타필을 샀다', '시간을 들여서 천연 팩과 스팀타월로 스킨케어를 했다' 등 대답은 제각각이었죠. 그런데 혹시 눈치 채셨나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데는 큰 돈이 들지는 않는다는 거. 이 정도로 나를 위해 하나 해줄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미션캠프에서 하는 <마이컨셉진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나만의 컨셉진'을 만드는 거에요. ('컨셉진'이라는 매체가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매달 하나의 주제를 다루는 매거진입니다.) 작년에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저에 관한 탐구를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는데요. 총 6주간 매주 미션을 통해 하나의 주제로 저를 들여다보면서 칼럼을 써내는 겁니다. 그럼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주고요. 이게 참 오묘한게요. 내가 나를 아는 것도, 남이 나를 아는 것도 엄청 새로운 거 있죠. 벌써 4주차를 지나서 총 2주의 미션이 남았습니다. 2월 중 완성 소식을 전할게요. (아! 출간용은 아니고 개인 소장 및 포트폴리오 활용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다시 <마이 컨셉진>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진행한 마지막 미션이 '지인이 말하는 나' 에 대해서 총 10명의 지인에게 350자로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엄선한 10명에게 '수지는 어떤 사람인가?를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수지는 감수성의 질이 두텁고 공감력의 범위가 남다른 친구입니다. 비 맞는 사람을 보면 우산을 씌워주기 보다 기꺼이 같이 비 맞아주는 사람이에요. 수지와 함께 있으면 그래서 따뜻합니다... (이하 생략)'
저는 제가 늘 공감에 약하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아니었네요. 잘했나봐요. 공감.
최근 회사에서는 지점 이동을 했습니다. 대규모 조직개편이 있으면서 소인 지점에서 다인 지점으로 나름 중앙 진출(?)을 한 것이죠. 팀장님의 퇴사로 새로운 팀장님이 오면서 1월 한달은 두분의 팀장님과 일을 했습니다. 두분과 각각 대화를 나누면서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 '명확하게 말하기' 입니다.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것, 이 회사에서 바라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야 상사들도 그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반영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팀원이던 시절, 자신이 만났던 팀장들에게 본인의 목표를 정확히 말하면서 어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에 발견한 저의 모습에서는 제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명확히 말하기'보다 '돌려돌려 말하기'를 더 잘 하더라고요. 친구들은 돌려돌려 말하면 이미 제 의도를 진작에 파악하고 "그냥 제대로 말해. 그래서 이렇게 해달라고?" 하지만요. 거절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해봐도 참 숙제로 남는 영역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회사에선 잘합니다)
직장인들은 해가 바뀌면 커리어 고민은 한번쯤 하게 되잖아요. 저도 그 중 한명이고요. 그래서 또 고민하였습니다. 전문성에 대해.
다들 전문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가지 일을 10년동안 하면 전문성이 생기는 걸까요? 물론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같은 일만 반복하던 사람에게 변수가 생겼을 때 대답을 할 수 없다면 과연 그 사람은 전문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기로 했습니다.
수지에게 전문성이란? 코어는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는 능력
지금까지 쌓아올린 경력에서 저의 코어가 '커뮤니케이션 능력' 과 '기획' 이라면 앞으로 더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한 단계 레벨업하며 상반기를 보내지 않을까요.
'객기'라는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보통 말도 안되는 일에 도전하는 무모한 용기' 라는 뜻을 지녔대요. 사실 저는 변수보단 안전을 택하는 사람이라서 무모한 도전은 엄청난 동기부여가 있지 않은 이상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1월의 도전을 넘어 올해의 도전으로 객기를 부려보려고 해요. 나름 엄청난 도전인 셈이죠. 저의 목표는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해보기' 입니다. 그리고 1월 중엔 정말 객기를 부렸습니다. (궁금한 분은 저에게 따로 물어봐주세요. 답해 드립니다.) 객기를 부려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오 되네?' 라는 것을. 그리고 안 해보면 모른다는 것을. 해보고 아니면 '아, 아니었네. 안 해도 되는 거였네.' 라는 것을. 저는 올해 내내 또 어떤 객기를 부리게 될까요?
(객기만 다른 꼭지로 빼도 될 것 같은... 느낌...)
개인적으로 2023년 1월 31일은 잊지 못할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회사 메일함을 열어 본 순간, 절대 읽고 싶지 않은 네글자를 봐버렸거든요. 일을 하는 내내 손이 떨렸습니다.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면서 '성장보다는 생존을 택해야 하는 때가 진짜 온건가..' 를 늘 생각만 했지 실제로 겪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항상 과정에 큰 의미를 두는 제게 결과 중심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시스템은 익숙하지 않은데요. 이젠 필연적으로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더불어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잠깐 잔잔한 것 같으면 바람이 불어버리니까요. 오늘이야말로 저에게 "우린 안전해"가 필요한 날이었는데요.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친구 O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맥도널드의 800원짜리 아이스크림 사주며 800억의 시간과 마음으로 "우린 안전해"를 말해주더군요. 그걸로 충분해요.
오늘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잘한 것 같습니다.
2월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잘 지내보겠습니다.
2023.01.31.
우리 집 책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