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서는 11월을 ‘미틈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느 곳에서는 11월을 ‘미틈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미틈달은 동사 ‘밀뜨리다’ 즉 ‘갑자기 힘 있게 밀어 버리다’의 명사형 방언 ‘미틈’과 ‘달’을 합친 말이다. 가을에서 갑자기 겨울로 치닫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11월을 발음하면 왠지 모르게 첫눈이 연상된다. 여고시절 학교의 개교기념일이 11월 11일이었는데 그 무렵이면 첫눈이 왔었다. 그래서인지 찬란한 10월의 햇살과는 달리 대부분 흐린 날이 지속된다. 메마르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이 많아진다.
까뭇한 먼지 같은 점으로 언제 내렸나 싶을 정도로 흔적 없어지는 첫눈은 펑펑 내리는 한겨울의 눈과는 감흥이 다르다. 애틋한 첫사랑이랄까. 중년의 무르익은 사랑이 아닌, 싱거운 듯 어설픈 햇사과의 맛과 같은, 눈으로만 스쳐도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느낌을 닮았다.
현실적으로 겨울의 혹독함도, 여름의 치열함도 없는 미적지근한 달이다. 가을이라 하기에는 칙칙하다. 게다가 공휴일조차 없어 퍽퍽한 날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로서도 충분히 할 말이 있다. 미련 없이 가을을 넘겨주고 당당하면서도 홀연히 겨울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깊은 어둠 속 모두가 잠든 새벽. 고요함은 무르익어 긴장은 고조된다. 태풍 전야처럼 잔잔하다가 세찬 광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듯 그렇게 갑자기 겨울을 맞이한다.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고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민다.(중략)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이외수,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원하지 않아도 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마음잡기를 해야 할 때이다.
모든 자연에는 영혼이 깃든다고 여기는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이라고 했다. 모두가 사라진 게 아니라면 무엇이 남았을까.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미련 또는 지나간 사랑의 누군가로 향한 그리움 같은 것일까. 왠지 그 촉촉한 의미에 위로가 된다. 열 개 달의 기운이 모아져 정점에 이른 11월. 그 응축된 잠재력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달.
그 어느 달보다도 힘 있는 11월이 이제 시작되었다.